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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 “종교자유ㆍ정교분리 서구인들 경험 산물”
2003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슈뢰더 독일 총리는 정치적ㆍ종교적 중립이 상호 지켜져야 한다는 이른바 ‘세속주의(secularism)’에 충실하기 위해 공립학교와 직장에서 교사나 공무원들의 히잡(이슬람 여성의 머리 스카프) 착용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2004년에는 영국 정부가 종교적 증오 유발행위를 금지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국은 최대 7년 징역형까지 가할 수 있는 ‘인종 증오 유발 금지법’을 이미 1986년에 제정된 바 있는데,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 또는 차별행위의 금지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종교적 증오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키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종교중립에 대한 서구인들의 엄격한 태도는 좀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해할 것도 같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전쟁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종교전쟁이 그 어떤 전쟁보다 비참하다는 사실은 유럽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친 종교전쟁인 십자군 전쟁은 1096년에 시작되어 1270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치러졌다.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까지 남김없이 죽이고 모든 것을 불태웠다. 이때 십자군 기사들은 “우리는 말을 탄 채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 피의 강을 지나갔다. 솔로몬 사원은 오랫동안 이단자들로부터 불경스러운 모독을 당해왔으니 이단자들의 피로 가득 채운 것은 하느님의 훌륭한 심판이 아닐 수 없다”며 살육의 환희에 울부짖고, 심지어 인육을 요리해 먹었다는 기록까지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광기어린 잔혹성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지지만 그 당시 그들에겐 얼마나 거룩한 전쟁이었겠는가. 1572년 프랑스에서 신교도 수천 명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 사이에 무자비하게 떼죽음을 당한 ‘성바돌로매의 대학살’ 사건도 인류 잔혹사 중의 하나이다. 중세 이후 유럽을 휩쓴 종교전쟁의 결정판으로 역사상 제일 치열했던 종교전쟁은 신ㆍ구교 간의 소위 ‘30년 전쟁(1618~1648)’이었다. 이 파괴적인 전쟁은 유럽 대륙 거의 전역에서 벌어졌으며, 종전과 함께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유럽의 종교 유혈극이 막을 내림과 동시에 종교자유와 정교분리가 제도적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1789년 혁명 때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하였고, 미국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 대신 법전에 손을 얹는 것도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에 근거한다. 종교전쟁의 그 처절함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확보된 셈이다.

오늘날 서구에서 누리고 있는 종교의 자유는 이와 같이 수많은 사람의 피를 통해 얻어낸 것이기에 다른 어떤 자유보다 더 귀중하고 가장 본질적인 자유이다.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는 단순히 한 종교를 선택할 권리만의 문제가 아닌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양심의 자유이자 물러설 수 없는 인권이었던 것이다. 인권학자들도 근대 이후의 역사는 사실상 ‘인권의 역사’라고 할 만큼 인권은 그 어떤 가치보다 역사의 현장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특히 서구문명의 발달사가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현대적 종교 인권개념은 유럽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서구사회의 ‘종교자유’와 ‘정교분리’는 그들의 뼈아픈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꼭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이 오랜 경험을 통해 마음 속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법적ㆍ제도적으로 철저히 해두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종교박물관이라는 우리나라의 ‘종교자유-정교분리’ 지수는 어느 수준이나 될까. 우리는 종교자유에 관한 유럽인들의 별나다고 할 만큼 철저한 태도를 두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면서 남의 일처럼 느긋하게 말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인 듯싶다. 서구사회의 종교 인권 의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의 기독교가 여러 가지 갈등문제를 일으키는 일차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들 중 ‘성경은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목회자가 85%, 평신도는 92%에 달한다고 한다. 1910∼20년대 미국의 선교사들이 서구종교 우월주의에 기반해 전통적 신앙을 비난하고 말살하고자 가르쳐준 대로 너무나도 철저히 믿고 따르는 한국인들에 대해 미국인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지구상의 기독교 중 한국의 개신교가 미국 다음으로 배타성과 공격성이 강한 배경이며 우리 사회의 통합에 오히려 부정적인 기능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이다.
박광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
2007-04-12 오후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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