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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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지성스님(청평 감로사 주지)
불길에 몸 던지는 간절함으로 살고 있는가?

화중생연(火中生蓮), 불속에서 연꽃을 피우다. 소신(燒身)공양을 화중생연이라 한다. 소신은 사신(捨身) 유신(遺身) 망신(亡身)이라고도 하는데 몸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러나 몸을 버리는 방법에 있어 인간의지를 뛰어넘는 것이 소신이다. 하찮은 화상만 입어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인간인데 온 몸을 불태우며 죽음을 맞는 것은 지극한 원력과 수행이 바탕 되어야 가능하다. 울분이나 항거의 표시로 혹은 생을 비관하고 미움을 삭히지 못해 자행하는 분신(焚身)과는 다르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은 중국에서 이어져 온 소신공양의 일면을 그렸다. ‘등신불’은 어머니의 죄를 씻고자 하는 한 수행자의 간절한 원력이 소신공양으로 실천되는 이야기다. 범해각안(1820~1896) 선사가 쓴 <동사열전>에 전하는 일여(1807~1832) 스님의 이야기는 수행의 완성을 통해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난 사례다.

일여 스님은 전남 완도 출신으로 16세에 두륜산으로 출가해 먹물 옷을 입었다. 19세에 당대의 대강백인 화담(華潭) 스님으로부터 <능엄경> <기신론> 등을 배웠다. 도반인 백인(白印)스님과 함께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법을 묻다가 25세에 금강산 만회암에서 정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일여 스님은 목숨을 걸고 서원했다.
“이 관음봉에서 100일기도를 올리겠다. 100일이 되기 전에 불 꺼진 찬 화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기도를 마치겠지만 100일이 되어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으면 나의 육신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리라.”

그러나 100일이 지나도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일여 스님은 절 앞마당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올라 불을 붙였다. 백인 스님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백인 스님은 “의상 스님도 금강산의 맑고 깨끗한 도량을 더럽힐까봐 이 산에서 입적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도 극락왕생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소리쳤고 일여 스님은 불 속에서 뛰쳐나왔다. 이미 일여 스님의 몸은 심하게 타버렸고 백인 스님은 인근 스님들에게 방조한 죄를 비난 받았다. 일여 스님은 “내가 극락왕생을 위해 스스로 한 일”이라며 입적했다. 1832년 1월, 일여 스님의 나이 26세 승랍 10년 때의 일이다.

소신공양에 대한 이야기는 <법화경> <금광명경> <열반경> <사분율> <대품반야경> <대보적경> <범망경> <대지도론> 등 여러 경전에도 설해지고 있다. 부처님은 <금광명경> ‘사신품’에서 일곱 마리의 새끼들과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른 범을 위해 몸을 바친 왕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는 일체중생희견보살이 “내가 비록 신통력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나 몸으로써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리라”하고 여러 가지 향을 먹고 향유를 마시고 바른 뒤 스스로 몸을 태우니 그 광명이 80억 항하의 모래 같은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고 찬탄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에는 생사를 여읜 선사들이 소신을 연출함으로써 ‘생사일여’의 도리를 시현한 사례가 많다. 현태(玄泰) 선사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 앉아 “금년이 65세인데 4대(四大)가 주인을 떠나려 하네. 도는 본래부터 현묘하고 현묘하니 거기에는 부처도 조사도 없다. 머리도 깍지 말고 목욕도 시키지 말고 한 무더기 사나운 불길이면 천만 번 만족하리”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단정히 앉아 불숙에서 입적했다. 경통(景通) 선사의 경우 스스로 장작을 준비하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장작더미 위에 서서 불을 붙여 입적했다.

목정배 동국대 명예교수는 “소신은 생명의 회생이요 마음의 헌공이다. 상대되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절대지상의 세계에서 빛을 투영하는 것이다. 내가 불이다. 내게 불이 붙었다. 내가 탄다. 내가 죽는다. 이러한 생각의 여지가 하나 없이 사라진 절대삼매에서 나오는 심핵(心核)”이라고 정의했다.

소신공양은 철저한 수행을 통한 자기초월의 기틀이 다져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기틀에서 발현되는 원력 또한 소아적이거나 상대적 목적에 경도된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구원과 해탈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불길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일에는 억겁의 불보살이 동조(同調)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1998년 6월 27일(음력 5월 4일) 새벽 경기도 가평군 호명산 감로사 아래 숲에서 한 줄기 불길이 치솟았다. 태고종 승정 충담원상(沖湛圓相) 스님이 30년 이상 발원해 오던 소신공양을 결행 한 것이다. 주석하던 서울 왕십리 승가사에서 홀로 택시를 타고 찾아와 조용한 숲에 임종게를 남기고 육신을 불보살님께 공양했다. 소신공양을 위해 항상 노구(老軀)를 정갈하게 유지했던 충담 스님의 임종게는 이렇다.

호명산 감로사에 노닐던 이 노승은
본래 서원 성취코자 삼보전에 소신공양 올리나니
이 인연공덕으로 부처님의 자비은혜를 갚고
국태민안 하여 불법이 거듭 흥륭하기를 기원하도다.
만약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 묻거든
다 응당히 주하는 바 없게 하라.


충담 스님 ‘화중생연’ 도량 감로사 성역화에 매진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충담 스님의 화중생연 12주기 추모재가 봉행된 뒷날 감로사 주지 지성(智性, 66) 스님을 찾아갔다. 지성 스님은 충담 스님 앞에서 머리를 깎았다. 혈연(血緣)에 사제(師弟)의 인연을 더한 것이다.
“수행자의 마지막이 소신공양이어야 한다면 나는 중노릇 그만 두겠다.”
충담 스님이 소신공양을 올리기 전 해(1997년), <정토삼부경>을 편역하여 출판 단계에 있을 때 기자는 지성 스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었다. 그 때 지성 스님은 충담 스님 옆에서 “매일 지극하게 16관법을 닦으시면서 소신공양의 원을 실천할 궁리만 하신다”며 “나는 도저히 그 광경을 상상할 수도 없어 스님께서 출타하시는 걸 감시(?)하고 있다”고 했었다. 순천 선암사 계곡에 몰래 장작더미를 마련해 둔 것을 찾아내 없애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충담 스님은 12년 전에 숭고한 원력을 실행했고 지성 스님은 그 높은 뜻을 기리는 일을 필생의 원력으로 상속받았다.
“스님의 소신공양은 어떤 이슈에 대한 상대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인류의 안녕, 한반도의 평화통일, 종단간의 화합, 승속의 화합 등을 발원하며 위법망구하신 겁니다. 그 원력은 아직도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한 것이니 스님의 뜻이 더욱 확산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지성 스님은 충담 스님의 원력이 실현되도록 하는 불사(佛事)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소신공양은 충담 스님 한 분이 하셨지만 그 원력을 성취시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불자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가? 몸을 불길에 던지는 간절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반드시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물을 찾는 목마른 사람처럼, 일을 품은 닭처럼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참 불자가 아니겠는가?
“경전에서 설하는 소신공양의 공덕은 바로 철저한 자기 수행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역대 선지식들의 소신공양 역시 생사를 관통하는 일념이 어떤 것인가를 설하는 사자후였습니다. 그 가르침을 깊이 새기지 못했기 때문에 불보살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겁니다.”
자과부지(自過不知).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상이 가득찬 사람은 자기 행동의 잘잘못을 알지 못합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리고 남 탓만 하거든요. 자기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주변과 공조되는 자신의 삶을 열어 가야 합니다. 항상 지극한 마음이어야 하는데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방식으로만 살아가려 하니 부딪히고 깨지고 갈등하는 겁니다.”


잘 살기 기본은 ‘자기관리’ 주변 돌아보는 눈 필요

지성 스님은 ‘잘 사는 기본’은 자기관리임을 강조했다. 특히 불자라면 불자의 길을 가야하는데 입으로만 불자이고 행동으로는 비불자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한 예로 생일불공을 들었다.
“부처님 생신은 그렇게 떠들썩하게 찬탄하는데 왜 자기 생일은 여법하게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생신을 소홀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부처의 성품을 갖춘 당당한 ‘예비부처’인데 스스로의 생일을 불자답게 기리지 않습니다. 불자답게 생일을 지내는 길은 바로 생일불공을 올리는 것입니다.”
지성 스님이 말하는 생일불공이란, 자신의 존재를 관조하는 진지한 의례다. 불공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온 뜻’을 되새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갖 악행에 대한 참회가 따를 것이고 더 열심히 살겠다는 발원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가족의 화목과 진지한 불자로서의 생활 규범을 지키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정월이나 칠석 불공을 지극하게 올렸어요. 그게 구복이고 기복이라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불공은 타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력을 증장시키는 경건한 의식입니다. 생일불공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보라는 겁니다. 그리고 보다 뜨겁고 진진하게 살 것을 서원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의 잘못을 알고도 모른 채, 모르고도 모른 채 하는 사람은 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좋은 향(香)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 냄새까지 감춰지지 않는다. 지성 스님은 불자라면 그렇게 좋은 향 하나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원력이란 이름의 향이다.
“충담 스님의 원력은 실로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그 큰 원력이 원력으로 그쳤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실천을 함으로써 큰 원력은 향기를 뿜어 중생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아름답고 크고 숭고한 원력 하나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고 생을 마감한 뒤에도 거룩하고 알뜰한 향기로 남아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원력도 전승되고 순환되는 것이 중생계니까요.”
일체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원력, 개인이 품은 원력이 비록 성취되지는 않더라고 그것이 다시 누군가에게로 전승되고 순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허투루 살 수 없을 것이다.

유구개수(有求皆遂) 여(如) 공곡지전성(空谷之傳聲)
무원부종(無願不從) 약(若) 징담지인월(澄潭之印月)
구함에는 따름이 있으니 빈 계곡에 메아리 소리와 같고
원함에는 따르지 않음이 없으니 맑은 못에 달 비치듯 하네.

불가의 기본 의례인 삼보통청의 앞부분 ‘유치’(부처님을 찬탄하며 불공 올리는 연유를 아뢰는 대목)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성 스님은 “원력을 품고 사는 사람은 빈 계곡의 메아리처럼 맑은 못에 어리는 달처럼 반드시 성취하게 된다”며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불사르는 투철한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처음 가는 길에서 늘 겪는 것이지만, 갈 때 보다 올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호명산 감로사 앞으로 큰 길이 나고 있었다. 아마 충담 스님의 화중생연을 현창하는 불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지성 스님이었다.
“지금 군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여기 감로사 불사 건축허가가 났다고. 다녀가시고 기쁜 일이 생기니 알려드리고 싶어서 전화 했어요.”
“네, 스님. 어제 12주기 재를 잘 올리시어 제불보살님과 큰스님 가피가 내리신 것 같습니다.”
손수 일군 도량에서 불길 속 연꽃으로 피어나신 충담 스님의 원력이 지성 스님의 원력으로 이어져 향기를 뿜어내는 호명산. 6월의 산은 짙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지성스님은

서울 왕십리 승가사에서 득도했다. 성동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태고종총무원의 재무 총무 사회 사정부장 등과 중앙종회의원(4선), 동방불교대 상임이사, 태고종유지재단 이사, 한국불교원융원 원장 등 주요 소임을 역임했다. 2004년 입재한 충담대종사 소신공양 열반성지 성역불사발원 1000일기도를 회향한 뒤로 성역불사에 매진하고 있다.









글ㆍ사진=임연태(시인 본지논설위원) | un82@buddhapia.com
2010-09-03 오후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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