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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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 동주 스님(조계종 어산장, 홍원사 회주)
최상의 공양 하려면 최고로 청정한 생활 앞서야

50년 혹은 반세기. 긴 시간이다. 무량겁을 말하는 불교의 시간관에서 보면, 혹은 모든 존재의 공성(空性)을 가르치는 반야사상에서 보면 50년은 티끌 속의 티끌에 불과하겠지만. 사람의 일생에 있어 5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출가 50년. 그야말로 철들기 바쁘게 절집에 들어 반세기를 지냈으니 한 생애를 고스란히 담은 시간이다.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올해로 출가하신지 50년 되십니다.”로 운을 뗐다.
“그게 뭐, 절밥 축낸 시간일 뿐이지요.”
동주(東洲) 스님의 답은 간단했다.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고 누구나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뭘 그리 따지느냐는 듯. 그러나 3시간가량 스님이 풀어 놓은 지난 시간은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라지만 누구나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스님의 길도 스님만의 길이었다.
“원래는 강사(講師)가 되고 싶었어요. 그 다음에는 선방에서 정진하다가 죽고 싶었지요.”

은사 스님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동주 스님의 은사는 대은소하(大隱素荷 1894~1989) 스님.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손꼽히는 강사였다. 대은 스님은 전통방식으로 공부하여 현대식으로 포교한 선각자였다. 유점사에서의 일화 한 토막은 대은 스님의 기틀을 잘 보여준다.

경전공부를 하려고 유점사에 갔지만, 머무는 동안 양식을 댈 수가 없었다. 당시 유점사에서 머무는 스님들은 자기의 양식을 자기가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객(客)으로 사흘만 묵을 수 있었다. 홀몸으로 달려간 대은 스님이 양식 댈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사흘이 지나고 원주로부터 절을 나가달라는 통고를 받았다. 공부하러 왔는데 이 무슨 황당한 상황? 그렇게 아연(啞然)해 있는 스님의 눈에 누룽지를 먹고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원주에게로 달려갔다. 급소를 찌르듯 물었다.

“개도 양식 댑니까?”“이 사람이, 개가 무슨 양식을 대?”
“그럼, 저는 저 개만도 못하다는 겁니까?”
급소를 찔린 원주는 말을 못하고 얼버무리는데 개의 주인인 노스님이 그 광경을 다 보았다.
“나이는 어려도 너의 말은 옳다. 내가 네 양식을 댈 테니 열심히 공부해라.”그렇게 하여 대은 스님은 유점사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하루 경문 150줄을 외우는 초능력을 보였다. 전국의 강백들을 참방하며 문리를 터득했고 일본 유학도 손수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마쳤다. 귀국하여 전국 강당과 포교당을 찾아다니며 쩡쩡 울리는 전법의 길을 열었다.
“중질 잘 하려면 의식은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은사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동주 스님은 김포 문수사로 달려갔다. 영산작법에 능했던 벽응(碧應 1909~2000)에게 서너 달 동안 지도 받으면서 일상 의식을 다 배웠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감이 들었다. 이왕 배우기 시작했으니 제대로 끝까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촌 봉원사로 가서 송암(松岩,1915~2000) 스님에게 본격적으로 영산작법을 배웠다.

“큰 법당 옆 노전 방을 얻어 혼자 밥 끓여 먹으면서 배웠어요. (송암)스님께서 나를 기특하게 보셨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벽응 스님께 배웠지만 두 분의 소리가 다르니까, 나는 처음부터 다시 송암 스님 바탕으로 배워야 했지요.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7시까지 찾아가서 배웠는데,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재를 지내는 자리에 꼭 나를 데리고 가셨어요.”

뭐니 뭐니 해도 작법을 배우는 것의 으뜸은 재를 지내는 현장에서다. 방에서 사사받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어산(魚山, 영산재를 지내는 현장)에 나가 실재 재를 지내면서 내공을 쌓는 것을 능가할 공부는 없다. 경문을 외는 총기가 남달랐던 동주 스님은 한 대목 한 대목을 정성스럽게 배웠다. 그렇다고 강사가 되려는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배우던 것이니 다 배우고 싶었을 뿐.

“그러던 어느 날, 탑골승방(서울 보문사)에서 뜻밖의 일이 생겼어요. 송암 스님께서 ‘너의 스님이 미쳤나 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의 스님’은 다름 아닌 대은 대강백. 당시 대은 스님은 탑골
승방에서 비구니 스님들에게 경전강의를 했고 송암 스님은 의례를 가르치고 있었다. 대은 스님이 송암 스님을 찾아 와 정중하게 절을 하면서 “저 아이에게 스님이 알고 계시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고 청했던 것이다. 송암 스님의 입장에서는 당대의 대강백에게 절을 받으니 황망했고, 아끼던 젊은 제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으니 기뻤다. 그래서 ‘마쳤나 보다’라며 즐거운 속내를 비쳤던 것이다.

“은사 스님께서 그렇게 청을 하신 일인데 제가 배우지 않을 수 있나요? 송암 스님의 참회상좌가 되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영산작법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송암 스님은 홑소리 짓소리 안채비 바깥채비 등등 모든 작법을 완벽하게 계승하신 분입니다. 한 대목도 빠짐없이 기억하시고 정확하게 가르치셨어요. 가만 보면, 늘 어디에 계시든 낮은 소리로 중얼중얼 외우십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범패를 사랑하셨던 겁니다.”

그 스승의 그 제자. 동주 스님도 어정쩡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반드시 완벽하게 배워야 다음 대목으로 넘어갔다. 오히려 송암 스님이 “이 대목은 다음에 다시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닙니다. 이거 마치고 넘어 가겠습니다”라며 될 때가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럼 강사가 되려는 생각은 그때 접으신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어산이다 강사다 하는 것 자체를 놓아버리고 ‘지금’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어요. 봉원사 노전에서 만난 지월(地月) 스님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셨거든요.”
늘 술에 취해 있던 지월 스님은 형편없는 땡초로 여겨졌다. 대중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그 스님은 매일 밤 자정 무렵이면 곤하게 잠든 동주스님을 깨웠다. 당시 동주 스님은 범패를 배우면서 재도 따라 다녀야 하고 입문자들에게 상주권공을 가르치기도 했으므로 늘 바쁘고 피곤했다. 그런 일상에서 자정 무렵의 깊은 잠을 깨우는 지월 스님이 밉지 않을 수 없었다.

꽤 오래 시달리다가 하루는 단단히 벼르고 한바탕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저 스님이 그렇게 하는 데는 뭔가 까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지는 일은 뒤로 미루고 조용하고 공손하게 여쭈었다.
“스님, 왜 밤마다 자는 저를 깨워서 ‘정신 차려라’ ‘속지마라’ 하고 호통을 치십니까? 어떻게 하면 정신 차리고 속지 않고 중노릇 잘 할 수 있습니까?”
“도를 모르면 속고 사는 것이다.”
“도를 알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어느 날 발심이 되어서 금강산 보덕굴에서 100일 기도를 하고 다시 낙산사 홍련암에 가서 100일 기도를 했다. 홍련암에는 노인 한 분만 계셨는데 장좌불와 수행을 하셨다.”
지월 스님은 노스님을 모시면서 관음기도를 했다. 어느 날 노스님이 물었다.
“너는 무슨 기도를 하느냐?”
“관음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이 누군데?”
지월 스님은 그만 콱 막혀 버렸다. 그래서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은 누구인가?’를 화두삼아 기도했다. 100일 기도를 하고 홍련암을 떠나기까지 그 화두는 풀리지 않았다. 노스님에게 “다시 오겠습니다.”하고 하직 인사를 하자 노스님은 “다시 올 것 없다. 네가 관세음보살인데 왜 다시 오느냐”고 했다. 거기서 힘을 얻은 지월 스님은 직지사 선원에서 재산 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그렇게 정진하다가 스스로 속지 않는 삶에 자신이 붙었던 것이다.


“지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참 환희심이 솟았어요. 범패공부 빨리 해 마치고 선방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일더라고요. 그래서 더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송암 스님에게 범패 전 과정을 다 배우고 나니 강사생활을 하겠다던 시간이 지나버렸다.
“선방으로 갈 계획을 말씀드리니까, 송암 스님께서는 한참을 멍하니 계시더군요. 제가 배신을 해도 그런 배신이 없지요. 그러나 스님은 이내 ‘공부하러 간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 여기 자주 올 생각 말고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시더군요.”

여러 선방을 다니면서 정진하던 동주 스님은 해제 때 토굴에서 정진하다가 범패를 부른 곤 했다. 범패의 전 과정을 제대로 배운 바에야 애써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했다. 뒷 사람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혼자 범패를 하면서 깨달았다. 범패야 말로 선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배울 때는 배우는데 정신을 쏟아서 그런 맛을 몰랐지만 이제는 달랐다. 소리를 하는 도중에 잡념이 일면 소리가 흩어지고 갈라진다. 삼매에 들어야 제대로 된 운율이 따른다. 참선을 하면서 선정의 힘을 기르니 범패의 오묘한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송문관의(誦文觀意)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입으로 경문을 외우면서 그 뜻을 관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게 되려면 계행이 청정해야 하고, 범패의 법도를 알아 의식을 정확하게 해야 하고, 수행력이 있어야 합니다.”
범패를 하나의 의식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아무나 음을 배우고 의례절차를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보살을 찬탄 공양하고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에 임하는 사람이라면 청정계행과 수승한 법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강경>에 ‘만약 모양으로 여래를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찾는다면(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그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게 되므로 능히 여래를 볼 수 없다(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 하지 않았는가? 드러나는 모양과 소리만으로는 불보살을 찬탄 공양하고 영가를 천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산에도 ‘유나’가 있었어요. 누가 소리를 법도에 맞게 내느냐를 보고 절차의 흐름이 잘못되는 것은 없는지 살피는 소임이었지요. 그만큼 재를 올릴 때는 정성을 바쳐야 하고 그 자체를 지고한 수행으로 삼아야 한다는 겁니다.”
동주 스님은 서울 사자암 주지를 맡아 16년 동안 중창불사를 진행하며 지칠 대로 지쳤었다. 앞도 뒤도 없는 행정절차 때문에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어야 했다. 간사는 못되었지만 선방에 더 다니면서 정진력을 기르고 범패 후학들을 제대로 육성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맞아 주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계획했던 사자암 중창불사를 마쳤고 홍원사를 건립해 범패 수도원으로 삼았다.
“힘들고 지쳤을 때 대만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 자재공덕회의 원력과 불사를 보면서 다시 발심했어요. 대만 불교병원을 보니까 내가 좀 힘들다고 엄살 떨 형편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후배들에게 범패를 전수하는 데 몰두하자며 돌아 왔습니다.”


오늘날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의 틀을 다진 송암 스님에게 ‘전부’를 배운 동주 스님은 조계종 어산학교의 기초를 닦았고 현재는 어산장(魚山丈)이다. 간원엔 강사, 선방엔 조실, 염불원엔 어산장이 최고 어른이다.
동주 스님은 특히 ‘수륙재’ 전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륙재의 전 과정을 아는 어산이 없기 때문에 그 맥을 이으려면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륙재는 물고기 방생하는 정도의 의식이 아니다. 온 법계의 유주무주 영가를 천도하고 생사를 초월한 공양과 공덕을 기리는 거대한 의식이다. 종단적 지원 등의 여건이 미흡하지만 동주스님은 형편에 맞춰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최대한 정확하고 바르게 ‘범패의 전부’를 전하고자 오늘도 동분서주다.


동주스님은
1961년 서울 사자암에서 대은 강백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대교과 과정까지 배웠다. 이후 벽응 송암 스님에게 범패를 배웠으며 1969년 설립된 옥천범음회에서 제1회 영산재 전과정을 이수했다. 1972년 직지사에서 고암스님을 전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결제때는 해인사 등 선원에서 정진하고 해제 때는 범패 수련 및 연구에 몰두했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 사자암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를 완료했다. 조계종 행자교육원 교수사, 계단위원, 성보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06년 조계종 초대 어산장에 지정됐다. 현재는 서울 홍원사 회주,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수교육조교다.
글ㆍ사진=임연태(시인ㆍ 본지논설위원) | mian1@hanmail.net
2011-04-12 오전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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