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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한뜻 병불련 따뜻한 의료봉사
전국병원불자연합회 추계의료봉사

“아따 어째 지금 왔는가? 시방 새벽부터 기다렸는디 늙은이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쓰겠는가~? 디져뿔꾸만.”
오랜 기다림 끝에 터져 나온 원망과 안도의 핀잔이 쏟아졌다.

9월 4일 전북 정읍 내장사에는 1000여 어르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서 있었다. 전국병원불자연합회(회장 류재환, 병불련)는 불교의료지원단 반갑다연우야(총단장 구자선), 정읍시, 대한노인회 정읍시지회와 함께 정읍 내장사(주지 지선)에서 주최하는 ‘자비나눔 효(孝) 의료봉사 행사’를 진행했다. 진료 과목은 내과, 통합의학과, 한방, 치과, 발마사지, 혈액 및 심전도 검사, 이미용 등이었다.

무료 의료봉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 내 어르신 1000여 명이 사전 예약을 하고, 행사 당일에도 많은 어르신들이 내장사를 찾았다. “거기~ 내가 먼저 왔어. 그렇고롬 쓰면 되겠는가!”라며 성을 냈다. 모양은 줄이지만 그 안은 전쟁이었다. 서울에서 의료봉사 팀들이 온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기다리던 어르신들의 당연한 짜증이었다. 10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던 봉사팀은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도착했다. 70, 80대 어르신들이 3시간 여를 땡볕에 서서 기다리기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추석 전 벌초 차량으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새벽부터 달려온 봉사팀은 잘못한 것도 없이 죄송한 마음에 점심은 생각도 못하고 봉사를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작된 곳은 한방의학과와 발마사지였다.
“어이~! 내가 처음이여. 하하하. 그래 그래, 맞고 갈게. 기다려. 같이 가자구!”
첫 진료를 받는 어르신은 침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전화로 자랑했다. 있던 병도 싹 가신 듯했다. 진료는 시작됐다. “머리가 먹먹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랫배가 아프기도 하고, 무릎은 시리고 안 아픈데가 없어요.”
“네. 어르신, 오늘은 한방치료 받고 다음에 아프면 정형외과로 가세요. 오늘 드리는 약은 아플 때 한 알만 드세요. 굉장히 좋은 약이니까 드셔보세요. 이 약이 잘 들면 다음에 병원에 가셔서 이 약을 보여주세요.” “맥박은 약하긴 한데 부정맥은 없으시네요. 혹시 피곤하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간이나 피검사를 좀 받아보셔야겠어요.”


진료소에서 오가는 대화는 끝이 없었다. 진료소로 쓰인 내장사 내장선원과 요사채 등에는 의사 한 두 명에 환자가 가득했다. 봉사자들에게는 지치고 힘들어할 여유도 없었다. 어르신 한 분이라도 정성껏 진료를 하기 위해 듣고 또 듣고, 설명하고 처방하고 치료를 이어갔다.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와 ‘건강하세요’라는 따뜻한 말을 주고 받았다. 봉사팀이 구슬땀을 흘리며 본격적인 진료에 들어가자 원성은 차차 사그라들었다. “아따 시원하네. 감사합니다”라며 자리를 뜨는 어르신들이 늘어나면서 분위기는 안정돼 갔다. 긴 줄은 진료가 3시간 정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나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봉사자들을 위한 간식은 말라가고 있었다.
육홍기(79) 어르신은 “허리 진료를 받고 내시경도 받았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내장사는 성지이기 전에 단풍 관광지로 유명했다. 그동안 지역민을 위해 회향하는 일이 드물었다. 지선 스님은 내장사가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기를 서원하면서 의료봉사 행사를 기획했다. 스님은 “그동안 내장사는 지역사회와 동떨어져 있었다. 내장사가 지역사회를 위해 이바지 하고, 지역민들에게 관광사찰이 아닌 효행 수행도량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의료 봉사를 통해 박물관이나 관광지로서 내장사를 넘어 동시에 지역민과 소통하는 계기가 됐다”며 의료봉사단에게 “대의왕 부처님의 화신들과 같은 분 들”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날 행사는 ‘효(孝)’ 라는 테마에 맞게 정읍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이 동참했다. 정읍시 내 파라미타를 운영하는 호남ㆍ제일ㆍ정읍ㆍ정주ㆍ학산ㆍ배영ㆍ정읍여고 등 7개 학교에서 150여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지원했다. 학생들은 톡톡한 역할을 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모시고 해당 진료소로 안내하고, 말동무도 해 드렸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에게는 약도 직접 타다드리는 등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모시는 것 이상으로 친절했다. 이소라 학생(정주고1)은 “어르신들이 많이 편찮으신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어르신과 말동무도 해드리고, 안내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류재환 회장은 “더운 날씨에 부족한 준비에도 모두가 열심히 해줬다.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다”며 “지역 사찰에서 의료봉사를 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공헌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일회성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속적인 봉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진료는 286명 접수, 443건 진료, 57건의 검사가 이뤄졌다. 40여 명의 의료진들은 5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가뿐히 해냈다. 이날 하루 내장사는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는 병원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의왕 부처님이었다. 어르신들의 기다림은 조금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명의 대의왕 부처님을 만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09-11 오후 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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