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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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과 맏상좌 주경 스님
“이기적 탐심 말고 원력과 공심으로 살아야”

지난 9월, 태풍 곤파스가 중부지방을 강타했다.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태풍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는 호서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덕숭산(德崇山)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숭산이 있는 서산 지역만 해도 소나무의 30%가 피해를 입었다.
덕숭산은 덕숭총림 수덕사가 자리한 곳이다. 나그네가 덕숭산을 찾았다. 이날도 비가 내렸다.
승용차가 섣불리 지나지 못할 정도로 비포장도로에 깊게 패인 골이 그간 덕숭산에 내린 비의 양을 짐작케 했다. 차를 몰아 수덕사를 끼고 돌아 산길을 올랐다. 거친 굉음을 내며 차가 숨가빠했다. 주변의 소나무 숲을 가르는 운치를 느낄 새도 없이 차를 모는 나그네의 숨도 차와 함께 가빴다.
몇 고개를 넘고, 몇 굽이를 돌았을까. 정혜사(定慧寺)에 이르렀다.
“스님, 산사태가 났지만 법당이 무사해 다행입니다.”
“저곳은 사람들이 다니기에 위험하겠는걸. 빨리 조치를 취해야겠어.”
정혜사 관음전 앞에는 절벽이 생겼다. 퍼런 포장으로 덮었지만 큰 비가 무너진 흙더미가 지난 태풍과 폭우의 위력을 가늠케 했다. 도량 곳곳은 복구작업의 흔적이 어수선했다.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과 맏상좌인 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은 비 피해가 심각한 정혜사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누구에게 맡겨도 될 법한데 은사와 상좌는 한참을 도량 곳곳을 둘러봤다.


젊은 스님들을 시켜도 될 일 같은데 큰스님(설정 스님)이 직접 나서 도량을 살피는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라도 큰 이유가 있을까 싶어 큰스님이 직접 정혜사 곳곳을 살피는 이유를 물었다.
주경 스님이 답했다.
“큰스님은 항상 무슨 일이든지 솔선수범하십니다. 제가 출가 후 3년 넘게 큰스님을 시봉했습니다. 큰스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었는데 마을 사람 어느 누구하나 큰스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봉축법회를 마친 다음날 아침, 잠을 깬 주경 스님은 깜짝 놀랐다. 도량에 널렸던 등이 모두 걷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등은 설정 스님이 직접 거뒀다.
눈이 많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온세상이 하얗게 덮였는데 도량은 누런 바닥을 드러내며 눈 하나 없이 말끔했다.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 절 스님들은 부지런한가봐. 눈이 하나도 없네.” 설정 스님이 이른 새벽부터 눈을 치운 까닭이었다.
방장 설정 스님이 이러한데 대중스님들이라고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일. 대중들로부터 선지식이라 추앙받는 설정 스님의 리더십은 솔선수범에 있었다.
주경 스님은 “큰스님이 일을 시키기만 하셨다면 아랫사람도 편했겠지만, 무슨 일이든 큰스님께서는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대충 할 수가 없죠.”
주경 스님은 “설정 스님은 천상에 제대로 된 스님이다. 산중에 어울리는 분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스님이다”라고 덧붙였다.

설정 스님은 대중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이것이 덕숭총림의 가풍이라 했다.
“부처님 법 자체가 무상(無相)입니다. 덕숭총림의 가르침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것보다는 내적으로 충실할 것을 강조합니다. 경허·만공 스님이 (열반 후 당신의)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리는 부처님 사리로 족하고, 부처님 제자로 중생제도만 하고 갔으면 됐지 무엇이 더 있겠느냐는 가르침입니다.”

설정 스님은 “덕숭총림은 자급자족을 중요시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一日不作 一日不食) 청규를 꾸준히 지켜왔다”고 말했다. 스님은 “낮에 일하고 밤에 정진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 또한 덕숭총림의 자랑이다”라고 강조했다.
설정 스님은 “출가자에게 적당한 노동은 심신을 건강케 하고 시은(施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주경 스님은 “이런 가르침이 前 방장이었던 원담 스님을 거쳐 설정 스님에 이르렀다. 원융살림이라 불리는 이것이 지금도 덕숭총림의 가풍으로 지켜져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경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후 출가했다. 당시 어떻게 출가할지를 고민하던 스님에게 친구가 설정 스님을 알려줬다. 친구의 말만 듣고 무작정 수덕사를 찾았다. 행자 생활을 마치고 계를 받을 때 주경 스님을 고민케 한 일이 있었다. 설정 스님이 상좌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생긴 고민이었다. 다행히 원담 스님 등 어른스님들이 나서 주경 스님은 설정 스님의 맏상좌가 됐다.
주경 스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설정 스님은 “나는 상좌보다 중을 중요시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상좌를 많이 들여서 상좌 덕을 보려 하거나, 권속을 늘려 패거리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못박았다.
“남의 상좌, 내 상좌 할 것 없이 스님이면 다 소중합니다. 발심해 출가한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인연입니까? 출가에 이르게 한 그 마음을 북돋고 지켜주는 것이 선배스님들의 해야 할 일입니다.”


설정 스님은 “최근 늦깎이 출가가 많아 걱정이다. 늦게 절집에 들어온 만큼 전심전력하라고 가르친다”면서 “출가자가 된 것은 업을 맑히는 정업(淨業)의 길이다. 업을 맑게 하고 해탈법을 성취해 견성하는 것이 출가자의 본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정업과 해탈, 견성법. 어려운 말들이다. 설정 스님은 “중생은 자신도 모르게 탐업(貪業)이 치성하다. 명예욕, 애정, 편하려는 마음, 오만 등이 모두 탐업에서 비롯됐다”며 “정업, 해탈, 견성법은 집착을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탐업을 줄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다툼, 전쟁 등 인류의 갈등이 모두 탐업에서 비롯됐다는 것. 스님은 “멀리볼 것도 없이 불교 교단도 탐업으로 인해 갈등하고 패거리 짓고 분규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탐업을 줄이는 방법으로 육바라밀, 팔정도, 사섭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집착을 여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부단하게 정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탐심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인간의 유형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 인간 △적당히 노력하고 보답하면 된다는 합리주의적 인간 △남을 위해사는 이상주의적 인간 등 네가지가 있다”면서 “이기적인 탐심을 없애고 건전하고 정의롭고 진실되고 근면한 삶을 사는 것이 부처, 보살, 성인 같은 이상주의적 인간의 삶을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설정 스님은 “<승만경>에서 승만부인이 ‘나만을 위해 재물을 모으지 않겠으며, 무릇 받는 것이 있다면 가난하고 곤궁한 중생들을 돕도록 하겠다’는 서원 등이 탐심이 아닌 원력으로 사는 예”라면서 “탐심을 여의고 원력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설정 스님은 “스님들은 승업을 잘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戒律]에 모든 것이 있는데, 계율대로 살지 않아 교단내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경 스님이 “큰스님은 항상 중노릇하는 법을 강조하신다”고 거들었다.
“큰스님은 항상 수행자로서 철저해야 한다. 소임자로서 공심을 갖춰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스님은 “큰스님은 상좌와 아닌 스님들을 항상 평등하게 대했다”며 “상좌들은 ‘오히려 (상좌인 우리가 은사스님으로부터) 푸대접 받는게 아니냐’며 서운해 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주경 스님은 “큰 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큰스님을 찾아뵙고 여쭙는다. 큰스님의 대답은 한결 같다”고 말했다.
“큰스님은 ‘하고 싶으면 해라. 단 충실하고 성실하게 잘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임을 맡으면 소임에 충실하고 공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자상한 가르침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설정 스님은 “상좌를 비롯해 대중에게 ‘~해라’라고 강요는 않는다. 대신 ‘어떤 일이든지 신심(信心) 공심(公心) 원력(願力)을 갖고 하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설정 스님은 신심 공심 원력을 솥의 세 발과 같다고 했다.
“신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출가자는 공인입니다. 공인은 모든 일에 공정무사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원력은 애사심, 애종심을 갖게 합니다. 원력이 없으면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설정 스님은 “출가자는 무지(無知)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천수경> 발원 중 첫째가 ‘願我速知一切法(원아속지일체법, 일체법이 어서 속히 알게 되소서)’입니다. 스님이라면 이사(理事)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이 계율 속에 모두 있지만 스님들이 교양도 갖춰야 한다. 스님들이 모두 교양을 갖춘다면 불법은 절로 왕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고 하더라. 이는 사람들의 의식과 인생관의 문제”라고 말했다. 스님은 “인간의 삶은 숙명[한계성]과 운명[가능성]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으로서 가능성을 바로 안다면 가능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에도 삶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정 스님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나태와 방일로 삶을 허비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인과(因果)를 모르고 연기(緣起)를 모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경 스님은 “큰스님은 상좌들에게 ‘항상 근면·정진하라’고 강조하신다”면서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도록 지도하신다”고 말했다.
스님은 “큰스님을 행자 시절을 포함해 5년 여 시봉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모시고 있다. 특히 큰스님이 병환 중일 때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이 큰 병을 앓았다가 정진 끝에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교계에 회자돼 왔던 이야기이다. 당시 췌장암을 앓던 설정 스님은 “죽어도 선방에서 정진하다 죽겠다”며 하루 8~9시간 이상씩 수행을 했다.
설정 스님은 “몸이 아프고 불편한 것은 모두 자기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세부터 원인이 이어져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병고가 있으면 전생의 죄업이라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고는 스님을 진일보시켰다. 설정 스님은 “참회하기를,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쉽고 편한 삶을 결코 살지 않겠다’고 발원했다”면서 “그 다짐을 따라 지금도 나태해지려 하면 자신을 경책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결제 중에는 산중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해제 동안에는 조사어록 등을 두루 읽으며 재가자를 상대로 가르침을 펴고 있다. 정혜사 수해 상황을 둘러보듯 사중 활동에도 솔선수범함은 물론이다.
은사의 행동이 이럴 진데, 상좌라고 다를 수 없었다. 주경 스님은 서산 부석사 주지, 중앙종회 의원,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장직 등을 수행하며 종단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다.
주경 스님은 “4대강 사업은 절차·과정에 무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대규모 사업에 앞서 인간 삶과 자연공생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보다 4대강 사업이 더 파급효과가 큰 사건이다. 또, 멕시코만 기름 유출은 전지구적 재앙임에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가려진 것을 보면 대중들이 좀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산 부석사가 템플스테이, 산사음악회 등으로 유명해진 것에 대해서도 주경 스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좋아 이 일, 저 일 벌이다 보니 저절로 도량에 사람이 북적이게 됐다”고 말했다.

나그네는 은사 설정 스님, 맏상좌 주경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대화를 주고 받는 사제지간에서 부처님이 염화미소로 가섭에게 전한 정법안장을 엿보았다. 덕숭총림의 가풍, 부처님의 심인은 바람에 꽃가루가 날리듯 덕숭총림 대중스님 한 명, 한 명의 활동을 통해 사바세계에 전해지고 있었다.
글=조동섭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cetana@gmail.com
2011-01-12 오후 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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