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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원철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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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글솜씨 지닌 학구파 전통·현대 학문 두루 연구
원철 스님과는 해인사 행자시절부터 함께해온 관계로 인연이 비교적 질긴 편에 속한다.
행자 시절에는 모두가 피교육자 신분이고 엄격한 규율아래 지내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나 실력은 드러나지 않고 성격만 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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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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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고산 스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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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스님(1)
고산 스님께서 쌍계사 주지 소임을 맡은 것이 70년대 중반인 듯싶다. 그 때만 해도 농촌지역의 사찰이나 암자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는 사회활동이나 신행활동은 거의 없었다. 법회는 신년 초나, 사월 초파일에 하고 일년에 한 두 번만 절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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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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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도영 스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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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기려하지 않고 늘 지고 사는 수행자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희생자의 영령을 천도하는 49재 의식이 서울 영화사에서 월주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됐다. 내가 큰절로 월주 스님께 인사드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영 스님은 월주 스님의 맏상좌인데, 은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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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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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고산 스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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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하나도 십년 넘게 사용
경·율·론은 물론 모든일 ‘박사’
고산 스님이 오시기 전 쌍계사는 살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뒤주에는 쌀이 없어 늘 텅 비어 있었고, 요사채는 퇴락할 대로 퇴락해 남루하기 그지 없었다. 신도도 없었다.
그러나 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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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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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의 스님이야기-선곡 스님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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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 스님은 선암사에 내려와 있다가 용성 스님이 함양에 농원을 내서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청정수행을 한다는 말을 듣고 함양으로 갔다. 농원에서는 백장의 선원청규를 따라 ‘하루 한 때라도 일하지 않으면 한 끼도 먹지 않는(一日不作 一日不食)’ 살림을 살았다. 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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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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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연관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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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스님은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리는 분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는 지리산 실상사 산내 암자인 약수암에 주석하고 계실 때 처음 뵈었다.
그 때 나는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 불교계는 승속을 막론하고 현실참여를 매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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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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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삼봉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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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지금 여름 안거중이다. 안거기간동안에는 산중의 모든 대중이 일주일동안 함께 참여하는 철야 용맹정진을 한다. 음력 7월 1일 새벽 3시부터 시작해서 8일 새벽 3시에 마친다. 외호하는 대중들만 빼고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
행자실은 야식거리로 잘 다듬어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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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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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종고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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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입법계품’은 맨 끝이 ‘보현행원품’이다. 선재가 보현 보살을 최후로 만나서 보현행원을 듣는 것은 결국 가르침과 배움이 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르치는 것도 실천을 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실천을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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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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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의 스님이야기-선곡 스님 (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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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禪谷) 스님은 1898년 태어나 1968년 입적했다. 육조 혜능 대사처럼, 머리 깎은 스님이 되기 전에 깨달음을 얻은 기연을 가졌던 스님이다. 선곡은 자호(自號)이고 법명은 도윤(道允), 법호는 설곡(雪谷)이다. 열일곱에 송광사에 들어가 공양주를 보면서 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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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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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의 스님이야기-원법 스님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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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해 도량 세우고 청소년 법회 열어 포교
원법 스님이 대전 보은정사를 창건할 때의 일이다. 보은정사는 처음에 보문산 중턱에 자리했는데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무허가 암자를 일제 정리할 때 자진 철거했다. 명분이야 여러 가지를 내걸었지만 시국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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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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