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원철 스님
빼어난 글솜씨 지닌 학구파 전통·현대 학문 두루 연구

원철 스님과는 해인사 행자시절부터 함께해온 관계로 인연이 비교적 질긴 편에 속한다.
행자 시절에는 모두가 피교육자 신분이고 엄격한 규율아래 지내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나 실력은 드러나지 않고 성격만 드러나게 된다. 행자실에서는 이름을 안 부른다. ‘찌개 보조’에서 ‘찌개장’으로 승진하면 수계전 까지는 그 행자 이름이 ‘찌개장’이다.
지금은 밥짓는 일도 압력밥솥으로 하기 때문에 일이 많이 줄고 수월해 졌지만, 내가 행자로 있을 때만 해도 가마솥에 장작불로 밥을 지었기 때문에 조금만 다른 생각에 빠져도 밥을 태우게 됐다. 해인사의 공양 짓는 법은 매우 특이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전수법이라고 해서 ‘후 소임자’는 반드시 전임자의 인계사항을 지켜야 했다.
먼저 아궁이에 장작을 우물 정(井)자로 쌓은 후, 가마솥에는 펄펄 끓인 물을 붓는다. 다음에 대중숫자에 맞춰 잘 씻어놓은 쌀을 가마솥에 붓고 장작에 불을 붙인다. 그러면 채 2분도 되지 않아서 가마솥이 끓기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 공양주는 솥 양쪽으로 옮겨 다니면서 수증기 나오는 쪽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약하면 코를 솥에 바짝 갖다붙이고 손을 코 쪽으로 밥솥의 수증기를 부쳐대면서 고소한 냄새가 양쪽에서 함께 풍겨나올 때 까지 그야말로 요령소리 나도록 분주하게 뛰어 다녀야 한다.
공양주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공양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소임자인 공양주의 중간 보조와 막내 보조는 분 단위와 초 단위로 큰소리로 공양주의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외쳐야한다.
공양주의 손 신호가 떨어지면 아래 소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래로 아궁이의 불을 번개처럼 꺼내고 준비해둔 소금을 아궁이에 뿌리면 공양 짓기가 끝난다.
나는 소금이 불과 천적관계라는 것을 이때야 알았다. 밥이 5분 이내에 지어지므로 잠시라도 딴 생각에 빠지면 금방 솥에서는 밥탄 냄새가 풍긴다. 그러면 대중참회를 해야하니 정신을 바짝 차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잠시라도 한 눈을 팔 수도 없고, 소임시간은 물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삼경인 밤 9시까지는 자리에 눕지 못한다.
이런 고된 행자생활을 하겠다고 몸이 호리호리하다 못해 여름에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연약한 청년이 해인사 행자실에 입방을 했다. 원철 스님이다. 정신력은 강했든지 대부분 몸으로 때워야하는 행자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수계를 했다.
원철 스님은 일찍이 강원에서도 글솜씨를 인정받아 해인사 강원학인들이 스스로 만든 <수다라> 편집위원과 편집장을 역임했다. <수다라>는 해마다 예산이 부족해서 편집장은 전국의 여기저기로 화주를 다녀야 할만큼 재정상태가 열악했다. 원철 스님은 이런 수고를 후배편집장에게는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 각고의 노력끝에 고갈된 재정을 다음해에도 책 만드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충분히 채워놓고 편집장소임을 넘길 만큼 책임감이 강하다.
원철 스님은 학구파이면서도 놀기 좋아하는 대중들과도 잘 어울리는 특이한 존재다. 우리반은 숫자가 전체학년 중에서도 제일 많았다. 그러다보니 별난 사람도 많았지만 원철 스님같은 학인 때문에 단합이 잘되었다. 지금도 동창회를 1년에 두 번 하는데, 원철 스님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대중이 하는 일에는 빠지지 않으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꾸준하게 해나가는 원칙과 소신이 있는 스님이다.
강원을 졸업하고는 해인사 율원과 은해사 승가학원, 실상사 화엄학림 그것도 모자라서 동국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제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참으로 꾸준한 학구파로서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다. 전통강원에서는 강백 무비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현대의 학문과 전통학문을 잘 아우른 셈이다. 아마 전생에서도 책 보기를 참 좋아했었나 보다.
조계종 포교원에서도 바쁜 소임인 신도국장 소임을 보면서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치러내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한다. 나는 인적자원이 풍부한 도반들이 많은 해인강원의 우리 도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좋다. 총무원과 지역 말사에서 열심히 소임을 보고 지역 말사에서 열심히 포교하는 스님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꿰뚫고자 제방 선원에서 좌복의 두께를 짓누르며 정진하는 도반들을 생각하면 그냥 미소가 떠오르고 나 자신이 즐겁다.
2004-11-03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