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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 “강의석씨 대광고에 승소”
31. 역사적 판결
지난 10월 5일 서울지방법원(민사90단독 배기열 부장판사)은 “대광고는 강의석씨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학교가 종교의식을 강요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2004년 6월 당시 대광고 학생회장이었던 강씨(현재 서울법대 3학년)가 단식농성과 1인시위를 통해 ‘예배선택권’을 달라며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한지 3년 반, 그 후 2005년 10월 7일 대광고 재단과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지 꼭 2년만이다.

“종교단체가 선교 목적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하더라도 공교육 시스템 속의 학교로 존재하는 한 선교보다는 교육을 1차적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비록 학생들의 올바른 심성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도 종교에 관해 학생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쳐야지, 특정종교의 교리를 주입하고 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종교단체의 신앙 실행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고 상위의 기본권인 학생의 학습권과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요지다.

종교사학의 관행적 강제선교가 위법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 나오는 데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이유 없이 당해온 심적 고통을 걷어낸 순간이며, 가히 역사적 판결이라 할 만하다.

지난 3년은 참으로 긴, 그러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소송 진행과정에서 때로는 현실에 대한 인식 차로 인해 일부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반응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는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큰 원군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대광고측의 지연작전으로 두 해나 넘기면서 이 사건은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듯했으나, 강씨의 굳은 의지와 종교시민단체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인권사에 남을 만한 판결을 이끌어냈다. 더구나 예배에 불성실하게 임한다는 이유로 당시 교장과 지도교사가 학생들에게 몽둥이로 폭력까지 행사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그동안 강제성이 없었다는 대광고측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대광고측이 1심판결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앞으로도 1,2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종교사학들이 사건의 근본 원인을 74년부터 시작된 평준화 제도에만 돌린다는 점이다. ‘선지원 후 추첨’ 제도를 확대 실시하면 본인의 의사대로 입학했으니 이의 없이 종교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그러나 선지원 후 추첨 제도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미봉책으로는 학교선택의 형평성과 개종의 자유가 결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를 건학이념으로 하는 모든 학교에게 선지원 제도를 적용하면 특정종교의 사립학교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현실에서 타종교 또는 무종교인들에겐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차별을 피할 길이 없다. 더 본질적으로는 설사 특정종교인으로 학교를 선택했더라도 신앙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데, 전학이라는 번거로운 방법 외에 개종의 자유가 보장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학습권 이전에 종교가 우선인 공교육기관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종교와 교육, 그리고 헌법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심도 있게 논의해 보아야 할 사안이다.

다른 아쉬움도 있다. 법원이 “교육청 소속 담당공무원에게 집무집행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한’ 행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국가배상책임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함으로써 서울시 교육청의 감독 과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고의나 과실은 아닐지라도 정부기관의 관리감독 책임을 점점 더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추세에 반하는 판결로서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수십 년 간 수백만 학생들이 당한 정신적 고통은 거의 교육부의 무감각과 무책임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배 부장판사도 선고 직후 부연 설명을 통해 “양측이 서로 접점을 찾도록 교육당국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심의 한마디로 들린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는 구체적인 입법화 등 필요한 조치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자유권ㆍ평등권ㆍ행복권 등의 시민권을 확대하는 추세다. 설문조사 결과 헌법학자들의 80% 이상이 종교사학일지라도 종교 강요는 위헌이라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계 학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판결로 지금까지처럼 무리한 종교교육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종교가 소모적인 인권침해 공방에 휘말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광서 교수(서강대) |
2007-10-17 오전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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