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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는 잡종교배가 우세하다는 뜻이 되고, 근대의 종교철학 사조로는 다원주의(pluralism)가 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논리적으로는 으뜸(元)은 하나(一元)일 수밖에 없으나 실제적으로 그것이 관찰되거나 입증되지 않아서 둘(二元)이라 하거나 그렇지도 않다(不二)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라면 무원(無元)이라 해야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름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룰 때 세계의 여러 존재들은 비로소 평화를 이룬다. 행복도 그러한 평화 가운데에 깃든다. 조화, 평화, 행복이 교류(交流)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한국불교의 해외교류는 받아들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것이 교류였기에 교학(敎學)이든 선행(禪行)이든 유학(留學)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가 그랬다. 최근에는, 크게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한중일불교우호교류위원회를 통한 단체간 교류와 함께 일본, 스리랑카, 티베트, 몽골, 미얀마, 대만 등의 개인과 사찰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대표기구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국제불교 우호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 체험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 수행교환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의 종단과 대한불교진흥원 등이 나서서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 및 교육, 직업지원 프로젝트가 스리랑카, 네팔, 인도,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몽골 그리고 중국과 북한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불교도우의회에 참가한 우리 대표단이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했고, 이웃나라를 방문한 우리 불교계 대표가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하여 해당 불교계의 빈축을 샀던 적도 있다. 실제로는 그 나라 불교의 수행과 신행방법을 익히러 갔음에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겉핥기식 프로그램 진행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나가면서 기념사진 몇 장 찍고 선물 주고받으면서 교류나 견학을 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선당(禪堂)의 좌선대가 아닌 불당(佛堂)의 예배석에 앉아 좌선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민망하다.
또, 한국불교 대표기구인 종단협의회를 중심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방법론과 상대를 걸맞게 정하여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교류하는 나라의 법령조차 이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많이 낭비하는 사례도 꽤 있었다. WFB에 여러 종단, 여러 단체가 그 나름대로 참여 하다 보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들에서는 참여를 유보하고 있고, 종단협의회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참여하지 말자는 결의가 추진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이웃나라 불교계가 꽤 많이 참가하고 이웃 종교계에서도 참여하고 있는 세계종교의회((The Parliament of World''s Religions)에 관한 관심이 아직은 매우 부족하다. 세계종교의회는 100여 나라의 수백 개 종교단체에서 5천 명이 넘는 종교지도자 및 종교인이 참여하여 환경, 평화, 양성평등, 빈곤 등의 문제를 종교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종교간 교류 및 이해와 나눔을 위해 활동하는 장이다.
이제 수행이나 교학, 문화 활동 등 배워야 할 것, 나눠야 할 것을 공유하는 바람직한 교류를 통해 더욱 굳건하게 세계인류를 부처님의 바른 법 안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인도하는 터자리를 넓게 하는 일을 손잡고 추진해야 한다. 종단마다 교류위원회를 구성하고 범불교단체인 종단협의회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역할을 나누어 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그리고 적극적인 상호이해와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간 대화를 하기 전에 종교내의 대화를 선행하여야 한다”고 한 선학의 지적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내의 종단간의 이해와 교류 또한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