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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끝)2부 73강 횡설수설의 강의를 마치며…/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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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신문은 ‘신판 대장경’
2년 반의 긴 횡설수설을 어떻게 마감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대불교신문을 폐간하겠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불 하나가 위태롭게 깜박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리고 사부대중 여러분, 그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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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오후 4: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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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2부 72강 왜 불교인가/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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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實無虛, 삶의 역설적 기술
<금강경>은 50회의 횡설수설에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편 절반의 본문 강좌 곳곳에 <금강경>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불교는 문자와 경전 밖의 불교를 말하지만, 또 한편 충분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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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 오전 11:3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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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부 71강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4/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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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루비읍, 법문 듣고 뜨겁게 울다
13장으로 <금강경>의 또 한번의 연주가 끝났다. 변주는 이번에도 핵심의 주 노트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주(住), 즉 심리적 토대 없이 사는 법을 연습하라.”
저 너머 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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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1 오전 11: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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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부 69강 먼지이면서 먼지가 아닌/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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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화로, 먼지덮인 사당
혜능의 해석이 ‘실천적’ 혹은 체험적 지평을 철저히 고수한다고 한 바 있다. 지금 13장의 “먼지는 먼지가 아니다. 그래서 먼지라고 한다.”를 두고 한 혜능의 해석은 이렇다. “이 말은 념념이 반야바라밀을 올바로 수행함으로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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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7 오전 11:1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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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부 67강 혜능의 실천적 충고/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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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
13장은 지금까지의 독특한 설파에 ‘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 명명이 혹 오해를 부를까 싶어, 몇 가지 다짐을 잊지 않았다. 혜능은 이 피날레에 대고 무슨 노파심을 언설했을까. 그는 다음에 보듯이 <금강경>의 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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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3 오후 1:4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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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부 66강 불교로 읽은 <님의 침묵>/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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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부재’가 아니다
만해는 <님의 침묵> ‘반비례’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 하는 때에 당신의 노래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여요.”
침묵 안에 님의 소리가 들린다? 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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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6 오후 3:1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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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부 65강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제 13/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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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은 지금까지의 재즈식 설법을 총괄하여, ‘이름’을 부여한다. ‘금강반야바라밀’이 그것이다. 이로서 설법은 완성되었다! 그러고도 혹 오해할까 싶어 노파심의 당부가 이어진다.
원문
爾時,須菩提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云何奉持. 佛告須菩提, 是經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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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8 오전 10:4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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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부 64강 12장 자심(自心)의 수지독송(受持讀誦)/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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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은 어디 있는가?
11장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은 무엇이라 했던가. 갠지스강의 모래알같은 은하계들을 다이아몬드로 도배한다해도, 그 보시 복덕은 ‘이 경전’의 글귀 하나 들려주는 공적에 까마득히 못 미친다고 했다. 이어 지금 12장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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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3 오전 10:5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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