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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 “공직자 종교 발언 삼가야”
30. 공직사회의 종교오염
종교인들 중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정종교 신자임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공개적인 종교 표현을 상식에 어긋나는 일로 간주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노골적인 종교발언이 잦아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취향이라면 할 말이 없으나 그가 공직자 신분이라면 차원이 전혀 달라진다. 그런 행위는 국민들로부터 일시 위임받은 ‘세속적 권력’과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이용하려는 위헌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농촌공사의 한 지사장이 자신의 명함 앞면에 ‘지사장 ○○○’, 뒷면에는 ‘○○교회, 장로 ○○○’라고 인쇄, 보기에 따라서는 장로임을 먼저 내세우는 명함으로 느껴져 타종교인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게 사용해 온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었다. 공기업인 한국농촌공사의 윤리강령 제10조 2항에 “임직원은 학연, 혈연, 종교, 직급 등에 따른 파벌 조성이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되어 있음을 상기시키자 잘못을 시인하고 명함을 폐기함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에 별 문제의식 없이 종교색깔을 띠는 부적절한 행위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이다.

수년 전 필자가 나온 학교의 동창회장이 임기를 마치면서 동문들에게 보낸 공식 인사말에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으며 은총을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라고 썼던 적이 있다. 순수한 친목과 우정의 자리가 되어야 할 동창회마저 타종교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필자가 일부러 “공인인 회장의 처신으로는 적절치 못하다”며 정중히 답신을 보냈고, 그 후 종교적 색채는 많이 없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들이 일상화 되면 큰 문제가 되는 법이다.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닌 이유이다.

2001년 6월 4일 당시 임내규 특허청장은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월례 조회석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리석으며… 본인은 새벽에 미사에 다녀왔다”며 특정종교를 믿으라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켜, 조계종 사회부장 스님을 만나 공식 사과까지 한 바 있다. 또 2004년에는 당시 전태홍 목포시장이 11월 26일 목포 KBS홀에서 열린 ‘2004 목포복음화 대성회’에 출석해 “목포시가 하나님의 도성으로 발돋움하도록 기원해 달라”고 말했으며, 당시 조규선 서산시장도 7월 27일 시청 회의실에서 열린 지역기관장 모임에서 “서산의 복음화를 위해 기관장들이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며 노골적으로 특정종교를 찬양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이영무 기술위원장도 ‘못 말리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는 올해 6월 11일 FIFA 청소년(20세 이하) 대표팀의 출정식에서 “정몽준 회장께 다윗 같은 지혜와 리더십을 허락해 한국 축구가 이처럼 발전하게 해주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부상한 프리미어리거 4인방에게도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것”이라며 기도를 했다. 안산시 할렐루야팀의 단장으로서라면 모를까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기술위원장이란 공인으로서는 자질이 의심되는 행위다. 그는 2006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실시했던 미주 전지훈련 동안에도 휴식일에 몇몇 선수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 간증을 하는 등 타종교 선수들의 사기를 고려치 않는 부적절한 종교활동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공공행사에서 종교분위기 연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입학식, 졸업식, 투표장 등을 특정종교 시설을 이용하거나 띠 또는 현수막 등으로 특정종교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문제다.

2005년 4월 18일 세종홀에서 가진 4.19혁명 45주년 국가조찬기도회가 보훈처와 문화관광부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행사임에도 공익성이 배제된 채 개신교 기도회장으로 변질되어 당황했던 불자들의 항의성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4.19 관련 3개 단체가 주최한 것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기독교계(대회장 한기총의 이만신 목사, 준비위원장 김홍대 목사)가 4.19라는 엄숙한 이름을 빌어 교회 띠 두르고 안내하고 기도하는 등 국가예산을 사용하여 선교기도회를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주최 측은 오히려 문제 삼는 불교계를 비난하고 심지어 폭언과 욕설까지 퍼부었으니 작반하장도 유분수다.

기독교 행사로 하고 싶으면 기독교인들끼리 기독교 관련 장소에서 기독교 재원으로 하라. 일반인들까지 초청하여 공공시설에서 공공기관의 후원으로 치르는 공공행사를 종교로 덧칠하고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는 그 무지가 우리 사회를 피곤하게 한다.

특정종교 신자임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항상 종교를 앞세우는 공직자들을 그저 ‘못 말리는 사람’으로 넘겨버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종교오염이 우려할 만한 수준임을 고려할 때 공식 석상에서 공인의 위치를 망각한 종교적 발언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지 않나 판단된다.
박광서 교수(서강대) |
2007-09-26 오전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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