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해 도량 세우고 청소년 법회 열어 포교
원법 스님이 대전 보은정사를 창건할 때의 일이다. 보은정사는 처음에 보문산 중턱에 자리했는데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무허가 암자를 일제 정리할 때 자진 철거했다. 명분이야 여러 가지를 내걸었지만 시국사건 연루자 등이 숨을 공간을 없애자는 속셈이어서 엉뚱하게도 암자를 운영하는 스님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원법 스님은 적법하게 지었기에 문제가 없었고 당시 공무원들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만 스스로 의심의 티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철거한 것이다. 사제들과 신도들이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 하여 눈물까지 흘리며 철거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철거를 막고, 주지스님은 나서서 그들을 막는 차마 보기 힘든 일이 한동안 일어났다. 신도들이 스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찰을 수호하려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원법 스님이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혜성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정진할 때 사찰은 어려웠지만 공부에 대한 스님들 열의는 대단했다.
하루 세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해서 물을 마시고 견디며, 봄이면 산에 물이 오르기를 기다려 송기를 벗겨 먹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부처님 정법을 얻기까지는 한시도 게으를 수 없다는 각오로 아침저녁으로는 참선을, 낮에는 염불 정진을 하였다.
그러던 해인사 시절을 마감하고 도심포교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와서 보은정사를 창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다. 창건불사비용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처음으로 와본 도시이기에 신도 조직도 하나 없었다. 그러나 말뚝신심 하나로 목탁을 들고 탁발을 나갔다. 해인사에서 낮에는 염불 정진하던 그 모습 그대로 관세음보살님을 지성으로 부르며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하루종일 걸어 다니다가 지치면 아무 곳에나 바랑을 풀어놓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잠을 청했다. 날이 새면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예불을 모시고 또 탁발행각을 나섰다. 당시는 탁발승을 사이비라고 이상하게 보는 때여서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 동안을 탁발해서 마련한 불사금으로 겨우 도량을 이룩했는데, 이제 막 자리를 잡아서 법회할만 하니까 철거한다고 하니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도들은 탁발까지 하는 스님의 정성에 감동해서 하나 둘 오기 시작한 그야말로 개미떼같은 불자들이었다. 그러나 원법 스님의 결의는 단호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갔듯이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산 위 도량을 철거하고 나니 더 이상 산에서는 힘들겠다 싶어서 산 밑으로 내려와 천막을 치고 법당을 꾸렸다. 어려운 시절인데다 어려운 사찰이니 신도들이 그렇게 많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우리나라 불교가 자꾸 늙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에서 청소년법회부터 시작했다.
원법 스님은 법당을 세우고 나서도 법회와 불공을 하는 나머지 시간에는 탁발을 했다. 탁발을 하면 당시는 쌀 한 두 됫박이 시줏물의 전부였는데 가끔 사탕이나 과자를 받게되면 돈보다도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일요일에 절에 오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면 그 어떤 것보다도 호소력이 있는 법문이 바로 과자요 사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자 먹고 사탕 먹고 자라난 신도들과 그들의 부모가 오늘의 보은정사를 있게한 원력보살들이다.
신도들도 원법 스님을 닮아서인지 교도소법회나 소년원법회를 할라치면 주위에 알려서 법회에 필요한 물품들을 권선하곤 한다. 참여자들은 보시의 공덕을 얻게 하고 법회를 듣는 원생들에게는 진리와 함께하는 물질의 기쁨도 함께 해 준다. 보은정사에 서예반과 다도반까지 결성해 열심히 전법하는데 대전이나 충남 지역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봉사활동을 요청하면 뿌리치는 법이 없다.
스님은 명필이라 큰 사찰과 공공기관 현판 등에서 스님글씨를 가끔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괴산 다보수련원과 철원에 있는 월정리OP 석등이다. 다보수련원은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수련원을 필요로 하는 불교계의 소망을 이룩하기 위해 지은 대형 수련원으로 서돈각 이사장의 청으로 원법 스님이 상량문을 썼다. 월정리OP에는 석등을 세우면서 주관처에서 ‘남북통일석등’이라고 써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원법 스님은 언젠가 통일이 올 텐데 굳이 남북을 갈라놓아야겠느냐면서 ‘평화통일석등’이라야 글씨를 쓰겠다고 우겨서 지금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 쓰인 간판 옆에 하나된 조국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