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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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하십시오”
수행도량 길상사의 생활참선

시나브로 해도 짧아지고 추위도 몰려왔다. 생활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 계절이 왔다. 어둠을 몰고 오는 가을인데도 세상을 밝히는 조명 덕에 ‘어둠’도 모르고 지나온 듯하다. 거리는 화려한 조명과 소음에 쌓인 채 추위를 피하는 걸음들만이 분주했다.
반짝 추위로 움츠렸던 11월 1일 저녁, 도심 사찰 길상사에는 가을 어둠이 가득했다. 도량은 침묵 자체다. ‘침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살포시 일주문을 넘었다. 설법전으로 들어가 몇몇 사람들과 간단한 눈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말이 없다. 곳곳에는 ‘묵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묵언’ 두 글자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좌복에 자리를 잡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스님은 죽비를 들었다.
탁_ 죽비소리가 더 깊은 침묵으로 이끌었다. 죽비1타에 이은 2타까지의 호흡이 길었다. 오랜 소음에서 침묵으로 들어가는 여정의 길처럼.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0분의 좌선을 마치고 또 다시 죽비 소리. 탁_,탁, 탁.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이는 남는다. 어느새 새로운 이도 왔다. 50분 정진, 10분 행선, 50분 정진은 칼같이 지켜졌다.


다음날인 11월 2일 아침 7시. 길상사 소강당에는 똑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사람들은 침묵을 일관한 채 참선을 하고 돌아간다. 몸과 마음이 웅크려지면서 안부리던 게으름도 피우게 되는 초겨울, 그것도 평일 아침, 저녁 이들이 법당을 찾게 된 강한 힘은 무엇일까?

길상사(주지 덕현)는 하안거 기간인 9월부터 아침ㆍ저녁으로 참선 수행을 진행하고 있다. 매일 2시간씩. 아침에만 진행하던 좌선 수행을 저녁시간까지 늘린 것은 아침시간에는 바빠서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것이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정해진 수행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부를 들이는 것은 모두 자유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았다. 이들을 보고 있자니 법정 스님의 법문이 되새겨졌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안정된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3일 아침은 포행으로 아침 수행을 대신했다. 참선과 일상의 연결 고리를 찾아주기 위해서였다. 포행은 길상사 뒤 북악산 서울 성곽에서 진행됐다. 덕현 스님은 포행 도중 점검과 소참법문을 진행했다.
“공부가 잘 되시나요. 참선은 원래 정해진 자세가 없어요. 좌선을 한다고 해서 무한정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하는 수행도 똑 같습니다. 경계 속에서 마음 챙기기를 통해 경계에 착(着)을 두지 말고 몸과 마음에 균형을 잡으세요”라며 차분히 설명했다.

10여 불자들은 아침 햇살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경계에서 벗어나 마음을 챙겼다. 단풍 우거진 가을 산에서 새로운 싹이 솟아오르듯 재가 수행자들은 얼굴이 밝아졌다.
“참 좋지요. 우리는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랍니다”는 정묘안 보살님은 환희심이 가득했다. 먼 길 마다 않고 새벽길, 저녁길에 오르는 이들에게 명상은 무엇이고 바쁜 아침ㆍ저녁 좌선은 무엇일까?

아운 보살님은 “항상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이제는 직접 실천하게 됐다. 이제는 하루라도 빠지면 몸과 마음이 찌뿌듯하다”고 말한다. 향지 보살님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때를 알아 떠나는 낙엽을 보며, 처량한 신세타령은 가을바람과 참 잘 어울린다. 하지만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의 향기는 사시사철 맑고 향기롭게 번지고 있었다.


# “집중수행 프로그램 준비 중”
덕현 스님 인터뷰

“길상사의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살려서 수행 도량의 면모를 갖추어 갈 예정입니다.”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은 수행을 통해서만 불교의 참맛을 알 수 있기에 수행에 관심을 갖도록 여건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길상사는 하안거부터 시작해 아침ㆍ저녁 참선 수행을 진행했다. 해제가 다가오자 재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참여의 기회를 늘여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아침에는 덕현 스님이 직접 참선 지도를 하고, 저녁에는 유나 스님이 지도를 하고 있다. 평일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주말까지 기회를 주고 있다.

스님은 절에서 소원을 빌고, 봉사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마음챙김을 통해 불법을 일상 속에서도 실천하는 것이 참수행이라고 했다. 그래서 덕현 스님은 길상사를 ‘수행도량’으로 바꾸기로 했다. 또 출재가자가 아침ㆍ저녁 언제든지 좌선을 할 수 있도록 길상사와 연결된 선원 수련원을 새로 만들거나 연계시킬 계획이다. 주말, 일정기간 휴가를 내서 집중 수행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스님은 “법정 스님은 ‘도량이 있기 전에 수행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불교의 핵심은 수행에 있다. 수행은 스님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사의 괴로움과 복잡한 생활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더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 이상언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11-13 오전 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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