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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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도인 일화 마을의 자랑
금성산 다보사

“짐동, 지임동이락했다 그래. 어른들 말씀이 그래. 짐(김)이 나대서 지임동이라 그래.”
“그 전에는 팔십 가구였는디, 지금은 더 되야. 식당은 많애라.”
“농사가 없어. 빈촌이여, 빈촌. 물도 없고, 농토도 없고, 그래.”
“시내 나가서 품 팔아서 묵고 살제. 벌만이로(벌처럼) 사냥해서 들오제.”

행정상 명칭은 나주시 경현동. 다보사 아랫마을 누정에 소주 두 병 아이스크림 몇 개를 풀어 놓았더니, 환담 중이던 사람들의 입에서 저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스님들의 속가는 없었냐고 하니까, ‘이 마을에는 없었다.’고 김금제(80ㆍ경현동)씨가 말한다.

“우와 시님, 우악 시님. 돌아가신 스님이 진짜 시님이었제. 솔찬히 되야. 한 30년도 넘겄오.”
천진도인 우화(雨華) 스님(1903-1976)에 대한 얘기다.
“그 냥반 돌아가실 때 사리가 질 많이 나왔닥 해. 문 악헤서 했어.”
“시님이 참 좋으셔. 가먼 마음을 편하게 해 줘요. 이야기도 해주고, 술 생전 그란 것은 안 자싱께. 술값 주고 그란 것은 없어. 처세를 잘 했어요.”
“택시 타고 다닌 법이 없었어. 차도 읎고, 시내 장 봐도 지고 올라가고 그랬어.”
승육숙(64)씨와 김연자(64)씨가 주거니 받거니, 스님과 관련된 일화를 풀어 놓는다.
“키도 쪼그만 해 가지고, 짝달막하니, 얼굴을 봐봐. 꼭 뚜께비 상이어 갖고, 상호가 존 사람이어 갖고, 그래 갖고, 다보사를 지켰제. 쩌그 나무라도 하고 그라먼 스님이 고함을 치먼, 산이 쩌렁쩌렁 울리고 그랬제.”
이점순(86)씨의 말이다.

스님이나 대사라는 호칭보다는 도인이라는 칭호로 더 많이 일컬어지는 우화 스님. 스님에 대한 일화는 알려진 게 많다. 스님이 예산 덕숭산 수덕사의 산내 암자인 정혜사에서 만공 선사를 모시고 수행하고 있을 때, 여름 결제에 앞서 모든 스님들이 탁발을 나갔는데, 우화 스님만 절 마당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자 만공 선사가 “그대는 왜 탁발을 나가지 않는가?”라고 꾸짖자, “스님. 생사대사(生死大事)가 화급한 사람은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해서 천하의 만공도 “그렇게까지 급한 사람이라면 탁발할 여유도 없겠지”라고 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살아있는 것이라면 모기도 죽여서는 안 된다하여, 우화 스님의 모시옷은 사람의 피를 포식해 배가 터져 죽은 모기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는 이야기, 다보사 주지 시절 도둑에게 해우소 불사를 위해 모아둔 돈을 빌려주어 도둑을 감복시킨 이야기 등. 천진도인다운 그의 일화는 굼뜬 후인에게 죽비소리로 들린다.

“절에 다닌 사람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애.”
김금제씨의 말끝에 김연자씨가 손가락을 꼽으며, “길동 어메는 인자 다녔고…” 하는데, 난데없는 고함 소리가 들린다. 김금제씨다.
“모른 소리 하지 마씨오. 길동 어메는 지그 한아씨 때게부터 댕긴 사람이여. 지그 시아부지, 어메가 끌텅이여, 끌텅.”
무안해진 김연자씨가 입을 다문다. 마을 사람들 중 절에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이라도 살림 잘 하는 시님만 오먼 할 수 있제.”
김금제씨의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현재의 절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래서인지 절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우화 스님에 관계되어 있다.

경현동엔 닭요리 잘 한다는 집들이 몰려있다. 간간이 드나드는 차량들은 대개 닭요리 집으로 향한다. 처음 닭요리 집이 생긴 건 25년 전쯤이다. 70가구가 넘는 마을이지만, 농사짓는 집은 세 집뿐이라고 한다. 지금도 외지에서 들어오는 집들이 있는 반면, 또 그만큼 마을에서 나가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이 동네가 열무가 유명해라. 그래서 조합에서 해가지고 열무 살릴라고 그란닥 합디다. 경현리 것이라 하먼 알어 줘라. 토질이 틀려서 근닥합디다. 저 건너는 논에다 많이 하고, 여그는 자갈밭이라 좋닥합디다.”

김연자씨의 말에 척박한 땅에서 살아왔을 이들의 고단한 삶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을을 지나 절로 향한다. 오래전 우화도인이 바랑을 매고 걸어 올랐을 길. 절 밖에서는 공양을 하지 않았기에 그가 절에 들어올 때는 허기져 있을 때가 많았다.

도력 높은 스님의 생애를 되새기며, 길을 오르자 어느새 숲 깊은 다보사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여관처럼 지어 놓았다고 말하였던 신축건물이다. 계곡을 꽉 채우고 있는 건물은 숲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용도는 다양할 터이니 그 쓰임은 아름다울 것이다.

금강문을 지나니, 범종루가 보이고, 대웅전이 보인다. 범종루에는 달랑 범종 하나 뿐이다. 건륭32(1767)년 제작되었다는 범종. 조선 후기의 제작된 범종이지만, 고래를 무서워 한다는 두 마리의 포뢰를 새긴 조각 수법은 빼어나다. 기와 사이에 흙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쌓여진 굴뚝은 이채롭다. 대웅전 처마에 닿는 높이인데, 여러 넝쿨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있다.
언제 보아도 다보사 대웅전 꽃살문은 옛적 장인의 섬세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국화, 매화, 모란을 새겼다고 하는데, 연꽃 문양으로 보이는 무늬도 있다. 천천히 영산각 갔다 오는 길.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나오더니 기와로 쌓아둔 담 위에 서서 물끄러미 나를 본다. 아니 한가히 마실 나온 다람쥐 한 분이 육진에 묻힌 내 눈을 바라본다. 두려움도 성냄도 없는 다람쥐의 눈을 향해 합장을 하고 가만히 돌아선다.

불모 만하 박정자 선생
국내 최초 여성 단청장


박정자 전통불화연구원은 대문부터 색달랐다. 삼태극이 그려진 대문 위로 세분의 부처님과 부처님을 협시하듯 활짝 핀 연꽃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그림 주위엔 덩굴장미가 한창이어서 부처님 주위는 꽃향기로 가득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단청장 보유자 후조 만하(卍霞) 박정자(69ㆍ나주시 산정동) 선생은 여성으로는 국내 최초의 단청장이다. 서예와 동양화를 하였던 그가 불화에 빠져든 것은 1971년 만봉(卍奉) 스님의 불화를 보고나서였다. 어렵게 입문을 허락받고, 신촌 봉원사를 오르내리며, 불화 그리기에 열중하였다. 이미 3남 1녀를 둔 주부의 몸으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1986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금니부모은중경’이라는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불화는 그리고 싶다고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형언할 수 없는 어떤 힘에 끌려 그려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싶다’와 ‘그려진다’의 차이는 크다. 불화는 그림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손재주나 요령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야 한다. 또한 워낙 세필로 그리기 때문에 보통 탱화 하나를 그리는 데는 4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렇게 탄생한 불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불화 그리는 이를 불모라 칭한다.

아무리 불모라지만, 작품이 워낙 크다보면, 여기저기 깔고 앉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심이 곧 불심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임하다보니, 환희심이 일더라고 한다.

도제로 전수되는 불화작업은 기초를 배우는 데만도 10여년이 소요된다.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업실을 가득 채운 불화들 곁에 생소한 작품 하나가 눈에 띈다. 널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하는데, 나만은 아름답게 살다 아름답게 맞이하고 싶은 거지요. 여유 있게 아름답게 죽음까지도 예견한 부처님의 그 마음이 의미 있게 여겨져서 저도 관이라도 하나 마련해서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

의류에도 관심이 많아 전통불교 문양에 바탕을 둔 화보집까지 만들었다. 또한 그가 입고 있는 옷도 스스로 문양을 만들고 디자인 한 것이다. “옷이 예쁘다”고 하자, 수줍은 소녀처럼 웃는다. 죽음을 담담하게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소녀의 미소가 환하다.

어렵게 그린 작품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던 그다. 그가 ‘생사일여관(生死一如觀)’을 말한다. 불심이 깊어서인지, 하나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가 오는 10월에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생사를 초탈한 그의 작품이 기대된다.
나주=이대흠 시인 본지객원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7-07-18 오후 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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