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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아~!”
한 선배의 농담 섞인 말이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냥 열심히 산다는 말인가 보다 하고 흘려듣고 말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딘가에 ‘꽝~’하고 부딪혔다. 삶에 무감각해진 나는 고장 난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계속 달렸다. 문득 눈을 떠보니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었다.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불어난 몸은 삶을 더 힘들게 했다. 쉬고 싶어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몰랐다. 아침마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가는 계단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추월당했다. 두 다리는 철근콘크리트 같았다. ‘헉헉헉,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9월 달력을 붉게 물들인 긴 추석연휴는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했다. 그동안 미뤄놓은 일들이 쌓여 있었지만 뭔가를 하기 보다는 내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안성 활인선원을 찾았다. 활인선원은 간화선ㆍ단식체험 수련회로 잘 알려진 곳인데 다이어트를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브레이크도 브레이크지만 세속적 바디라인을 원하기도 했다. 선원은 9월 19~23일 추석연휴 단기수련을 특별히 마련했다. 단기수행자 10여 명, 100일ㆍ30일 단기출가자도 함께했다.
단기출가 기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은 완벽하게 차단됐다. 휴대전화, 지갑, 열쇠 모든 것을 맡겨야하고, 묵언을 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명찰에도 병원 침실에 ‘금식’이라고 써 놓듯, ‘묵언’이라고 돼 있다. 집에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에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몰려오는 귀찮음이 생기고, 알 수 없는 피곤함과 졸음은 성질을 돋웠다. 피하고 숨고 싶었다.
입재식에서 선원장 대효 스님은 “몸과 마음이 하나일 때 고통스럽지 않다. 몸은 여기 있는데 추석빔을 생각하면 되겠냐”고 했다. 마음을 들켜버린 듯했다. 법문은 다양한 비유와 예시가 있어 쉬웠다. 스님은 “자려면 잠이 안 오고, 일어나려면 잠이 오는 것처럼 하려고 하면 안 되고, 안 해야 할 것은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삼매는 도약이고, 지혜라고 했다. 공감은 갔지만 물음표만 찍혔다. 법문하는 동안 스님은 수행자들을 보고 난이도와 방향이 수시로 바꿨다. 고정된 틀이 없었다. 스님은 “단식은 몸에 낀 독소를 빼는 것이고 몸이 바라는 일이다. 식사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위해 뭐처럼 휴가를 얻은 것이니 완전히 버리고 떠나보면 그 참맛을 알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단식을 시작한 수행자들에게 손을 들어 “굶는 게 살 길이다”라고 외치라고 했다. 의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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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3시 30분 기상했다. 여 수행자들의 숙소이기도 한 법당 밖에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도량석, 아침예불, 반야심경과 선원에서 한글로 만든 의식집 <드높은 게송>을 모든 수행자가 함께 목탁을 치면서 1시간 여를 독송한다. 발이 저려오고, 잡생각이 들 때면 게송마저 좇아가지도 못하고 말 때가 있었다. 낯선 새벽 기상에 늘어질 새라 요가, 운력, 보행, 청소, 산행 등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비해 많이 널널해진 편이라지만 몸에서 땀이 마를 틈이 없었다.
하루에 스님의 라이브 법문이 2차례 이어지고, 녹화된 법문을 1차례 듣는다. 그 시간만큼은 묵언을 해지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펼쳐지는 법문은 유쾌한 공감 토크 같다. 대부분 스님 말씀 위주지만 보이지 않는 교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스님의 법문은 고정된 틀이 없어 더 재미있다.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것이 마음인데, 한 번도 못 쓰고 재미없게 산다. 출세해서 큰 소리치려면 출세하지 말라.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정리하지 않고 되는데로 살려고 한다. 부지런하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참선이다. 깨달음은 사실, 진실, 진리다.”
변화된 일상 속에서 나는 벅차기만 했던 일상과 찌들고 매몰된 삶을 돌이켜보게 됐다. 잘 해보려고 해도 쉽게 무너지고 말아 이제는 그조차도 안하고 살아온 삶 속에는 내가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을 얼마나 가혹하고 괴팍했던가? 활인선원에서는 매 법문이 끝나고 나면 바로 법문의 요지와 느낀 점, 의문점을 써내게 하는데 이것이 이곳 점검법이었다. 스님은 써 낸 점검설문지를 통해 수련회를 체계적으로 꾸려나갔다.
죽염과 하루 두 번 받는 설탕 2스푼으로 생활한지 3일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약간 힘들 뿐 배는 고프지 않았다. 스님의 말씀으로도 충분한 보양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체중이 줄기는커녕 늘었다. 좌절과 절망이 몰려왔다. ‘굶어도 빠지지 않을 것, 실컷 먹기나 할 걸’하는 생각에 의욕을 상실하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스님이 따로 불러내어 점검을 하셨다. “이런 저런 생각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법문을) 들어라”고 지적했다. 뜨끔했다. 세속적 바디라인에 끌려 다닌 것에 대한 경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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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나를 가두는 틀 속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이렇다’는 생각이 날 힘들게 했다. 스님은 “부처는 조작해서 만들어지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생활 속에서 ‘알 수 없음’ 에 대한 궁금증, ‘무엇인가?’라는 화두 참구 등을 지도했다. 알 수 없는 편안함과 가벼운 몸놀림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가고 있었다.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스님은 “야구 선수가 홈런을 쳐야겠다는 마음이 없을 때 홈런을 치고, 큰 일을 해야한다는 마음이 없을 때 큰 일을 할 수 있다.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없어 역량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날 4일 연속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해가 쨍하고 떴다. 반가웠다. 선원은 법당과 화장실을 아주 멀리 떨어뜨려 놨는데, 행자들이 많이 움직여야한다는 이유에서다. 첫 날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내 다리에 날개다 달린 듯했다. 몸이 가벼웠고 마음도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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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은 아주 쉬운 것이여~. 이건 누가하고 누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동쪽하늘 보다가 서쪽하늘 보는 것 같은 것인데 그걸 몰라? 모르면 어린애한테 가서 물어봐.”
참가자들은 지난 5일을 돌아봤다.
“100일 출가 90일째다. 처음여기 올 때는 짓누르는 마음으로 내가 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가? 슬픈 마음으로 도피하듯 왔다. 지금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아 같다. 30일 단식을 하다 보니 자기 몸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다. 13kg이 빠졌는데 독소와 나쁜 생각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다. 꼭 단식을 권하고 싶다.”
“단식 다이어트 때문에 왔다. 결론적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7년 유학생활을 할 수 도 있었고 자녀도 경쟁에서 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오다 참 진리에 대해 듣게 되니 너무 감사하다.”
“그동안 제가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흑~ 흑”
깨달음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틀리다, 좋다, 나쁘다, 싫다, 사랑한다, 괜찮다’며 끊임없이 몰아쳤던 생각의 끈이 잠시 놓아질 때가 있었다. 나에게 자기관리의 브레이크가 달렸다. 스님은 떠나는 날 특별 개인면담으로 화두와 신체 변화에 대해 꼼꼼히 체크하고 의심을 거두도록 도왔다. 감사, 또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을 가다듬고 체중계에 올랐다. 놀라웠다. (031)671-7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