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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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佛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불교문화 클러스터 사하촌을 가다-도솔산 선운사 아랫 말

시절 인연에 맞추어 조화롭게 변해가는 도솔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있는 선운사는 조계종 24교구 본사로 신라 진흥 왕이 창건했다. 진흥 왕이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진흥 굴에서 잠을 잤는데 꿈에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기이하다 여긴 진흥왕은 중애사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선운사 불사의 시초라 한다. 한때는 승려 3천여 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 금동 보살 좌상, 도솔암의 지장보살 좌상, 참당암 대웅전 등 보물이 있어 학생들의 수학여행 지로도 유명하였다. 겨울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경내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선운사 주변의 동백 나무숲은 노랫말로 불리어져 봄철에 꼭 들르고 싶은 곳이 되었다. 매년 4월이면 붉고 탐스러운 동백꽃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산골 마을은 만원이란다. 500년 된 동백 나무숲은 선운사의 자랑거리로 관광자원이 되었지만, 처음 동백나무를 심게 된 배경은 다른데 있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하여 스님들이 탁발을 다니며 시주를 구하던 시절, 동백기름은 사찰 살림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동백기름으로 어둠을 밝히기도 하고, 물물교환 수단으로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었다. 동백나무를 심은 큰스님의 예지력은 불심에서 나온 것이리라.


도솔산 자락은 여름철 다시 한 번 빨간빛으로 물이 든다. 초입부터 도솔암까지 상사화 군락 지가 형성되어 9월까지 감상할 수가 있다. 상사화는 모습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옛날 한 여인이 선운사에 불공드리러 왔다가 스님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그만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 후 여인의 무덤가에서 못다 이룬 사랑처럼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상사화다.

석상마을에서 상사화처럼 살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여고 시절 선운사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어느 스님과의 만남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불가의 사람과 사랑에 빠진 고명딸을 아버지는 혹독한 매질을 해대며 말리셨단다. 그러나 인연의 끈은 아무도 자를 수 없는 것인지라, 그녀는 스님의 아들 셋을 낳고 혼자서 길렀다. 애절함으로 보낸 젊은 날을 회상하며 낯선 나그네 앞에서도 눈물 바람을 했다 한 때 비구니로 살며 청화 스님께 계를 받았다는 그녀는 이제 다시 홀로 되어 삼인리 절집 아랫마을에서 깊은 도량처럼 살고 있다. 혼자 사는데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물이 부족하여 마시고 버리는 일이 어렵다고 했다. 산골까지 수도관을 묻어서 편리하게 살아가는 세상인데, 사찰 땅에서 살기 때문에 마음대로 수돗물을 당겨 쓸 수도 없다고 했다.

동네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말했더니 선운사 관리사무소장님이 삼인리 이장님을 소개했다. 6대째 도솔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이종길 이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어릴 적 절집에서 놀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앞 뒤로 산자락에 갇혀있는 마을에서 유일한 놀이터는 도시 사람들이 드나드는 절집이었지요. 배를 주리고 살던 시절이라 배가 고플 때 공양 시간에 찾아가서 밥을 참 많이 얻어먹었구만요. 자연스럽게 절집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았지요. 산에서 신나게 친구들과 놀다가도 저녁 예불 시간을 알리는 범종 소리를 들으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소풍도 선운사로 가곤했는데, 뒤뜰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며 우리 집 뜰에서 숨바꼭질하듯 했었지요. 사월 초파일이 되면 연등을 달아주고 누룽지를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절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버리는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우는 재미로 절집마당을 찾아가기도 했어요. 절 아랫동네 마을이라서 그런지 승려가 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요. 사촌형님도 스님이 되었고 친구도 승려가 되었는데 지금은 미국에 가서 산다고 헙디다.이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옛날에는 버스가 동구밖까지 하루에 세 차례 운행되었어요. 삼인리 사람들 절집 덕 많이 보고 삽니다. 관광객 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버스가 흥덕, 고창, 해리에서 자주 들어와오닝게요."


마을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절집에서 돈을 조금씩 내어 놓기도 한다는 이장님 말에 절집과 사하촌의 관계는 뗄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절에서 음악회를 열어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도시 문화를 보급하기도 한다.

이장님은 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있다고 말했다. 선운사 지역을 생태계 숲으로 개발하려고 군에서 땅을 사들이고 있는데, 공시 지가로 땅을 판 사람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개발해서 분양하는 상가에 들어가기에는 주민들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고, 집을 개량해서 펜션이나, 음식점 영업을 하고 싶어도 모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어려운 실정이다. 온 마을 36호 집집마다 수저 수까지 세고 있는 이장님은 마을 지킴이다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선운사로 통하는 길목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녹차 가루, 솔잎 가루, 은행, 호박 씨 등 주변에서 수확한 먹을거리로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절집 아랫마을이 고향이라는 김영례 아주머니가 짧은 겨울 햇살을 탓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여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큰스님이 동네 아이들을 밤마다 절집으로 불러들여 한글도 가르쳐 주고 예절도 엄하게 가르쳐 주셨다며 고마운 마음을 털어 놓았다.


동네 소녀들은 봄이면 뒷산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나물을 뜯어다 절집에다 팔아 용돈을 얻어 쓰기도 했단다. 옛날에는 스님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계셔서 친분이 도타웠는데 지금은 얼굴 익히기가 무섭게 떠나 버린다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탓했다.

도솔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붙잡으려 도솔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솔암 낙조대에 올라서서 일몰을 감상하려는 생각은 욕심이었다. 서해로 빠져버린 해를 마애불의 얼굴에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무슨 영문인지 도솔천 입구에서 본 삼인리 송악과 마애불의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는 마애불을 보면서 내 어리석음이 지워지는 듯하였고, 은어가 산다는 도솔천 물에 발을 담그고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악은 법구경같은 가르침을 내게 주었다.


녹차처럼 푸른 꿈을 꾸며 살고 있는 유룡 스님

선운사 석상암쪽으로 오르는 길은 녹차 향으로 가득하다. 구부러진 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녹차 밭이 야트막한 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단정하게 머리를 자른 녹차 나무만큼이나 반듯해 보이는 스님은 선운사에서 생활을 하다 나와서 차밭을 가꾸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놀고 있는 묵정밭을 선운사에서 임대해 차밭을 이루었다.

산자락에 야생 녹차나무 2만평 재배 녹차나무 6만평 정도를 가꾸고 있는데 차밭을 이루느라 빚도 많이 졌다고 한다. 정토 세계에서 수행을 쌓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게 차밭을 가꾸는데 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솔산을 생태계 숲으로 개발하려는 고창군의 생각을 스님이 혜안으로 미리 읽은 것 아닌가 싶다. 생태계 숲에는 체험 학습장이 필요한데 녹차 밭을 체험 공간으로 공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녹차를 수확해서 얻어진 수익은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는 짓궂은 질문에 좋은 일에도 사용하고 노후에 용돈이나 해볼 요량이라고 했다. 땅을 20년 동안 사용하고 그 후에는 녹차 나무까지 선운사에 돌려주기로 약속을 했단다.

녹차 나무는 해풍을 맞고 자라야 차 맛이 좋은데 서해 바다에서 넘어오는 해풍이 도솔산 자락으로 깃들어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일찍 심은 나무에서 수확한 차는 선운사에도 주고 아는 스님들한테도 보낸다고 했다. 녹차는 4월에 돋는 새순부터 따기 시작한다. 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의 일손을 사는 일이 많은데 이제는 모두 노인들만 살고 있어서 아쉽다고 했다. 차밭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위해 퇴비를 만들 요량으로 이랑 사이에 호밀을 심어 놓았다는 스님은 녹차 나무를 자식만큼이나 사랑하는 가보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에 찾아오라며 향이 진한 녹차 한잔을 권했다.
김상미(수필가, 본지객원기자) |
2007-03-13 오후 1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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