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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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 광신적 전도, 종교성 잃어
수년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녀들을 대상으로 ‘연인간의 종교 갈등’을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 연인 10명 중 4명 꼴로 종교 갈등을 경험했고 이중 절반 이상이 종교 문제로 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특이할 점은 종교 갈등이 주로 불교와 기독교 사이(47%)에서 있었다는 점이다. 불자로서 우리 사회의 종교간 불화에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하고 숭산 스님을 만나 한국선불교를 접한 후 승려가 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 스님이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기독교인이 다가와 “예수 믿으세요, 부처는 사탄입니다. 왜 기독교나라에서 온 당신이 머리를 깎고 마귀의 종교를 믿습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현각 스님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라고 답해 주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그렇게 응대했다니 어지간히 짜증스러웠나보다. 어떤 스님은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예수 안 믿으면 천당 갈 수 없어요” 하는 말에 “관상을 보니 하나님이 천국에 빨리 데려갈 상이군요. 그렇게 좋은 곳이라니 먼저 가시지요” 하고 비꼬아 질겁하고 사라지게 했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금강산 신계사 주지스님께 “신계사가 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된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긴 승복을 입은 스님들에게까지 무례하게 전도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오죽할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시도 때도 없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논쟁하려 들기도 한다. 그들에겐 좋은 것을 알려준다는 호의이거나 선교 훈련의 일종인지 모르겠으나 당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성가실지 생각이나 해 보았는지. 타인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

그나마 이런 정도는 무지하고 몰상식하기는 하나 순진하다 할 수도 있다. 타종교인에 대해 분명한 증오심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부간에도, 가족간에도 지나친 종교 강요나 전도 때문에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유치원이나 초중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어린 학생들에게 “불교는 마귀의 종교”라고 가르치거나 불교집안의 학생에겐 “사탄을 믿는 아이”라고 낙인찍어 따돌리기도 한다니, 평생 씻을 수 없는 그 아이의 상처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것인가. 교사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엔 자칭 전직승려였다는 사람들을 앞세워 불교비방 집회를 하거나 신문광고를 내는 등 자극적 도발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불교행사 안내지나 플래카드 등에 낙서를 하거나 찢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몇 해 전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불교 동아리에서 현각 스님을 모시고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교내에 붙여진 수십 개의 인쇄된 안내문이 하루만에 모두 떼어 없어져 황당했던 기억도 있다. 사찰이나 불상에 빨간 페인트로 칠을 하거나 십자가를 그어 놓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아예 내놓고 공격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심신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불상의 목을 자르거나 사찰 방화가 대표적인 예이다. 1990년 세계 최초로 불교방송이 개국된다고 하여 모든 불자들이 기뻐하고 있을 때, 개국 바로 전날 이교도에 의해 불교방송 법당에 모셔진 불상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얼마나 충격이었던가. 기독교 방송은 1954년에 개국하여 훨씬 많은 지역국을 갖춰 놓고 수십 년 간 선교방송을 해온 사실을 생각하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불교 동아리에서도 가끔 불상이 파괴되기도 한다. 전국의 사찰과 불교시설이 그들의 목표가 되고 있고, 심지어 전화를 걸어 욕을 하거나 협박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무종교 또는 타종교인들에게 무례를 넘어 이렇게까지 공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사전에는 ‘예의’나 ‘배려’라는 단어조차 아예 없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공격성을 단순히 개인적인 성향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의 교리 해석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혹시라도 부지부식간에 증오심과 적개심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종교 교육은 없었는지, 종교인 각자는 물론 교단적 차원에서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극소수 광신자들의 일탈행위라고 짐짓 모른척하기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고 나아가 사회 통합을 심각히 저해하는 암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위선과 배타를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상대방의 종교와 인격에 대하여 생각하는 훈련이 절실하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광신적 전도행위는 오히려 종교성을 훼손할 수 있다. 종교학자 장석만은 “하나의 종교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때는 항상 불행했다. 종교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측면이 있는 한편 인간의 잔인성을 거리낌 없이 배출해온 측면도 있다. 그래서 종교인은 항상 ‘다른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려는 충동을 이기기 위해 긴장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종교의 이중성에 대해 늘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박광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
2007-04-12 오후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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