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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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는 다투지 않는다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 파욱 스님

간화선 수행자 고우 스님과 위빠사나 수행자 파욱 스님이 만났다.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가 4월 8~10일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에서 개최됐다. 연찬회는 두 수행자를 통해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파욱 스님은 “간화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며 간화선과 위빠사나에 대한 비교는 하지 않았다. 대신 “빨리 경전에 따르면 지혜를 꿰뚫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점진적인 수행이 요구된다고 했다. 부처님은 개구리가 깡충 뛰는 것처럼 깨달음을 한꺼번에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깨달음은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이뤄짐을 강조했다.

파욱 스님은 법문을 시작 할 때마다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해 말하겠다”고 밝히고 빨리경전의 내용을 설명했다. <아함경> 등 초기 경전에 나온 부처님 당시 제자들과의 대화나 부처님 전생담 등을 인용하고, 단계별 수행의 절차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단순하고 역설적이거나 직설적인 한국 선불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행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 필요하다면 정치운동까지 할 수 있다는 고우 스님과는 달리 “수행자는 다툼에 끼어 들 수 없으며, 사회적 정치적 혼란에도 자비희사하는 길 밖에 없다. 부처님은 잘못된 생계나 사회와의 부적절한 연관에도 참여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세상을 위해 부처님의 길, 곧은 길, 옳은 길, 적합한 길을 수행하고, 비구는 재가자에게 계정혜 삼학을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불식의 계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파욱 스님을 위해서 10일 고우 스님과 만남의 자리는 서둘러 마무리 됐다.


#고통의 소멸
“비구여,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지금 오직 고통과 고통의 소멸에 대해서만 설하였노라.”이것이 부처님이 명상을 가르치신 까닭입니다.

빨리 경전에는 고통을 물질, 느낌, 인식, 행, 식으로 오온으로 설명합니다. 오온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계속 사라지기 때문에 무상합니다. 고통의 소멸은 오온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오온이 일어나지 않음은 오직 깨달음에 의해서, 열반을 성취해야만 가능합니다.
깨달음은 4가지의 단계 예류(豫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 도와 과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위빠사나가 없으면 깨달음도 열반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현상의 지속에 대한 지혜가 있고, 다음 열반의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통찰지입니다. 현상의 지속은 세간의 지속을 뜻합니다. 어떤 현상이 세간의 현상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이 형성된 것, 유위법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현상을 형성된 것, 형성되지 않은 것 즉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열반은 유일한 무위법입니다. 다른 모든 현상은 형성된 것이며 유위법입니다. 현상이 형성됐다는 것은 그것이 무상하며 연기적으로 존재하고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원인으로 형성된 현상은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또한 그것들은 본래적인 사라짐의 성질 때문에 지속적으로 사라집니다.

모든 현상은 세간의 것이며 형성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현상의 지속에 대한 지혜를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오직 세간의 형성된 현상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은 통찰지, 즉 위빠사나 지혜의 대상입니다.

현상의 지속은 과거와 현재의 원인 때문입니다. 남김 없는 사라짐에 대한 지혜는 지속적인 사라짐을 알 때 생깁니다. 지속적인 사라짐을 아는 것은 현상의 본질적인 본성이 무상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와 같은 지혜를 기반으로 우리는 무상의 본성, 고통의 본성, 무아의 3가지 특성을 관(觀)해야 합니다.

빨리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자아가 늘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지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아가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지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간의 현상에 대한 위빠사나를 수행함으로서 출세간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것을 대상으로 열반이 형성되지 않은 무위법입니다.

현상의 지속에 대한 지혜 즉 물질ㆍ느낌ㆍ인식ㆍ행ㆍ식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번뇌의 소멸은 아라한과의 지혜에 해당합니다. 아라한 도의 지혜는 죽음 이후에 새로운 오온을 일어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합니다. 아라한이 죽을 때에는 더 이상 오온의 생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고통의 소멸입니다.


#‘아는 자, 보는 자’

부처님은 “비구여, 번뇌의 소멸은 오직 아는 자, 보는 자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번뇌의 소멸은 알지 못하는 자,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는 자’는 수행자의 지혜를 말합니다. ‘보는 자’는 지혜의 눈으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직접적이고 스스로에 의해서 일어나야함을 강조합니다.

지(知)와 견(見)은 통찰지, 위빠사나 지입니다. 현상의 지속성으로 오온의 원인과 그것의 사라짐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의 몸과 물질이고 4대 요소임을 이해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온 것으로 이해하고, 쌀밥과 푸딩과 카레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또한 무상하며 분해될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에 나의 식(識)이 달려있습니다.

통찰지는 궁극적인 실재를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몸, 어버지, 어머니, 쌀밥 푸딩 카레 등으로 지혜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용어들은 개념일 뿐입니다. 개념은 위빠사나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손을 구성하는 물질의 원인과 소멸을 직접적인 지혜로 알고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손을 보고 물질이 무상하며 연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손을 바라보는 것은 개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구멍에 있는 살덩어리를 바라보는 것이고 개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개념은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라 인식적인 실재입니다. 우리는 인식적인 실재를 대상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보아야 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초월해, 물질적이지 않은 지혜의 눈으로 궁극적인 실재를 바라봐야 합니다.

위빠사나의 영역을 다양하게 분류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성향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온, 12처, 12연기, 18계 등으로 나눠 위빠사나를 설명했습니다. 이와같은 수많은 위빠사나 영역은 물질과 정신으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물질의 무더기(色蘊)지수화풍 4대 요소와 24가지의 파생물질로 구성 돼 있습니다. 세간의 정신은 욕계, 색계, 무색계 마음이 81가지의 유형으로 나눠져 있고, 마음 하나에 마음의 작용인 52가지의 심소로 나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위빠사나는 2가지의 명상의 주제를 가지게 됩니다.

첫 번째 명상의 주제는 물질에 대한 이해입니다. 두 번째 명상의 주제는 정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명상의 주제를 개발하게 되면 물질과 정신을 식별하는 지혜라는 것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이 물질이고, 느낌이고, 인식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본다는 것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빨리 경전에 의하면 물질은 원자보다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빨리어로 루파 칼라빠, 짧게 줄여 깔라빠라고 불립니다. 루빠는 물질을 의미하고 깔라빠는 더미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질은 원자보다 작은 궁극적인 물질의 더미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원자보다 작은 입자라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현대과학에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깔라빠는 지혜의 눈, 지혜의 빛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고 해도 깔라빠는 궁극적인 물질이 아닙니다. 깔라빠는 궁극적인 물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궁극적인 실재는 2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4대 요소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24가지의 파생물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파생물질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들이 오직 4대 요소에 의존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4가지 요소는 지수화풍 입니다. 모든 깔라빠는 4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대 요소들은 언제나 24가지 파생물질 몇 가지와 함께 일어납니다.

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알고 보아야 할까요? 왜 우리는 고통과 고통의 소멸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는가 라고 바꿔 질문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의 몸을 자아로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자아, 영혼, 영원한 마음, 원래적인 마음과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똑같은 무명입니다. 모든 현상이 무아라는 사실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만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궁극적인 물질을 알기 위해서는 4대 명상을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4대 명상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4가지 선정을 증득하는 8가지 유형의 도와 과의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의 도와 과를 증득하는 것을 미리 닦으시면 도움이 됩니다.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체계적으로 하면 4선정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10가지 까시나에 대한 수행을 하시면 8가지 선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까시나 수행을 통해서든 4대 명상을 통해서든 아나빠나 사티를 통해서든 4대 명상을 체계적으로 꾸준히 수행한다면, 원자보다 작은 깔라빠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깔라빠 안의 궁극적인 물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깔라빠는 아직 궁극적인 실재가 아닙니다.

4대 요소는 그것들의 특징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빨리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12가지 특성에 따라서 묘사했습니다. 12가지 특성은 △땅의 단단함, 거침,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 △물의 유동성, 응집성 △불의 따뜻함, 차가움 △바람의 지탱함, 움직임입니다. 수행자가 12가지의 특성을 하나씩 하나씩 제대로 식별할 수 있으면 몸 전체에서 이러한 특성들을 아주 빠르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12가지의 특성을 몸 전체에서 아주 빠르게 볼 수 있게 되면, 지수화풍이라는 4가지 범주로 나누어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4대에 집중하다보면 자신의 몸이 반투명으로 얼음덩어리처럼 빛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얼음덩어리처럼 빛나는 몸 안에서 공간의 요소를 찾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공간의 요소는 깔라빠의 경계입니다. 수행자가 공간의 요소 깔라빠의 경계를 보면 깔라빠도 볼 수 있습니다. 깔라빠를 보게 되면 깔라빠 각각을 분석해서 식별해서 봐야 합니다. 각각의 깔라빠를 분석해 보면 거기에는 최소한 8가지의 요소 지ㆍ수ㆍ화ㆍ풍ㆍ색ㆍ향ㆍ미ㆍ영양소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궁극적인 물질입니다.
이와 같이 궁극적 물질을 식별하게 된 이후에는 궁극적 정신을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자가 물질과 정신에 궁극적 물질과 정신을 안팎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그 원인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연기입니다.

궁극적 물질과 궁극적 정신의 원인을 상카라라고 합니다. 무위법인 열반을 제외한 삼계에 형성되어 있는 모든 상카라의 특징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의 본성입니다. 상카라는 유위법이며 그것이 위빠사나의 대상입니다. 상카라는 언제나 일어남과 사라짐에 의해 압박을 받고 곧 고통의 본성을 갖습니다. 그 안에는 영원한 것이나 실체가 있는 자아가 없기 때문에 무아의 본성을 갖습니다. 무상ㆍ고ㆍ무아의 본성을 보는 것을 위빠사나의 지혜라고 부릅니다. 체계적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그것이 성숙해 지면 도와 과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도와 과의 지혜는 열반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궁극적 물질과 정신을 고성제라고 말합니다. 그것의 원인을 집성제라고 합니다. 그것은 곧 열반입니다. 도성제는 열반에 이르게 하는 고귀한 진리입니다.

4가지의 도와 과의 지혜가 있습니다.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의 도와 과입니다. 여러분이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사성제를 꿰뚫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라한 도의 지혜를 얻게 되면 모든 번뇌와 오염원을 소멸합니다. 번뇌가 모두 소멸했기 때문에 어떤 선한 업이나 불선한 업도 더 이상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을 생산할 수 없게 됩니다. 아라한이 되면 더 이상 오온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고통의 끝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소멸을 위해서 사마따 위빠사나 수행을 합니다.


#파욱 스님은
1934년 미얀마에서 탄생, 1944년 출가 후 10년 동안 여러 스승 밑에서 빨리어 경전을 공부, 1954년 비구계 수지, 1956년 다마차리야 시험(불교 빨리 연구의 학사에 해당하는 시험으로 이 시험에 통과하면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 주어짐) 통과, 8년 동안 미얀마 전역에서 스승들로부터 불법을 배움, 1964년부터 20여 년간 숲속 안거, 1981년 파욱 선원 선원장이 됐으며 현재는 파욱 선원 조실로 있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11-04-18 오후 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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