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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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수제자 위빠사나 한다해도 격려해 주겠다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 고우 스님

간화선 수행자 고우 스님과 위빠사나 수행자 파욱 스님이 만났다.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가 4월 8~10일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에서 개최됐다. 연찬회는 두 수행자를 통해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통불교문화원(본부장 혜오)과 조계사 선림원(원장 토진)이 개최한 연찬회에는 200여 사부대중이 참석해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연찬회는 8일 파욱 스님과 9일 고우 스님의 법문과 질의 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날에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법, 깨달음의 사회화’에 대한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진행됐다.

고우 스님은 <금강경> <서장> 등 대승경전과 선어록, 중국 조사의 일화를 중심으로 법문을 펼쳤다. 스님은 또 수행에 대해서도 “복잡하게 공부할 것 없다”며 화두참구에 매달릴 것을 주문하고, 견성의 지름길은 간화선임을 강조했다. 고우 스님은 첫 날 진행된 파욱 스님의 법문은 물론, 참가자들의 질문과 응답 시간에도 끝까지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고우 스님은 “위빠사나 수행도 여러 수행 중에 하나이고 수승한 법이다. 간화선 유일주의를 표방하거나 위빠사나 수행이 부처님 원음에 가깝다는 우월감을 갖는다면 진정한 불교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아끼던 제자가 위빠사나 수행을 하겠다고 해도 스님은 “방법은 다르고 지향하는 것은 같기 때문에 격려해 줄 것”이라며 위빠사나 수행을 100% 인정하는 통 큰 자세를 보여줬다. 법문 중에는 자살ㆍ정치인의 비리ㆍ전쟁ㆍ가정생활ㆍ개인 사업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는 모습에서 대승불교의 특징을 엿볼 수 있었다.


#“간화선 진리에 도달하는 길 가운데 하나일 뿐”

부처님 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입니다. 간화선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간화선은 그 방법 중에 하나이고 전체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인식하고 현실에 입각해 선을 수용해 살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나와 너라는 상대적이고 한정된 생각과 사고를 합니다. 한정된 세계에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이해관계가 상충하면 싸우기도 하고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 상대적이고 한정된 사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사고 속에서는 절대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인정해야 부처님 법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에서 사고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행복을 위해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이고 한정된 사고 속에서는 절대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고가 변해야 합니다.

밖으로 행복을 찾고 조건을 구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외적인 조건으로 행복해진다면 왜 부처님이 출가했겠습니까?
밖에서 행복을 추구하면 반드시 역기능이 나타납니다. 밖으로의 행복 추구, 유한하고 상대적인 사고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을 추구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추구는 하되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세계로 마음을 바꾸면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역기능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에 우열을 따지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발견한 사회이고 공정한 사회입니다.

#생활 떠난 불교는 없다
생활을 떠나서 무슨 불교가 있겠습니까. 선종(禪宗)에서는 일상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평상심(平常心)이라고 합니다. 평상심이란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출가동기 자체가 중생들의 생활에 있습니다. 사회제도 즉 사성계급에 의해 핍박받는 중생들을 보고 제도의 모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고뇌에 대한 해답을 얻었고, 지혜의 눈으로 사회를 개혁했습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 국가 간에도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특히 스님들은 사회와 중생의 행복을 위해 평생 목숨을
바쳐 수행해야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출가한 것입니다.

불교를 전 세계에 포교하는 것도 불교의 사회화입니다. 지혜의 눈을 뜨게 해서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삶은 살도록 하고, 사회도 그렇게 되도록 할 때 전쟁 갈등 없이 평화적인 세상을 만들게 됩니다.

대표적인 대상이 고위 공직자들입니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도 노력할 수 있도록 지혜의 눈을 뜨도록 해야합니다. 고위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도 사회화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러할 때 개인의 행복은 물론 국가의 발전에 역기능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낸 세금을 특정 고위공무원들이 낭비하는 경우에는 그들이 다시는 공직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고위 공직자가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이 아무리 잘한다 해도 공직자 개인에 의해 사회가 잘못될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괴롭히는 사람은 천한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카스트 제도는 제도일 뿐, 태어날 때 천민, 귀한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님을 설파합니다.제도에 속지 않도록 우리는 지혜의 눈을 떠야 합니다.

불교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으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반성해야합니다.


#위빠사나와 간화선 목표점은 같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목표점은 같습니다. 다만 길이 조금 길도 평탄하게 가고 하나는 짧고 험한 것입니다.

초기불교를 서쪽으로 오르는 산 길이라고 한다면 그 길은 평탄하면서 긴 코스를 지나야 합니다. 이 길은 손 붙일 때도, 발 붙일 때도 있는 평탄하고 안전한 길입니다.
반면 대승불교를 동쪽으로 오르는 산 길이라고 한다면 짧지만 굉장히 경사진 길일 것입니다. 돌아설 수도 없고, 발을 옮길 수 없는 공간, 잠에 깊이 든 것을 말합니다. 절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는 너와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다른 생각과 피부, 이데올로기, 종교가 융합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한국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이 절대 수행법이라고 하는 것도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에 갇혀 하는 말입니다. 입으로는 선(禪)을 이야기 하면서 마음은 갇힌 깨달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선과 위빠사나 모두 평등합니다. 음식을 먹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듯 좋아하는 수행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선이라는 음식이 잘 맞습니다. 그래서 선이라는 음식을 열심히 먹을 뿐이에요. 염불, 봉사 보살행도 그것이 맞는 분은 하면 됩니다. 위빠사나라는 음식이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것을 먹으면 됩니다.

우열을 따지면 선도 모르고 위빠사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우열이나 차별 없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세계로 바꾸고, 소통 하고 갈등 대립 전쟁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중생에게 알렸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설법도 하고 포교도 하는데 부처님의 본뜻을 알지도 모르고 비난 차별한다면 부처님의 겉만 보고 내용물을 보지도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차별된 마음을 하나로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형상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존재는 연기로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사람은 여래를 본다고 했습니다. 본래 존재하기를 다 완성된 존재입니다. 너 안에 있는 보물창고는 놔두고 왜 밖으로 찾아다니느냐 하는 것,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특징입니다. 본래 부처인지 모르는 것은 상대적이고 분별하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연기(緣起)와 법(法), 여래(如來)는 하나입니다.


#화두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화두공안은 수수께끼와는 다릅니다. 수수께끼는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에서도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두는 유한하고 상대적인 세계에서는 절대 해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의심을 일으키면 의심하고 있는 자체가 성성(星星)입니다. 또 이러한 의심을 지속되는 것을 적적(寂寂)이라고 합니다.

화두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깨달으라고 일러준 것입니다. 깨닫지 않으면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못 깨달으니 차선책으로 의심해서 풀어가는 것을 간화선이라고 이해하면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쉽게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화두 타파가 안 되더라도 중간 중간 자기는 많은 변화를 느낍니다. 가슴으로 느낌으로 오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사람마다 조금씩 변화가 옵니다.

#고우 스님은
1937년 성주에서 탄생, 1961년 청암사 수도암 법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관응 스님으로부터 <기신론>을, 고봉 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흔해 스님으로부터 <원각경>을 수학했다. 묘관음사 선원에서 첫 안거를 한 이후 봉암사, 축서사, 김용사, 용주사 등의 제방선원에서 평생을 참선수행으로 일관했다. 1968년 구산선문과 봉암사 결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선원을 재건해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1987년 해인사에서 선어록을 지침으로 삼아 공부하는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선화자 법회를 열기도 했으며 향곡, 성철, 서옹, 서암 선사 문하에서 공부했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을 역임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지금은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 주석하며 간화선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힘쓰고 있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11-04-18 오후 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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