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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 “장로 대통령, 종교갈등 부추기다”
33. 김영삼 前 대통령
올해 7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불교ㆍ개신교ㆍ가톨릭 등 3대 종교 지도자 300명을 대상으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종교편향적이었던 대통령으로 1위가 김영삼 대통령(42.7%), 2위는 이승만 대통령(30.0%)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 70.8%와 신부 48.9%가 김영삼 대통령을 꼽은 데 반해, 흥미롭게도 목사의 경우 8.9%만이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답한 반면 50%가 이승만 대통령을 꼽은 것을 보면 종교간 미묘한 정서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국민의 뜻을 위임받아 엄격히 집행하는 청와대라는 상징적인 공공장소에 목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본 일이다. “당선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던 개신교인들과의 철없는 약속을 지키는 맹신자의 모습이었으며, 그 후 수 년 동안 종교문제로 바람 잘 날 없으리라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청와대 예배’가 물의를 일으키던 날, 일간지에는 개신교가 거의 국교에 가까운 미국이란 나라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예배를 보러 교회에 가기 위해 백악관을 빠져 나와 무릎까지 찬 눈길을 걷는 사진이 실려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자기 종교 챙기는 데 극치를 이룬 것은 ‘국군중앙교회 예배사건’일 것이다. 그가 1996년 1월 21일 국방부 내 중앙교회에서 김광일 비서실장, 이양호 국방장관, 권영해 안기부장 등 공직자들을 대동하여 공개적으로 일요예배를 보는 모습은 TV와 신문을 통해 전 국민에게 보도되었다.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에 무지한 김영삼 정권의 장로집단에게 종교간 형평이나 군대의 사기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최고통수권자라면 마땅히 다른 종교시설도 둘러보고 그 종교를 가진 장병들도 격려해야 한다.

더구나 개신교 장병들을 많이 참여시키기 위해 이미 정해져 있던 당일의 일직과 당직을 모두 불교인 또는 가톨릭 장병으로 강제로 바꾸었고 경호상의 이유로 법당과 성당의 출입까지 통제하였다. 이 무슨 해괴한 공권력인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확립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종교 장병들의 종교적 기본권을 박탈했다는 위헌적인 일이 빚어진 것이다.

90년대 초 걸프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H.W.부시(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가 이라크 전장을 둘러볼 때 개신교 병사들로부터 예배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그는 “미국의 군대는 기독교 군대가 아니다. 비록 내 종교가 개신교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특정한 종교의 공식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종교의 의식에도 참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종교 병사들의 사기는 어떻게 하나”라면서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한다. 헌법수호를 선서한 대통령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나침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사회통합을 외면하는 현실이 왜 우리나라가 선진국가가 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인지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前 대통령의 또 하나의 종교편견 사례. 그를 대통령으로 모셨던 이수성 前 국무총리는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만해상 심사위원장과 해인사 동판불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만해라는 인물과 팔만대장경이라는 인류문화유산은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정신적 자산이라는 불교계의 설명에 일리가 있다는 판단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가 2년여 전 동판불사위원장을 맡으면서 국민모금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다니며 상임고문으로 모시고 싶다는 뜻을 전했을 때,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좋은 일 하느라 수고가 많다”고 격려해준 데 반해, 유독 김영삼 대통령만은 “곤란한데…”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라면 개인의 종교를 떠나 자국의 전통문화가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마땅하고 그 보존사업에 동의정도는 해줄 아량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취임 첫해 11월에 내한한 일본의 호소가와 총리가 불국사를 참배할 때도 다소곳이 합장하는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뻣뻣이 서 있던 장로 대통령의 그 옹졸한 모습에 국민들은 부끄러워했다. 고집불통의 이미지가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도움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반면에 문화의식이 부족하고 특히 종교적인 편견이 심해 개신교 장로와 대통령 신분을 구분 못하였기에 그의 재임기간 동안 타종교인들은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최근 우리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는 어쩌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커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김영삼 장로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그가 스스로 즐겨 쓰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과연 어떤 뜻으로 마음에 새겼는지 궁금하다. ‘문은커녕 담조차 없이 완전히 열린 상태’가 아니라 ‘쪽문 하나도 없이 꽉 막힌 담벼락’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박광서 교수(서강대) |
2007-10-31 오후 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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