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2.2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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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잘 죽으라고?
불교계 웰다잉 운동 본격화
“잘 가” “잘 자” “잘 먹어” “잘 있어” “잘 해” 라며 일상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하는 말에 붙는 부사가 ‘잘’이다. 그러나 “죽어” 혹은 “죽자”는 말 앞에 ‘잘’을 붙여 말하면? 섬뜩하거나, 해괴망측한 생각한다고 누군가에게 혼날 일이다. 영어로 바꾸면 ‘잘’은 웰(well) 이고 ‘죽음’은 다잉(dying)이다.
닥쳐올 죽음이 나에게만은 ‘아직’인 듯 사는 사람들에게 ‘웰다잉(Well-dying)’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웰빙(well-being,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함)’이라면 또 모를까 말이다. ‘잘 죽는 운동’ 웰다잉 운동은 존엄사, 안락사 등과 함께 2000년 들어 삶의 새 코드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은 아직도 자신에게서 먼 이야기 같다.

불교여성개발원(원장 이은영)이 200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웰다잉 실천교육 ‘아름다운 마침표, 그 마지막 성장과 하나 됨’ 이 10월 20일 서울 견지동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에서 첫 강좌를 시작했다.
조계종 승려 연수교육으로 지정되면서 재가자 중심으로 진행되던 과거와 달리 스님들의 참여율이 부쩍 늘었다. 이날은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 스님도 자리해 “웰다잉은 불교 수행자의 궁극적 목표”라며 격려했다.
첫 강의는 보성 대원사 회주 현장 스님의 ‘불교의 죽음 이해’로 시작했다. 현장 스님은 수업에 앞서 “우리는 뭐든 ‘잘’ 하려고 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웰빙이나 웰다잉의 ‘웰’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아는 것이 웰다잉 교육의 시작이었다.

현장 스님은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겪은 사례와 티베트, 인도인들의 죽음관, 서양에서 각광받고 있는 윤회치유 등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죽지만 나에게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들어도 다른 사람은 죽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나를 병들게 한다.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10월 14~15일 불교계 복지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인 ‘사死는 기쁨’에서 입관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스님은 윤회를 수용할 때는 병도 치유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에게 반드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준비는 뒤로 한 채, 불확실한 무언가를 좇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면 좋을까? 현장 스님은 티베탄의 삶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법을 소개했다.

“티베탄들은 잠자리에 들 때 죽음을 생각한다. 베개를 당기면서 스승의 무릎을 벤다고 생각하고, 이불은 시체를 덮는 천이라고 여기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잠이 곧 명상이고, 꿈을 통해 생사를 체험한다는 티베트 수행자들의 이야기다. 티베트 스승들은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일보다 죽을 날을 알 수 있도록 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맞는 준비란 무엇인가? 현장 스님은 “염불수행을 정성스레하면 스스로 죽을 날짜를 알 수 있고 병고가 없이 맑은 선정 속에서 극락왕생한다”고 설명했다.

보성 대원사 회주 현장 스님이 ‘불교의 죽음 이해’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웰다잉 구체적 방법제시 필요

불교계의 웰다잉 교육은 불교의 기본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풀어 명상, 호스피스와 연계하는 방식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웰다잉 교육의 출발은 호스피스 치료와 함께 정서적 지원을 통한 죽음 준비가 필요하다는 데서 나왔다. 15년간 의료현장에서 말기 환자들을 돌봐 온 데이비드 쿨 박사는 자신의 저서 <웰다잉>에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이 겪는 육체적인 고통은 모르핀 등의 약물로 완화시킬 수 있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어떤 약물로도 치료할 수 없다. 그 고통으로 인해 평생을 지켜온 인간다움은 사라지고 그를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고 했다.

최근 웰다잉 운동은 불교계에서 훈풍을 타고 있다. 웰다잉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올해 조계종 승려 연수교육으로 지정됐다. 불교계 복지관인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인 ‘사死는 기쁨’ 을 진행하고 있다. 능인선원, 대원사, 관음사 등에서는 몇 해 전부터 불교적 윤회 생사관과 웰다잉을 접목한 죽음 준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불교계 보다 한발 앞서 삶과 죽음에 대해 연구해온 이웃종교계의 활동도 눈에 띈다. 각당 복지재단(이사장 김옥라)은 국내 최초 웰다잉 영화제를 개최해 웰다잉을 알리고 있다. 1991년부터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통해 웰다잉극단을 창단했다. 웰다잉극단은 연극으로 웰다잉을 사회에 보급해왔다. 그밖에도 강연과 출판, 연극공연으로 웰다잉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불교계의 웰다잉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웰다잉운동본부에서 올해 6월 문화제를 열고 책 출간을 했지만, 웰다잉 교육은 여전히 뚜렷한 방법이나 구체적인 것을 제시하기 보다는 죽음에 대한 이해와 불교적인 명상과 이해가 주 학습내용이다.
유럽에서는 연령대에 맞는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단계의 학생들에게는 주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나 애완동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처리하는 비탄교육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죽음교육은 주로 자살방지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웰다잉 운동은 노년층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한국인 정서에 맞으면서, 불교적 내용이 담긴 사항들도 첨가할 필요가 있다. 정재걸 대구교육대 교수는 수입된 죽음교육에 대해 “우리의 전통사상 속에 죽음과 죽음교육에 대한 심오한 논의를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한다. 웰다잉문화연구소 김조한 소장은 “그 나라의 문화, 종교, 생사관, 개인적인 차이를 고려해 국민성에 맞는 죽음준비교육의 전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웰다잉은 수입된 완전 제품의 형태에 불과하다.
불자가 아닌 이들을 위한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난해하다는 점도 풀어야할 과제다. 또 임종체험이나 유언장 작성, 죽음 명상, 자비명상 등의 프로그램 외에도 유산상속에 대한 법률 교육, 유품처리, 말기의료 치료, 장례식 선택 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그밖에 생명나눔실천본부 등을 통해 자신의 장기나 시신을 기증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도 구체적인 대안이다.

#웰다잉 실천교육은?
웰다잉 실천교육은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진행된다. 10월 27일 행불선원 선원장 월호 스님은 <선가귀감>을 바탕으로 ‘웰다잉의 지름길’을 강의한다. 김기호 아름다운삶 수련원 대표는 죽음 명상에 대해서 강의한다. 김 대표는 “가장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가장 좋은 삶이란 주어진 시간동안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우주의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데서 비롯 된다”며 죽음명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11월 3일에는 재가수행자 강선희 씨의 ‘자비명상’, 11월 10일 황수경 웰다잉운동본부 문화위원장의 ‘마음 정화와 치유’, 11월 17일 천주교 죽음의 이해와 호스피스, 24일 호스피스와 임종심리 및 자서전 만들기, 12월 1일 정서적 외상과 사별 슬픔, 8일 웰다잉 봉사 현장, 유서쓰기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10-25 오후 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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