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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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사 소장 일심삼관문탱(一心三關門幀)/
어머니!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도 없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 왼쪽 어깨에는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는 어머니를 업고, 살가죽이 닳아 뼈에 이르고 또 뼈가 닳아 골수에 이르기까지 수미산을 백 천 번 돌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는 다 갚지 못 한다’ <부모은중경: 제3장 2절>

한 청년이 머리가 백발이 된 두 남녀 노인을 양어깨에 가득 들쳐 업고 위태로운 산길을 가고 있습니다(그림2). 발치 아래에는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립니다. 기괴한 암석 산의 좌우로는 붉은 해와 흰 달이 돌고 있습니다. 기암절벽의 이 거대한 산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다는 수미산입니다(그림1). 수미산의 높이는 8만 4천 유순(총 높이는 16만 8천 유순인데 그 반은 바다에 잠겨있다고 함). 1유순은 약 7~10km, 그러니까 해발 약 84만km의 가파른 길을 부모님을 업고 백 천 번 돌아도 그 은혜는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라 하니,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비유입니다. 물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수고로움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큰 사랑에는 못 미친다는 뜻이겠지요.

이 작품(그림1)은 낳아주신 부모님과의 인연과 그 은혜의 막중함을 강조한 <부모은중경>의 여덟 가지의 비유(授喩八種) 중 ‘주요수미(周遼須彌,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도는 비유)’ 장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효(孝)자는 자식이 부모를 업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부모를 업어 모시는 행위는 예부터 효행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나 봅니다.

<부모은중경>은 길을 가던 세존이 길바닥의 마른 뼈 한 무더기에 갑자기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시작됩니다. 의혹스러워하는 제자 아난에게 이 백골은 혹 나의 전생의 부모일 수 있다며, 이것이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가려보라 합니다. 그리곤 남자의 것은 희고 무거울 것이고, 여자의 것이라면 검고 가벼울 것이라고 그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특히 여자의 뼈가 그러한 이유는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소모되는, 말 그대로 뼈골 빠지는 노고로 여자의 뼈는 뼛속까지 텅 비어 가볍고 검게 된다는 것. 그때서야 아난은 ‘가슴을 도려내듯 아파 눈물을 흘리며’ 세존에게 ‘어머니의 은덕’에 보답할 길을 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세존은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아이를 품는 과정과 그 괴로움을 구체적으로 설하고 그 은혜를 열 가지 게송으로 찬송을 합니다. 먼저 ‘뱃속에 품고 지켜주신 은혜(회탐수호은)’에서는 그 첫 머리에서 ‘여러 겁의 인연이 지중해서 이번 생에도 다시 모태에 의탁 했네’라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 이 세 명의 인연이 참으로 여러 겁의 세월 속에서 인연이 겹치고 또 겹치어 이렇게 현생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그 인연의 필연적 소중함으로 게송은 시작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막중한 인연에 대한 한탄이나 원망은 입에 쉽게 올리지 못할 것이고 또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먼저 깨닫게 합니다. 부모님은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이기에,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원망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소위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감사와 효행을 통해 이 운명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 세상을 또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이기에, 효는 일 백가지 행실의 근본(百行之本)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으로 경전에는 자식 무사함에 모든 고통을 잊는 은혜, 젖 먹여 길러주신 은혜(그림3), 자식을 위해 모진 일도 감수하시는 은혜, 끝까지 버리지 않고 어여삐 여기시는 은혜 등이 나열됩니다. 지난날 곱고 아름다웠던 자태가 자식 뒷바라지에 망가지고 거칠어져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모정, 자식들의 괴로움은 잠시라도 참으로 오래도록 쓰린 어머니의 마음, 멀리 길 떠난 자식 걱정에 뒤척이는 밤들, 백 살인 어머니가 여든 살 된 자식 걱정하는 마음, 명이 다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칠 그 깊은 애정 등의 표현 속에서는 바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구구절절 그 내용이 마음을 울립니다.


<부모은중경>에는 부모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의 은덕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경전 문두에서 보았듯이, 삼계(三界)의 대 스승이고 사생(四生)의 아버지이신 더 이상 높을 것이 없는 세존을, 땅바닥에 머리 조아리게 한 대상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유교에서 가장 중시되는 덕목 역시 효(孝)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는 가장 일차적인 관계는 효라는 매체로 이어지고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장 기본에 되는 덕목으로 꼽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은혜를 갚고자 하나, 하늘처럼 넓어 끝이 없어라(詩經)’ 이 유명한 구절을 처음 배울 때, ‘아버지 날 낳으신다’는 대목에서 누구나 잠시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이렇듯 유교의 효는 가부장적 체제 즉 부계(父系), 아버지의 부성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효의 사회적 확대가 곧 임금에 대한 충(忠)이라는 것이지요.

또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발부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며, 입신양명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리는 것이 효의 마침 즉 효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어, 사회제도권 안에서의 성공을 효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효경(孝經)>을 보면,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의 효의 역할과 직분을 각 계급별로 나누어 정의해 놓았지요.

반면, <부모은중경>에서 말하는 어머니의 모성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또 인간적이라, 충이니 예(禮)니 직분이니 따질 겨를 없이 바로 읽는 이의 가슴을 가로질러 심금을 절절히 울려버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많은 불교 경전에는 특히 어머니의 존재가 빈번히 등장합니다. 석가모니는 득도 후에 먼저 도솔천 올라가 어머니를 위한 설법을 합니다. 석가모니 열반 장면의 우측 상단에는 필히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등장하여, 그의 마지막을 지키려 구름을 타고 부랴부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에서 극락을 보여 달라고 간청한 사람은 불효막심한 아사세태자의 어머니 위데휘부인이었지요.

또 조선후기에 유행한 <우란분경>(또는 목련경)의 내용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 영혼을 필사적으로 구출하려는 아들 목련존자의 고군분투입니다. 물론 불교에서의 궁극적인 효의 목표는, 어머니의 고단한 영혼이 극락왕생하여 영원히 편안한 쉼터를 찾게 하는 것이지요.

관음보살의 조건 없는 자비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요. “어머니 당신이 있으면 세상이 있고, 어머니 당신이 없으면 세상이 없습니다.”
강소연(미술사학자·홍익대 겸임교수) | |
2007-02-12 오후 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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