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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 봄이 왔다. ‘북한산’이냐 ‘삼각산’이냐 산 이름을 두고 고양시와 서물의 도봉구가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자연은 인간의 소견과 상관없이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다. 계곡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산 들머리부터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살구꽃과 벚꽃의 연분홍에 취한다. 운하교에서 올려다보니 노적봉도 봄기운을 한껏 머금고 있다.
노적사(露賊寺). 노적봉 아래 위치한 연유에서 절 이름이 노적사다. 노적봉은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가장 중앙에 위치하여 다른 봉우리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삼각산이라고 할 때의 삼각은 세 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산을 의미한다. 이 세 개의 봉우리는 백운대 국망봉 인수봉을 말하기도 하고 백운대 국망봉 노적봉을 꼽기도 한다.
절을 창건한 계파성능 스님이 그린 ‘북한산도’를 보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문수봉 보현봉 등의 봉우리 가운데 노적가리처럼 우뚝 솟은 노적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의 감로(생명의 상징)가 쌓여서 봉우리를 이루었으니 노적봉은 그대로 생명의 기운과 진리의 향기를 품은 영봉인 것이다.
1712년(숙종 38) 진국사(鎭國寺)란 이름으로 노적사를 창건한 성능 스님은 화엄사 각황전을 중건한 스님이다. 성능 스님의 권선모연에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고 후세를 발원하며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졌던 노파의 후신으로 태어난 공주의 손에 ‘장륙전’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는 내용의 화엄사 각황전 중건 설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팔도도총섭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던 성능 스님은 북한산성 축성과 여러 사찰을 창건하고 승병을 관리하는 등 빈틈없이 소임을 완수했다. 스님이 남긴 <북한지>에 ‘노적봉 아래 중성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85칸이다’라는 진국사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진국사는 언제 어떤 연유인지도 모르게 폐사가 되어 빈터만 남아 있었다. 1960년 무위 스님과 불자들의 발원으로 절이 다시 지어비고 이름을 노적사라 했으며 1977년부터 종후(宗厚 69) 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부터 차분하게 중창불사가 진행되어 지금 대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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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올라 노적사 적멸보궁 앞에 이르니 마당을 급히 지나가는 종후 스님이 보였다. 마침 다음날(4월 20일)이 ‘국민화합 조국통일 세계평화를 위한 노적사 비로자나불 기원대재’여서 스님과 불자들의 손과 발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각자 맡은 곳에서 활기차게 자신의 일을 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꽃이었다. 노적사의 비로자나불 기원대재는 호국호법의 가르침을 폈던 성능 스님의 창건원력을 계승하는 중요한 행사다. 마당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30년 넘도록 불사를 하시어 이렇게 큰 도량을 이루셨으니 보람도 크시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종후 스님은 짧게 답했다.
“직무유기(職務遺棄) 한 거지.”
의외의 한 말씀에 머리가 띵했다. 직무유기라. 초라한 도량을 35년 동안 일구었는데, 여러 전각을 새로 지어 사격(寺格)을 일신하고 다양한 법회를 통해 많은 중생들이 귀의하여 마음 밝히게 했는데 왜 직무유기라 하실까?
“약속을 하고 보니 오늘이 이렇게 바쁜 날이군요. 어서 들어가 차나 한 잔 나눕시다. 현명하신 독자님들께 내가 뭐 드릴말씀이나 있는지, 자격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
새롭게 단장한 동인당(東印堂)에서 직무유기에 대한 궁금증을 다시 여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냥 있을 수 없는 성격이라서 지난 세월 많은 일을 했고 그 결과로 도량이 정리된 것은 맞아요. 하지만 내 마음의 도량은 아직 불사를 마치지 못 했으니 늘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옷(법복)을 입은 목적이 뭡니까? 자신의 일대사를 해결하면서 인연 중생들의 마음에 등불을 켜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늘 안의 일보다 바깥일에 더 끌려 온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보살도를 말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위로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 그런데 혹자는 묻는다. ‘진리와 교화에 위아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냐’고. 종후스님의 말씀이 바로 그에 대한 확답이 아닐까? 위아래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한마음 속에서 찰나의 간격도 없이 안살림과 바깥살림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보살은 분별하지 않고 차별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안과 밖이라는 허울도 사실은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깨달음 깨달음 하는데, 또 많은 사람들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도 말하는데, 도대체 깨달음은 어떻게 입증될 수 있습니까? 깨침은 안쪽의 일인데,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어떤 것이 옳은가 하는 겁니다. 자, 이런 사변(思辨)에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나는 없다고 단언해요. 이렇게 따지고 분별하다보면 불교는 도무지 어렵고 지루한 망상덩어리가 되고 말아요. <법화경> ‘방편품’에서 가르치듯, 드러나는 모든 모습과 행하는 모든 짓은 방편이지 궁극이 아닙니다. 그 방편 속에서 궁극을 가려내는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분별심을 타파하고 차별상을 허물어뜨리는 곳에서 깨달음의 싹이 돋고 그 싹은 곧바로 자비의 행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이나 분별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안살림과 바깥살림이 여여(如如)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 못하다면, 수행자나 불제자는 스스로 부끄러워야 하고 스스로 직무유기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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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핀다. 분별심과 차별상이라는 진흙탕을 벗어나면 그곳이 연화장 세계 청정국토다. 종후 스님은 수행자로 살아온 세월들에 한 없이 감사한다면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바랑 메고 떠날 수 있는 운수의 길을 동경하고 있다고 했다. 수행자에게 떠남의 의미는 나이가 들어도 머리지 못하는 몸살 같은 것이다. 한 곳에서 불사를 하며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그렇게 자유롭게 떠나는 꿈이 있었기에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의 행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종후 스님은 “우주만물이 다 청정법신인데 누가 누구를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느냐”는 말로 자연파괴를 부추기는 각종 개발 사업들을 나무랬다. 자연의 순환성을 무시하고 직선논리로 들이대는 삽질의 결과는 인간에게 돌아오는 엄청난 재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도 하나의 생명체다. 그래서 인간의 개발논리로 인해 상처 나고, 상처 난 자연은 스스로 자활(自活)의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자활은 인간에게 감당하지 못할 재앙다. 인간이 살기 위해 몸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때가 되어 인간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자연이 이 우주에서 인간을 도려낼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종후 스님은 불교는 그대로 생명의 종교임을 강조하며 불자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것이 생명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무에 꽃이 피어 정법안장(正法安藏)이 되고 잎이 무성하여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이루고 열매가 무르익어 실상무상(實相無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그 가르침은 경험으로 축적되어 언어문자를 빌어 대장경을 이루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말세(末世)를 향해 다가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지식의 확산은 점점 인간에게 유익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마음을 윤택하게 해야 함에도 그 반대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종후 스님은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무시하는 탓이라고 말했다.
“인과법(因果法)만 제대로 믿으면 세상이 달라져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다들 인과가 뭔가를 모르진 않아요. 잘 알고 있으면서 행동은 그에 부합되지 않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더 똑똑합니까?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이미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 다시 말해 ‘선인선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간단한 이치를 머릿속으로만 알고 몸으로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구부정하게 완만하게 흘러가는 물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강둑에 의지하고 사는 숱한 생명들은 아랑곳 않고 시멘트로 강변을 단장한다고요? 그걸 개발사업이라교 하잖아요? 어떻게 그게 개발입니까? 자연의 질서를 위배하고 생명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이 향상되는 일이 아닌 줄은 삼척동자도 알아요. 자연의 흐름을 인정하고 생명의 가치를 더욱 존중하고 부양하는 일이 진짜 개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악한 인연을 지어놓고 좋은 열매를 따먹으려 한다면 자연이 허락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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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떠들썩한 4대강 개발 사업은 선인선과 악인악과라는 ‘법(佛法)’의 안목에서 생각할 때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에 어떤 것이 유익한가를 따져야 할 문제라는 것. 그러나 견해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보다는 하염없이 대립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게 바로 중생심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이지요. 한쪽만 보면서 전체를 보고 있다는 착각. 이를 전도몽상이라 하던가요? 반대론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다른 입장들을 설득하여 꿰어 맞추면 된다는 아집이 세상을 ‘불타는 집’으로 만드는 겁니다. 이를 <금강경>에서는 4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고 하잖아요? 그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공동체적 노력이 없이는 세상이 편해질 수 없어요. 그래서 불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자신의 수행에만 몰두하고 세상일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구덩이에서 혼자 살아나겠다고 앉아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겁니다.”
중생심을 버리면 부처가 되는가? 중생심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옛 스승들은 말로 떠들지 말라고 했다. 글로 남긴다고 그게 진리는 아니라고 했다. 말하고 글 쓰는 사이에 이미 진리는 중생심의 영역에서 또 하나의 망상으로 고착될 뿐이라고.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不思善 不思惡)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아상(我相)을 벗어나려고 생각하면 아상에 잡히고, 인상(人相)을 떠나려고 하면 인상에 끌리고, 중생상(衆生相)을 떨치려고 하면 중생상 가운데로 떨어집니다. 수자상(壽者相)을 잊으려고 하면 수자상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드는 수렁과 같은 것이 번뇌의 실체인 겁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겠다, 혹은 이루겠다는 목표와 함께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왜곡시키는 깨달음 지상주의는 깨달음에 대한 공허한 이론만 강조하고 실천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진정한 불교가 아닙니다. 갈 곳을 정했으면 길을 떠나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십리 밖의 우물물을 마실 수 없는 겁니다. 네 가지 상에 사로잡혀 그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네 가지 상을 자기화 시키고 그 속에서 자기를 녹여버리라는 겁니다. 안살림 따로 바깥살림 따로가 아니라 안과 밖이 하나로 돌아가는 살림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생심은 둘로 나누는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사에 매진하다보니 안살림을 잘 살지 못했다고 한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종후 스님은 안과 밖의 살림살이를 둘로 여기지 않았기에 그렇게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불사를 진행하는 동안 안과 밖이 하나로 작용하여 여여한 살림살이가 되었을 것이란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봄기운 가득한 노적봉 아래 비로자나의 온 세상이 청정법신으로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노적사의 발원이 힘찬 물줄기가 되고 꽃향기가 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가길 기원하며 하산 하는 동안에도 꽃이 피고 새들이 우짖고 있었다.
종후스님은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종후 스님은 1967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월산(月山)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조계종 중앙교육원 1기 수료의 이력을 가진 스님은 1976년 불국사 강원 대교과를 마쳤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중앙종회의원, 고양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사)이웃을 돕는 사람들 회장, (사)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 영등포교도소 교정위원 등을 지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학과와 불교경영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스님은 수필집 <노적사의 봄> 교리서 <불교사상의 바른 이해>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