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 스님
지난 2003년 1월 20일 혜암 스님의 문집관계 일로 문도스님들과 함께 백양사 서옹 큰스님을 친견했다. 혜암 스님을 해인사로 출가하게 하고, 인곡 스님을 은사로 인연맺게 한 것이 서옹 스님의 권고였다. 혜암 스님의 속가집이 백양사 아랫마을이어서 스님은 서옹 스님을 자주 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혜암 스님 법어집의 서문은 당신께서 거동하기가 힘이 부쳐서 직접 쓸 수는 없으나 감수는 해주겠노라는 말씀을 뒤로 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범어사 선원장인 인각 스님을 뵙고, 점심공양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포교원의 포교국장 자리가 비었는데, 살아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런 자리를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있던 해인사 원당암 감원인 사형스님이 좋은 기회이니 소임 맡아보기를 권해,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후 포교원 포교부장 일관 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면서 일관 스님은 혜암 스님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혜암 스님을 해인사 행자 때부터 시봉을 했으며, 강원과 선방을 다니면서도 스님을 모셨다고 했다. 일관 스님은 어른의 입장을 살펴서 편하게 모신다. 혜암 스님도 그렇고, 포교원의 원장스님, 또 일관 스님의 은사스님인 일면 스님도 그렇게 모신다.
일관 스님이 해인사 선방과 칠불선원 등 제방의 선원에서 마음 닦는 공부를 치열하게 하고 있을 즈음, 은사인 일면 스님이 상계동의 작은 주택을 매입, 사찰로 운영해 보라고 했다. 이때까지 선방만 다닌 스님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관 스님은 칠불암의 운상선원에서 공부할 때에는 정말로 신심 충만한 용맹정진으로 ‘일관’했다. 이때의 법열은 가히 말로는 토로하기가 어려워 장문의 글을 편지지에 옮겨 도(道)의 무게를 실어 은사에게 보냈다. 일면 스님은 그 글을 보고 대견하고 흐뭇했다. 내 상좌가 이토록 마음 닦기를 일심으로 하니 즐거울 수밖에 없었을 터다. 맏상좌가 꿋꿋하게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은사스님 마음 또한 환희심으로 가득할 것은 불문가지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저 훌륭한 상좌에게 새로운 도심으로 급성장하는 상계동에서 포교를 하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이끌어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일면 스님은 맏상좌인 일관 스님을 해인사에서 상좌로 받았다. 일면 스님은 하심수행을 위해서 해인사에서 공양주 소임을 보았는데, 그때 일관 스님이 일면 스님과 은사 상좌 관계를 맺게된 것이다.
공부가 환희심으로 가득해서 세상사는 초연하게 지내는 일이 도(道) 닦는 일에는 최고라는 한 가지 생각으로 살아 왔는데, 갑자기 포교를 하라고 하니 난감했다. 하지만 은사스님의 명령이니 거역할 수도 없다. 부처님 말씀을 대중에게 널리 전하는 포교의 길은 처음 들어섰지만 성실과 인내로 꾸준히 했다. 한창 강남에는 능인선원, 강북에는 사천왕사 라고 해서 서울 도심포교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즈음이었다.
사천왕사와 같은 상계동에 있는 보현사는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포교의 걸음을 성실히 내딛고 있었다. 일관 스님이 주지로 있는 보현사는 날로 번창하여 인근의 경기도에도 포교당을 개원했다. 스님은 시줏물 아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결코 헛되이 쓰는 법이 없다. 불사도 시줏물을 모아서 하기에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일관 스님은 매사를 투명하게 처리하며, 회계처리가 당신의 삶처럼 늘 분명하다.
내가 조계종 포교국장 소임을 살면서 1년여 동안 포교부장인 일관 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니 일관 스님은 원칙이 분명하고, 변함없는 성실한 자세로 일을 처리한다. 출근도 전 직원들 가운데 제일 빠르다. 항상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긴장을 늦출수가 없다.
나는 또 시골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살다가 갑작스레 종단의 조직생활에 적응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촌뜨기인 내가 조직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원칙이 철저하고 당신생활이 투명한 스님 밑에서 1년3개월 동안의 소임을 마치고 최근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느끼면서 즐겁게 소임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해인강원의 선배이기도 한 일관 스님. 겉으로는 냉정한 듯 하지만, 미간에 부처님의 백호를 지니고 있는 상호와 거기서 풍기는 자상한 미소도 뿜어낼 줄 아는 스님이다. 스님을 생각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을 자신감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