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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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도영 스님(2)
남 이기려하지 않고 늘 지고 사는 수행자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희생자의 영령을 천도하는 49재 의식이 서울 영화사에서 월주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됐다. 내가 큰절로 월주 스님께 인사드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영 스님은 월주 스님의 맏상좌인데, 은사스님인 월주 스님은 도영 스님을 보자 반가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도영 스님과 눈을 맞추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얘기하시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 이야기며, 당신께서 하고 계신 사회활동에 대해서도 의욕을 보이시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하셨다. 곁에서 지켜보니 도영 스님은 은사스님이 신이 나서 하시는 말을 너무나 편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주위사람도 편하게 만들었다.
월주 스님은 말씀을 하시는 도중에 도영 스님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려고 하면, “어이, 도영, 도영” 하면서 애틋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한 월주 스님에게서 나는 저절로 다정다감한 도영 스님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어른을 모시고 살다 보면 남는게 인내심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종단 어른들은 30대 초반부터 조계종의 어른 노릇을 해 오시던 분들이다. 그러니 어른이 어른을 모신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영 스님은 열아홉에 금산사로 출가했다. 지금의 금산사는 본사 사격을 갖추고 있고 산사의 분위기도 충만한 사찰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출가하기 전인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만 해도 금산사에 가보면 농촌의 깊은 산속에 방치돼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안과 김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기독교 교세가 활발한 지역이다.
사춘기를 갓 넘긴 이목구비 수려하고 키가 훤칠한 청년이 금산사에 입산해 금산사의 모습도 잘 생긴 당신의 모습처럼 바꾸어 놓았다.
금산사 도량의 곳곳을 보살피면서 당신 손 안 간곳이 없을 만큼,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낙후되고 버려진 도량이 오늘날엔 귀족풍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늘 자비스런 모습으로 주위까지 편안하게 해주시는 도영 스님을 볼 때마다 스님의 위의가 얼마만큼 중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보제존자 나옹 선사의 발원문에,
問我名者免三途 (문아명자면삼도) 見我形者得解脫 (견아형자득해탈) 라는 구절이 있다.
나의 이름만 들어도 삼악도를 면하고, 나의 모습만 보아도 해탈을 한다는 말씀이다.
사십을 넘으면 불혹(不惑)이라고들 하는데 40이 넘은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그동안의 행과 습관의 결과에 따라 겉모습이 형성되어지게 마련이다. 부처님말씀에 의하면 업(業)의 산물인 것이다.
도영 스님을 보면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스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표현 같다. 일평생을 나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도영 스님은 쉽지 않은 그 일을, 남이 보기에는 쉽게 해 오셨다.
나는 영화사 회주이신 월주 스님과 맏상좌 도영 스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부러웠다. 나의 은사이신 혜암 스님에게도 도영 스님과 같은 상좌만 있었어도 당신이 했던 공부의 절반이라도 사회에 회향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월주 스님은 참 상좌복이 많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월주 스님께서 저렇게도 상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니 종단이나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제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사람의 원력과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일을 해내는지를 나는 그동안 만난 많은 어른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그중의 한 분이 조계종 포교원장 도영 스님이다.
도영 스님은 “평생 남을 이기지 않고, 남이 나를 이기려고 하면 언제든 지고 살았다. 그것이 편하다. 또 이긴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늘 지고 산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했다. 젊은 혈기에 남에게 싫은 소리를 조금만 들어도 벌컥 화를 내기 좋아하는 나는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을 좋아했다. 남에 대해서는 능력이 없다고 흉보고, 욕심이 많다는 등 비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나도 남에게 지고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수행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좋은 어른을 옆에서 모시고 사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 것을 요즘 다시 실감한다.
200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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