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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동학사지요. 옛날에는 여관 같은 게 저 위에도 있었는데, 그런 게 다 내려왔지요.”
대여섯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얻은 것은 이것 밖에 없다. 손님 많은 곳의 인심이 더 야박하다. 도시에 가까울수록, 손님이 많을수록 말 한 마디 붙이기가 수월하지 않다. 이 나라 절집 백여 군데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손님 많은 절의 사하촌에서는 정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동학사도 예외는 아니다. 대전광역시에서 가까운 탓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보니, 저마다 손님 맞기에 바쁘다. 또한 물건 살 손님이 아니다싶으면 말대답도 하지 않는다. 사진 찍히는 것도 마다하고, 이름 알려주는 경우도 없다. 절로 향하는 사람은 꽤 있지만, 가게를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가하지만 가게 주인의 눈길은 말 거는 내게 향하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거리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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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 내려가 학봉초등학교 근처로 간다. 동학사 아래의 상가들이나 초등학교 인근이나, 행정구역상 지명은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속하지만, 상가들은 따로 ‘동학사’라 부르고, 초등학교 근처는 학봉리, 혹은 돌이 많다고 하여 석봉리라고 부른다. 이 마을도 절반쯤은 상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만난 사람이 이종길(65)씨다.
“여기가 석봉, 저 위 동학사, 저 아래가 말목재, 저 밑이 지석골, 저 짝 건너 사기수, 그 짝 너머에 신도안. 다 학봉리.”
“신도안까지요?”
“거기는 아니고.”
마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고, 예전에도 스님들의 속가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한 가지 특색이 있는데, 무슨 질문을 하면 자신이 그것을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장사는 하지 않고, 밭농사 조금 짓는다는 이종길씨는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서울도, 부산도, 대구도, 제주도도 안 가 봤어.”라고 말한다. 여행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비가 와야 허는디, 너머 가물어.”
몇 사람을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마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상가가 많은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외부에서 들어왔다. 절 가까이 살지만,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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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에서 동학사라 불리는 상가 밀집 지역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쯤 된다. 땡볕을 견디는 벚나무 잎색이 더 짙어진다. 멀리 보이는 솔숲과 암봉의 대비는 절묘하다. 현으로 깊어지는 소나무 숲 사이로 도드라진 암봉은 파르스름하게 잘 깍인 스님들의 정수리 같다.
노점상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게 보인다. 오디, 딸기, 대추, 군밤, 구운 옥수수 등을 판다. 장사가 되지 않아서인지 아예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매표소를 지나 절로 든다. 동학사에 대여섯 번 왔지만, 오후에 온 것은 처음이다. 이른 아침의 동학사도 싱그러웠지만, 오후에 온 동학사도 마음속을 푸르게 물들인다. 수량이 많지 않는 동학사 계곡에 단풍나무나 쪽동백나무의 잎의 녹색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다. 쪽동백나무 연두 그늘은 성스럽다. 그 그늘은 몸을 헹구고 마음을 헹구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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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일주문이 보인다. 글씨는 지난 2월 타계한 여초 김응현 선생의 작품이다. 동학사에 올 때마다 나는 여초와 일중의 글씨를 비교해 보는 재미에 빠진다. 일주문 현판의 글씨는 여초가 썼지만, 범종루의 글씨는 일중 김응현 선생이 썼다. 친 형제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현대 한국 서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 서 있다가, 형인 일중이 지난해에 타계하였고, 뒤이어 여초도 이승을 하직하였다.
사람이 드문 초록 길을 애벌레가 기어가듯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사람들의 바람이 깃들었을 조금만 돌탑들. 바람은 사람들의 영원을 흩트리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먼저 보이는 것은 문수암이다. 동학사는 특이하게도 문수암, 길상암을 비롯한 몇 개의 암자와 고려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단종과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숙모전(옛 초혼각), 신라 충신 박제상의 위패를 봉안한 동계사 등의 건물이 나란히 모여 있다. 그런데 여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사천왕문과 금강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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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동학사에서만 볼 수 있는 문창살 무늬가 있다. 원목으로 부조를 뜬 것 같은 무늬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하나의 문짝에 하나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문양도 특이한데 문짝마다 다르다. 소나무에 학 두 마리가 새겨진 문양이 맨 먼저 보인다. 소나무 뿌리 근처에는 고란이 자라고 있다. 그 옆문에는 대나무가 새겨져 있고, 그 옆문은 국화 문양이다. 어쩐지 절집에서 즐기는 문양들이 아니다. 그렇다.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은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이다.
부처님을 배알하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범종루 옆에 수련이 피어 있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라 연꽃이 봉우리를 닫고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라다. 연꽃은 이른 아침에 꽃봉우리를 열었다가 오후 세 시쯤이면 봉우리를 다물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충만한 양기를 받겠다는 꽃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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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동학사. 어여쁜 봉우리들이 부드럽게 감싼다. 요니를 신으로 받드는 인도인들의 지혜가 새삼스럽다. 아늑하다. 어머니의 자궁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문득 양수 터지듯 독경 소리가 들려온다. 비구니들의 독경은 처음에는 경전이더니, 이내 음악이 된다. 피리 떼가 계곡을 치고 올라간다. 피리 떼가 나무 잎 속으로 스민다. 피리 떼가 내 안으로 들어 나를 해체시킨다.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씩 풀려 나간다. 나는 나마저 놓아 버리고 피리 떼에 섞여 골짝 골짝을 헤치고 다닌다. 사랑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고 노는 것임을 비로소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