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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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돈황 벽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법담 (하)/
일체의 대립 초월해 대자유에 들어가 보라
석굴암 문수보살
유마거사에게 병이 났다고 합니다. 병이 났다는 것은 나와 우주와의 조화가 깨졌다는 신호.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스레 흘러야할 몸의 또는 정신의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은 나와 자연과의, 나와 법신과의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청정했던 자아(佛性)가 흐려져서 밸런스를 잃기 시작한 것이지요.

흔히 걸리는 감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지요. 이렇듯 무릇 모든 병의 시작은 우선 마음에서부터 온다고 합니다. 의식 또는 무의식간에 느끼는 마음의 고통이 결국 커다란 몸의 고통이 되어, 둔한 우리에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이제는 자신을 꼼꼼히 돌아볼 때라고, 경계 경보를 보내오는 것이지요.

유마거사가 짐짓 병이 났다고 소문을 내니, 세존은 병문안 갈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쟁쟁한 세존의 제자들과 보살들이 차례차례로 ‘유마와 같이 고매한 분은 실로 감당키 어려워 문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하나같이 뺍니다. 결국 대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거동하기에 이릅니다.

‘전혀 오신 바가 없이 이렇게 오셨군요, 전혀 만난 바도 들은 바도 없이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요.’ 방장(方丈)에 들어서는 문수보살을 유마거사가 맞이하며, 드디어 ‘세기의 법담’이 시작됩니다. 방장이란 사방일장(四方一丈)의 줄임말로, 유마거사가 기거하던 방의 크기를 말하는데, 사찰의 주지스님 방을 방장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일장(一丈)은 십척(약 3.33m)을 말하니, 사방 3m 남짓의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이 유마의 방장에서, 불국토와 현세를 넘나드는 다양한 변재와 지적 충격을 던져주는 연이은 대담들이 펼쳐집니다.

<유마경>은 탁한 세상 속에서 온갖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범부(유마거사)가 소위 최고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출가한 무리, 세존의 성문들과 보살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출가하지 않은 아마추어 신자인 거사가 지혜와 계율을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성문 무리에게, 생과 멸ㆍ보살행ㆍ궁극적 깨달음 등 대승불교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심오한 개념들을 알기쉽고도 평이한 언어와 흥미로운 변재의 방편으로 가르칩니다.

‘그대가 아픈 원인은 무엇이며 그 병은 언제쯤 낫습니까’라고 문수보살이 묻자, 유마는 ‘모든 중생의 아픔이 남아있는 한 제 아픔은 계속될 것’이라며 ‘중생의 아픔은 곧 보살의 아픔’이므로, ‘보살의 병은 바로 대자비심이 그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더불어 같이 아파하는 마음의 발로’가 바로 자비심ㆍ보살행의 시작이라고, 문수보살에게 거꾸로 보살의 마땅한 마음가짐을 역설합니다.

모든 형식과 사회적 체계, 지적 가식을 넘어 ‘마음’을 문제삼는, 혼탁한 세상 속의 구제하기 힘든 중생을 과감히 껴안으려 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을 집어낸 이 한 장면은,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석굴 및 조상비석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로 대유행을 하였고 수당대에 역시 벽화(그림1) 및 회화로, 송원대에는 주로 백묘화 등으로 묘사되어 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합니다.

일본 유마경 신앙의 시작은 성덕태자(聖德太子, 일본 아스카시대에 불교를 최초로 부흥시킨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에게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라는 주석서를 짓도록 영감을 준 사람은 그의 스승인 고구려승이었다고 합니다. 또 매년 일본 나라 흥복사에서 거행되는 법회 ‘유마회(維摩會)’의 아스카시대 유래와 백제승려 법명니(法明尼)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이미 유마경 신앙은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전통이 이어져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의 입구 위 감실에도 유마와 문수가 법담하는 조각좌상(그림2)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유마는 주미를 들고 팔걸이에 비스듬이 유희좌로 앉았는데, 자태도 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루뭉수리 표현하고 얼굴 모습도 특별날 것 없는 속인입니다.

석굴암 유마거사
반면 문수보살은 두광 및 신광의 광배ㆍ보관과 섬려한 천의에 영락장식을 갖추고, 반듯히 연화좌 위에 앉아 양손은 검지와 중지의 두 손가락을 세워 소위 ‘입불이법문(入不二法問)’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추상적으로 표현된 유마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모양새로 보면 여지없이 흐트러진 자태의 유마가 단정한 문수에게 단단히 가르침을 받는 듯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지요.

장사하여 돈도 많이 모으고, 술과 도박도 하고, 음식과 애욕도 즐겨 속세적 권세와 향락의 지저분한 냄새를 가득 묻힌 유마가, 위엄과 향기 풍기는 보살 및 성문의 프로 집단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이미 그 경지에 갔다 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겪었기에, 절절히 고민하여 체험하였기에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득도하리라는 5년간의 처절한 노력 끝에, 그 집착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맛 본 것이겠지요.

<유마경>은 위대한 부처 또는 성자가 경전의 주인공이 아니라 한갓 속세인인 거사가 경을 설하는 주체라는 설정 자체가 참으로 파격적입니다. <반야심경>과 더불어 공(空) 사상을 설한 가장 초창기 대승경전에 벌써 교단적 전통과 형식주의를 단숨에 뛰어넘어버리는 이러한 대담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마경>은 중국 남북조시대(439-589년)에 죽림칠현(竹林七賢) 등 특히 남조의 사대부 지식층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특히 당시 진흙탕과 같은 시대상에 반하여 더욱 호응을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유명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씨는 ‘공 사상 즉 불이(不二)의 경지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무대립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대립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순간 비굴해지고 약해지는 모순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이 구차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성불(成佛)의 길은 있다고 유마거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 명예, 지위, 애욕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구속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유의 경지를 유마거사는 보여줍니다. 유마(또는 유마힐)란 원어 비말라키르티(Vimalakirti)의 음역입니다. 그 뜻으로 풀이하면 정명(淨名 또는 無垢稱)으로 ‘청정함을 일컬음’ 즉 ‘청정한 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그는, 흙탕물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번뇌가 들끓는 속세에서도 청정한 자성(自性)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불이(不二)의 실천적 수행을 몸소 보여줍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지요.

‘진정한 길은 공중 드높은 어딘가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땅 바닥에 바싹 밀착해 나있고 오히려 수없이 걸려 넘어지게끔 되어 있다.’
강소연(미술사학자·홍익대 겸임교수) | |
2007-03-13 오전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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