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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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의 흐름처럼 선맥(禪脈) 이어지길
30. 가지산 석남사

“산행을 직접 해보면 기가 막힙니다. 통도사 영취산에서 시작해서, 심불산 간헐산 배내고개 넘어오는데, 심불산 심불평원 억새가 기가 막힙니다. 배내 너머 능동산 넘어오면 사자평이고, 사자평에서 능동산 제약산 천황산 그렇게 있고, 또 능동산에서 넘어오면 가지산 운문산. 거기서 일로 빠지면 문복산. 문복산에서 고현산. 그게 다 천 고지가 넘는 거에요. 그 전체를 영남 알프스라카지요. 영남 일대에서 눈 오는 데 여기뿐입니다. 그 중 가지산이 천이백 고지로 젤 높아요. 지금은 길이 뚫려가 터널 따 빠지면 호박소에요.”

덕현리에서 3년 째 식당을 하고 있다는 김준모(53)씨의 말이다. 그런데 이 높은 산들을 넘어 사람들이 나다녔다고 한다.
“얼음골 이런 사람들이 언양장 보러 넘어 다녔으니까요. 배내 사람들이 석남재를 넘어 다녔어요.”

지금은 울주군의 변두리처럼 여겨지는 언양이지만, 예전부터 언양장은 인근에서 알아주는 규모의 시장이었다. 지금도 언양 장날이면 양산 기장 경주 등지의 상인들이 찾아들어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을 만든다. 특히 ‘언양 불고기’와 ‘언양 미나리’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서 미식가들은 불고기에 곁들여 먹는 미나리 맛을 잊지 못하여 찾아들기도 한다.

덕현리는 하천을 중심으로 석리와 행정으로 나뉘고, 석리, 행정과 더불어 소야정, 살티, 삽재 등 작은 단위로 나뉜다. 마을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인근에 온천이 있어서, 울산 등지에서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행정 마을로 들어서니, 민박이라고 붙은 간판이 많다. 손님은 드물어 보인다. 회관 앞쪽에서 두 사람이 부추 밭에서 부추 베는 일을 하고 있다.

“십여 년 전에는 민박도 있었는데, 그 때는 있었지. 지금은 없심다. 사람이 없심다. 젊은 사람은 다 돈 벌러 가불고, 이런 거 저런 거 나는 것으로. 묵고 삼니더.”
조복수(71)씨의 낫질은 빠르다.

“대처스님들 있을 때, 우리 쬐깐 했을 때, 속가가 있었죠. 내가 열 다섯에 이쪽으로 이사를 왔죠”라고 말하는 조복수씨와 “울 엄마 닮아서 못 생겼어”라고 말하는 윤경옥(44)씨.
“지짐 부쳐 먹을려고 하고 있어요. 많이 해야 된디.”
딸의 말에 어머니는 부지런히 부추를 베어준다. 윤씨는 이 마을의 민박이 안 되는 이유가 불편함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 샤워 시설이랑 다 돼 있어야만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됩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키웠던 경험을 들려준다.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이었는데, “여기 한 달 키와 놨더니, 아토피가 다 나았어.”

자연만한 백신도 없고, 자연만한 치유약도 없다는 것.
미나리를 파는 윤애자(64)씨는 활짝 웃으며 반긴다. 미나리와 옥수수 삶은 것 등을 파는데, 차들이 지나다 멈춰 사간다고 한다. 언양 미나리의 유명세 때문이다.
“여는 다 생으로 먹는다, 하도 깨끗해놔서.”


석남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것 같다. 고기가 살기에 미안해 할 정도 깨끗하다. 그래도 청정1급수에 사는 녀석들은 슬그머니 보금자리를 펼쳐 놓았다.

“저 위에 쪼만한 가게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지요. 여름에 물이 많으면 사람들이 많이 있죠. 절 안에 불당 마을이라고, 절 안에 마을이 있긴 있어요. 스물일곱에 왔으니까네, 사십사 년 되간다.”

이정필(71)씨로부터 절 안에 있는 마을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곁든다.
“불당 마을? 두 집배끼 없슴다. 전에 몇 집인지, 내 아나, 모린다. 석남사 절 머슴집 아닝교? 절에 일 하니까에, 절 머슴 아닝교.”

몇 사람을 더 만나보니, 석남사에 대한 불만이 많다. 석남사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석남사 몇몇 스님들이 하는 일에 대한 불만이리라. 석남사 앞 가게들이 대부분 석남사 소유라 한다.

“개인은 못 지어요. 다 절거죠. 칠천만 원에 사십 몇 만원 받아 먹여요, 건물 한 칸에. 무료 주차 하는 거는 부산상회 개인 거고요. 유료 주차장은 석남사 거에요.”

부산상회 뒤편 주차장 가운데엔 삐뚤삐뚤한 철제 장벽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 부산상회 개인 소유의 땅과 절 소유 땅의 경계를 표시한 듯했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들어간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한참 만에 길은 계곡과 엇갈린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나무아비타불’이라는 글씨가 적힌 표지석이 앙증맞다. 물소리가 희고 시리다. 석축 위에 자리 잡은 석남사는 마음 닦기에 알맞은 곳이다. 대웅전 앞에는 천 년 전의 삼층 석탑이 있고, 연꽃이 피어 부처님좌를 만들고 있다. 대웅전을 지나면 부도탑이 있다. 안내글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선종을 전파한 ‘도의 선사의 사리탑이라고 전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도의 선사는 육조혜능 조사의 법을 이은 서당지장 선사의 심인을 받아 우리나라에 남종선을 최초로 전한 인물이다. 도의 선사는 장흥의 가지산에 머물며 선법을 펴려 하였으나, 그의 선리(禪理)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북쪽으로 가서 설악산 진전사에 40여년 은거하며, 염거 화상에게 법을 전했다. 장흥의 보림사가 선종 종찰이 된 것은 염거의 뒤를 이은 보조국사 체징에 의해서다. 그러므로 도의 선사가 석남사에 머물렀다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다만 산의 이름이 가지산이므로 이곳에도 가지산문의 선풍이 크게 떨쳐 일어났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석남사 뒷산인 가지산은 예전에는 석안산으로 불렸다.

비구니 사찰인 석남사, 청아한 독경 소리가 물소리와 섞여 자연스럽다. 오래 전 선승들의 맑은 가르침처럼, 불법을 전하며 흐르는 물. 물의 그치지 않는 흐름처럼 선맥(禪脈)이 이어져 본마음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맑은 향이 퍼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고래를 노래하는 시노래 가수 - 남미경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에는 반구대 암가화가 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을 그린 그림인데,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각종 의례를 거행하였을 것이다. 암각화에는 고래, 물개, 사슴, 호랑이 등 각종 동물의 형상과 사냥을 하거나 배를 탄 사람의 모습, 그물과 작살을 비롯한 각종 도구들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는 참고래, 혹등고래, 향고래, 큰고래 등 46마리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고래의 도시 울산에서 고래를 노래하는 가수 남미경(38)씨를 만났다. 그녀가 부른 고래에 대한 노래는 “고래를 기다리며” “장생포 김씨” “장생포에서 청진항까지” “어머니의 고래” 등이 있다.

울산에 다시 고래가 돌아오길 바라며 노래를 부른다는 그녀. “고래가 돌아온다는 것은 환경이 살아있다는 것이죠. 생명운동 자체가 환경운동이고, 환경이 좋아져 자연적으로 먹이사슬이 갖춰지면, 고래가 많아지겠죠.”

울산에는 고래 박물관과 고래 연구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곳들이 ‘고래 운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돌고래 쇼가 아니고, 밍크고래 같은 게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수족관에 들어가야 되는 것은 쇼를 위한 고래가 아니어야 하죠. (반구대 암각화)그림에 그려져 있는 고래들은 멸종된 것이에요. 아이들에게 왜 고래가 돌아와야 하는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쉽더라고요.”

결국 그의 고래 노래는 환경운동이고 생명운동인 셈이다. 고래 도시 이미지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울산시는 죽은 고래를 보여주기 보다는 산 고래가 돌아올 수 있는 환경개선에 먼저 눈 떠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물에 잠겨 심하게 훼손되어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언양=이대흠(시인, 본지 객원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7-10-11 오후 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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