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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퍼붓던 눈발이 조금 성글어지나 싶더니 또 다시 거침없이 쏟아진다. 눈을 한 겹 두른 차창 밖의 풍경은 파스텔화처럼 부드럽다. ‘저 많은 눈들이 제자리를 찾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 떨어진 자리가 바로 제자리가 되는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백석읍에 들어섰다. 커다란 기산저수지를 지나서 샛길로 접어들자 ‘육지장사’라는 팻말이 보였다. 양주 도리산에 자리잡고 있는 육지장사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육지장보살을 모신 지장도량이다. 천상계와 인간계, 아수라계와 축생계, 아귀계와 지옥계 등 육지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도량이라는 의미에서 사명(寺名)을 육지장사라고 이름 지었다. 150평이 넘는 대웅전, 수선당과 선재당은 훤출하고 웅장하여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런 기운을 지니고 있다.
수선당에 있는 다실에 들어서자, 도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방 한 가득 채우고 있다. 심우도 병풍이 있는 다실은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실 수 있게 개방된 공간이다. 평생을 포교 일선에서 활동 해온 지원 스님의 몇 가지 신념 중 하나가 ‘사찰은 대중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고,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절 문턱을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여 이 산중에
당신이
올까 해서
석등에 불 밝히어
어둠을 쓸어내고
막돋은
보름달 하나
솔가지에 걸어뒀소.
지원 스님의 시 ‘만월(滿月)’ 전문이다.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행여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석등에 불을 밝혀두는 것도 모자라 하늘의 보름달을 따다 소나무 가지에 ‘척’하니 걸어 둔 스님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님과 마주앉았다. 지원 스님은 기도 스님으로도 통하기에 먼저 스님이 생각하는 기도란 어떤 것인지 여쭈었다. 스님은 육지장사를 개원하게 된 인연부터 풀어나갔다.
“저는 포교의 원력을 세우고 나서 천막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임대법당과 전세법당을 십여 년간 전전하다 은평구에 사백평의 법당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저의 원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일관음기도를 세 번 올렸습니다. 은평구에 삼보사 법당을 마련하여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던 중 건강을 다치게 되었어요.”
사경을 헤맬 정도로 병이 무거웠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병고 그 자체가 지옥고로 여겨졌기에 어서 빨리 몸 바꾸어서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지장기도 덕분인지, 생을 포기해야 할 만큼 위중한 병이 나았고, 스님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신도들과 함께 천일지장기도에 들어갔다. 천일지장기도에 대한 안내문을 돌린 일도 없었는데, 기도 동참자가 수백 명이 넘었고 기도 동참금이 수억 원이 들어왔다. 지원 스님은 이것 또한 아직까지도 기이한 일로 꼽고 있다. 스님은 단월들의 보시를 한 번도 허투루 써 본 일이 없기에 귀한 기도 동참금을 더욱 뜻깊은 일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해동에서 제일가는 지장성지를 조성하겠다는 원력을 세웠고 현몽에 따라 도리산에 도리천궁인 육지장사가 세워진 것이다.
“이 시대의 한국불교가 지장보살과 같은 보살정신을 지닌다면 사회가 평화롭고 남북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지장보살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예를 들면 농사짓는 지장보살, 장사하는 지장보살, 요리하는 지장보살, 운전하는 지장보살 등 다양한 지장보살이 우리 사회에 넘쳐난다면 평화와 행복이 절로 구현된다고 생각해요. 이곳이 바로 극락세계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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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천일지장기도를 세 번이나 올렸고, 지금은 만일지장기도를 봉행 중이다. 평생에 천일기도 한 번을 봉행하기도 힘든데, 천일관음기도를 포함하여 여섯 번이나 성만했다. 육천 일, 16년이 넘는 세월동안 올린 기도도 모라자서 만일기도를 발원했다고 하니 그 치열한 수행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의 일과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고 했다.
“기도를 비롯하여 참선과 사경(寫經)을 계속하게 되면 자신에게 굳은 신념이 형성되어 매사에 의욕적이고 열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와 같은 열의는 마치 전등을 밝혀주는 발전소와 같아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우선 발심할 것을 강조합니다. 발심이란 마음을 낸다는 말인데 어떤 행위에 대하여 처음으로 그것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 발심을 신념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곧 기도와 참선과 사경을 지속적으로 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진정하게 갈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면 먼저 우리의 신체구조가 변한단다. 일념으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면 우측뇌에서 β 엔돌핀(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β 엔돌핀은 기억력을 향상시키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켜주며 의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다 보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랑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저는 갖가지 일에 대하여 상담을 합니다. 그 상담은 십중팔구 제아무리 복잡한 문제일지라도 대개는 실상인 마음의 문제에 귀착되는 것들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젯거리가 발생하고 그 문젯거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에 파묻혀 더욱 많은 고민거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자신의 마음을 지배함으로써 병이든 경제문제이든 모든 문제가 결국 해결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놈은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 것이어서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만사가 이루어질 겁니다.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가운데 가장 비근하고 확실한 방법이 누구나 사용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말이라고 할 때 소리 내어 말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념 또한 언어에 속합니다. 한 번 말의 힘을 자각하게 되면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마음이 자유롭게 좌우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지원 스님은 “말이란 친화력을 가지기 때문에 말 하나를 통해서 불행했던 일상의 생활이 밝아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며 병약하던 몸이 건강해지기도 한다”면서 언어와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었다. 스님의 이러한 철학은 오랜 세월동안 포교일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살아있는 법문이며,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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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출발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그 열망을 어떻게 하면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단다. 현대인들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기에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찰이다. 육지장사는 이미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현실감각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템플스테이를 통한 포교는 무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단다.
“3,40대를 위한 워크숍을 해보기도 했으며, 트위터 동호회를 만들고 페이스북에 가입하여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꾀했습니다. 와인동호회를 만들기도 하는 등 젊은이들의 취향을 아는 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어요.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좋지만 부처님의 좋은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포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불제자의 할 일 아니겠어요?”
칠십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한다. 절 문턱을 쉽게 넘어올 수 있도록 1700년 동안 내려온 스님들의 건강비법을 조금만 개방하여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휴식형 사찰체험’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육지장사의 템플스테이에서 인기 있는 것은 단식수행프로그램과 게르마늄 쑥뜸온구체험, 경락추나 체험이다. 단식다이어트 프로그램에는 1700년 동안 내려온 스님들의 건강비법이 녹아있기에 이것을 세상에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 올해 박사학위과정에 등록해 놓았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우리의 생각을 낱낱이 엿듣고 있으며 그것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인식되고 있어요.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은 삶의 본질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어요. 가령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심신의학자 ‘디팍초프라’는 우리의 정신과 감정상태는 내분비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호르몬은 온 몸을 돌아다니면서 육체적 활동과 감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스님은 ‘호르몬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상호전달 체계를 만들어 온 몸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마치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육지장사를 지을 때부터 대중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49개의 계단은 객석이 되도록 했고, 관객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옥(玉)으로 깔았다. 이곳 육지장사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데 큰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은 락공연이었다. 산중에서 락공연을 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포교관이다. ‘사상과 종교에 관계없이 벽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 문화’이기에 스님은 문화를 통해서 여러 세대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다.
부천에서 온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게르마늄 쑥뜸온구체험과 경락추나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지원 스님은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붙잡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쌍화차가 좋다면서 앞앞이 작은 다상을 내어준다. 이런 극진한 대접에 사람들은 감동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종교의 문이며, 따뜻한 위로의 말 들을 수 있는 곳이 종교라는 공간이다. 지원 스님은 종교의 이러한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절을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살갑게 맞이해준다. 현대불교신문독자들에게 ‘행복한 삶을 위한 비법’을 가르쳐주시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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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밝게 하려는 사람은 남의 행실 가운데 밝은 면만을 보아야 하며, 밝은 행실을 기쁨으로 칭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마음속에 불쾌한 모든 기억들은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면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실상과 언어의 힘을 믿고서 희망과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로 가득 찬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스님의 말씀은 어렵지 않고 단순명쾌하고 머리와 가슴에 쏙쏙 박히게 만든다. 절마당에 조성된 의상조사의 ‘화엄경 법성게’도를 화살표를 따라 걸어보았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첫 발심 했을 때가 바른 깨달음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지원 스님 약력
1964년 범어사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0년 통도사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범어사 강원졸업.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졸업.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포교국장 역임. 1991년 삼보사 창건. 1999년 육지장사 창건. 지금은 중앙종회의원이며 삼보사와 육지장사 회주이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장명등>과 서간문집 <마음이 열리면 천당도 보이지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