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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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칠불사 회주 통광 스님
“꿈인 줄 알고 깨어나려고 애써야 꿈을 깬다”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린 늦여름. 흙빛을 띤 지리산 섬진강의 강변도로를 따라 가다가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유명한 ‘십리 벚꽃길’을 지나면 쌍계사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인다. 여기서 10km정도 계곡의 물길 따라 가다가 범왕리를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칠불사(七佛寺)가 나온다. 지리산 반야봉 동남쪽 해발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가락국의 태조요,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와서 수도한 후 모두 성불한 성지로 전해진다.

이날 칠불사에 모인 일행은 다음카페의 불교동호회 ‘구도역정(cafe.daum.net/kudoyukjung)’의 회원 10명. 하루 전 지리산 무영암에서 모임을 가진 회원들은 이날 칠불사로 넘어와 마침 동석한 공병수 부산불교신도회 회장과 송도근 前 건교부불자회 회장 내외 등과 함께 우리 시대의 대강백(大講伯)인 칠불사 회주 통광(通光) 스님을 뵙고 즉석 법문을 듣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통광 스님께 일제히 절을 한 뒤, 건교부 공무원인 이상호 거사가 카페를 소개하자 스님은 전국 각지에서 온 불자들의 노고를 치하한 후 자연스럽게 법의 문을 여신다.

“불교는 인과론을 말하지만, 숙명론은 아닙니다. 금생에 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생각에 도심(道心)을 발하고 수도해서 오도(悟道)하면 업의 몸이 바뀌어 혁범성성(革凡成聖: 범부의 탈을 벗고 성인이 됨)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할 팔자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부자로 살아야겠다’는 한 생각을 일으키면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선요>에서는 한 생각을 일으켜 현현한 관문을 뚫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돈제망념 오무소득(頓除妄念 悟無所得: 단박에 망념을 제하고 무소득을 깨닫는 것)’한 돈오돈수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 성불하는 것입니다. 보통 업은 사주ㆍ관상으로 나타나는데, 바꾸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업을 거슬러 올라가서 사주나 관상으로는 잘 맞지 않습니다.”
법문의 서두를 마친 통광 스님이 차를 권하자, 불자들이 궁금증 보따리를 풀어낸다.

“재가자들은 생활 속에서 공부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진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대혜종고 선사는 ‘서툰 것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서툴게 하라’고 했어요. 배우지 않아도 아는 다생(多生)의 습성은 염불과 참선 등 수행을 통해 서툴게 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법문은 공부를 해서 익숙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무는 불에 잘 타지만, 물에 담군 나무는 잘 타지도 않을뿐더러 불마저 꺼트립니다. 물에 젖은 나무는 말려서 불을 붙여야겠지요. 중생이 성불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열반경>에서 밝히고 있지만, 공부가 잘 안되는 것은 업력 때문입니다. 이럴 때 참회와 기도와 더불어 경전과 조사어록을 공부하고, 수행을 통해 번뇌에 찌든 마음을 맑고 밝히면 선지식의 말 한 마디에 언하대오(言下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공부라고 하는 것은 서툰 반야지혜를 익숙하게 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서툰 것을 익숙하게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망상일 것입니다. 화두나 진언, 주력을 할 때도 망상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또 망상 부리는 구나’하고 알아차렸을 때 그 망상을 없애려 하는 것도 망상입니다. 염불을 놓쳐 망념이 들 때 번뜩 챙기면 망념이 ‘홍로상 일점설(紅爐上 一點雪: 빨갛게 달아오른 화로 위에 눈을 조금 뿌린 상태)’이 되어 사라집니다. 망상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자꾸 해나가면 천 가지 만 가지 의심과 경계가 사라지고 본래의 천연(天然)한 자리가 드러나는데, 이것이 견성입니다.”

또 다른 불자가 재가자들이 일상 속에서 흔히 부딪치는 경계의 하나를 예로 들며 질문한다.
“스트레스와 번뇌ㆍ망상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요?”
“도를 닦는 기준은 뭘까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요?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느냐, 참나를 깨달을 것인가, 물질과 정신을 함께 돌보는 게 잘 사는 것일까요?
언젠가 무비 스님이 ‘요즘 선지식 중에 용타 스님이 최고’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용타 스님은 ‘~구나, ~겠지, ~감사’라는 3대 보살을 자주 말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남편이 새벽에 집에 들어올 때 ‘오늘은 늦게 들어오는구나, 이유가 있겠지, 늦게라도 들어오니 감사하구나’이렇게 하면 성질이 나다가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는 퍼뜩 성 내지 말고 ‘구나보살, 겠지보살, 감사보살’을 통해 가만히 내용을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보조 스님은 <절요>에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고 살피는 것이 더딜까 두려워 하라’고 했습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하거나 주력이나 염불을 할 때 망념이 들어올 때 퍼뜩 살피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져 근본과 통하게 됩니다. 방하착(放下着: 집착을 내려놓음)을 통해 바로 본래면목을 오입(悟入: 깨달아 들어감)하는 것입니다.”

통광 스님은 생활 속의 마음공부를 설명하면서 좀더 깊이 공부하는 재가 수행자를 위해 자상한 보충설명을 곁들인다.
“묵조선은 묵묵히 살피는 수행이지만, 간화선은 대신근, 대분심을 바탕으로 한 큰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화두 공부는 무엇보다 화두와 스승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런 큰 믿음을 바탕으로 분발심을 내어 정진해서 화두에 대한 의정이 똘똘 뭉치면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로 나아가 일념을 이루고 견성오도 하여 마침내 구경각(究竟覺)에 이르는 것입니다. 구경각이라 함은 제8아뢰야식의 미세망념까지 떨어져 나간 경지입니다. 대혜종고 선사는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하나로 똘똘 뭉쳐 마침내 화두를 타파하면 일체 의심이 다 없어진다고 했지요. 물론 화두 공부시의 의심은 경전과 어록, 생활 속의 의심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두를 생명처럼 여겨서 천 길 봉우리에서 돌을 던졌을 때 저 밑바닥까지 쭈욱 연결될 때 깨침이 온다고 <선요>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1주일, 한 달은커녕 세 시간, 30분만 몰아쳐 봐도 일념이 되기가 어려움을 알 것입니다.”
진지한 구도자들의 눈빛에 통광 스님은 더욱 세밀하게 공부단계를 설명한다.


“돈오점수를 말씀하신 보조 스님은 공부의 경계를 네 단계로 말씀하셨어요. 경전과 조사어록의 법문을 통해 ‘나고 죽음이 본래 없음’을 이해한 지무생사(知無生死), 생사가 본래 없음을 체험한 체무생사(體無生死), 생사가 본래 없는 자리에 계합해 견성오도 한 계무생사(契無生死), 깨달음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용무생사(用無生死)가 그것입니다. 부처님 열반 후 가섭 존자가 뒤늦게 도착해 인사를 올리자 관밖으로 발을 내미셨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나, 달마 대사가 입적 후 짚신을 둘러메고 인도로 돌아갔다거나 하는 일들이 용무생사의 경지라 볼 수 있습니다.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세상에서 불생불멸 하는 본래면목을 체험해야 초견성이라 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어서 두 번, 세 번씩 깨쳤다는 기록이 전해져오는 것입니다.”

통광 스님은 법문을 청한 이들이 인터넷 불교동호회인 점을 감안, 우리 시대에 맞는 화두 공부법에 대해서도 친절한 주석을 덧붙인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송나라 때의 화두가 통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게 있습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보고 듣고 감각하고 아는 것)” 하는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즘 ‘이 뭣고?’ 화두를 많이 합니다만, ‘송장 끌고 다니는 것이 뭐냐?’ ‘견문각지 하게끔 하는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황벽 선사는 ‘견문각지 하게끔 하는 자체, 그 당처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 일으켜 그 당처를 찾으려 하면 바로 어긋나서 멀어지고 맙니다. 이를 동념즉괴(動念卽乖)라고 합니다.

화두를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주의 본체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 모두 화두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이 바로 화두입니다. ‘무엇이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고 듣는지?’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인천 용화사의 송담 스님은 더 줄여서 ‘이~’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했지요.
우리는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지만, 꿈속에서는 꿈밖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녘에 꿈을 깨려고 애를 써야 깨듯이, 꿈인 줄 알아야 언젠가는 꿈을 깨게 됩니다. 생사라는 큰 꿈을 깬 후 석가모니 부처님은 녹야원에서부터 49년간 설법하셨지만, 한 마디로 한 바 없다고 하셨습니다. 꿈을 깬 근원자리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한 불자가 일부 수행자들이 마음의 소소영영(昭昭靈靈: 밝고 신령스러움)한 당체를 힌두교의 아트만(atman)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스님의 견해를 듣고 싶어한다. 이에 스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답을 한다.


공적하면서도 신령스러운 본래심으로 사는 게 선(禪)
“돈황본 <육조단경>에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고 대신,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 우리의 본마음은 항상 청정하다)’이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소소영영한 그 자리가 한없이 밝게 늘 존재한다고 보면 상견(常見)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소소영영한 자리를 반조해 보면 깜깜하여 공적한 자리입니다. 체(體)로 보면 공적(空寂)하지만, 용(用)으로 보면 영지(靈知: 신령스런 지혜작용)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없다고도 할 수 없고 있다고도 할 수 없어서 불성자리를 ‘청정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조사어록을 쉽게 단정 지으며 1600여 년의 불교사를 부정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것입니다. ‘공적’과 ‘영지’는 체와 용으로서 원융무애한 불이(不二)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중도실상으로서의 자리를 쌍차쌍조(雙遮雙照: 동시에 부정하고 동시에 긍정함)로 표현한 것입니다.”

통광 스님의 명쾌한 설명이 이어지자 질문자를 비롯한 대중은 그동안 막혔던 의문이 한꺼번에 해소된 듯한 표정이 역력하다. 스님은 1시간을 훌쩍 넘긴 즉석 법회를 마감하며 육조 스님의 법문 그대로 생활선을 이어가라고 당부한다.
“육조 스님은 ‘보리자성(菩提自性)이 본자청정(本自淸淨)하니 단용차심(但用此心)하면 직료성불(直了成佛)하리라’고 했습니다. 깨달음의 자성은 본래 항상 청정하니 이 마음(참마음)으로 살면 곧 바로 성불해 마친다고 한 것입니다. 이 한 마디 속에 불교의 대의와 수행이 다 들어있습니다.”

오랜 세월 선교쌍수(禪敎雙修)의 공부와 더불어 칠불사 복원불사를 성공적으로 회향해 후학의 사표가 되고 있는 통광 스님. 스님의 진실하고도 간곡한 법문에 감사 인사를 올린 일행은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상좌 자응 스님이 선농일치 수행중인 자혜정사를 방문해 차담을 나눴다. 일행은 이어 쌍계사 건너편 찻집으로 내려가 회향의 의미를 나누면서, 이번 오프라인 모임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각자 갈 길은 멀지만, 저마다 지고 다녔던 짐들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듯 승용차의 시동소리 조차 가볍기만 하다. 도반들은 이날 얻은 양식으로 다시 삶의 현장에서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쓰는 지혜작용을 마음껏 펼칠 것이다.


통광 스님은
1940년 지리산 칠불사 인근 의신마을에서 출생한 스님은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59년 명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3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방 선원과 강원에서 선교를 함께 닦았으며, 월정사 탄허 스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해 77년 탄허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아 경허 - 한암 - 탄허의 강맥을 이었다. 폐허가 된 칠불사 78년부터 복원했으며, 쌍계사 주지와 강주를 역임했다. 현재 칠불사 회주 겸 쌍계사 강주로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역서로 <고봉화상선요> <초의다선집> 등이 있다.
글ㆍ사진=김성우(작가ㆍ본지 논설위원) | buddhapia5@hanmail.net
2010-12-06 오후 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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