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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만연한 4월 13일 이상하게 바람은 유달리 찼다. 4월 중순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바람은 거셌다. 가뜩이나 추워 보이는 여주교도소를 들어서는 길은 더 을씨년스러웠다.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는 철창문을 지나 여주교도소 불교실에 들어섰다. 휘몰아치던 바람은 없었고 따뜻한 봄 햇살만이 법당 안을 비추고 있었다.
“잘들 있었지?”
성무 스님(안양 삼막사 주지ㆍ여주교도소 교정협의회 불교분과 위원장)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고 불교실 안에 있던 10여 수용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여주교도소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 법우상담 법회가 진행된다. 불우 수용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상답법회는 수용자의 가족문제, 생활의 어려움 등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시간이다.
상담법회가 진행되기 전 성무 스님과 수용자들은 불교경전을 낭독하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전공부를 마친 후 스님은 “오늘은 그간 못 보던 사람도 있는 것 같다”며 소개를 부탁했다. 잠시 쑥스러워하던 수용자는 이내 짧은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수용자들이 자연스럽게 한 마디씩 자신의 이야기를 보탰다. 이내 불교실은 봄 햇살 만큼이나 따사로운 이야기로 가득 찼다.
상담법회에는 안양 삼막사 신도로 구성된 봉사자들도 함께 참여했다. 봉사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마련한 과자, 과일, 떡 등의 공양물들을 전해주며 수용자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재소자 교화활동 봉사에 2년 여 가까이 참여해 온 정연숙(52)씨는 “봉사자들이 마련해 오는 음식들을 수용자들이 항상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규정상 음료수 반입이 금지돼 있는데, 오늘 같이 떡을 가져오는 날에는 시원한 음료수도 함께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가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봉사활동에 참여를 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수용자들이 은근히 봉사자들을 기다려 책임감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규정상 속 깊은 대화를 서로 많이 나누지는 못했더라도 그간의 정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1시간 정도 진행된 상담법회에는 봉사자들과 수용자들이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성무 스님은 여주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교행사에 모두 참여하며 재소자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해 교정교화 봉사활동을 해 온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난 스님은 “법문을 특별히 들려주지 않아도, 몸소 실천을 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수용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단지 스님을서 해야할 공부가 하기 싫어 이런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하는 스님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용자들 걱정뿐이다.
“교도소에서 특별히 불교포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종교라는 것은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세상의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취급받는 이곳에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빛’을 밝혀주는 것이 종교인으로서 해야 할 저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여주교도소는 4~5월 크고 작은 행사를 앞두고 있어 스님도 함께 분주한 상황이다. 4월 20일 장애인 날을 앞두고 장애인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행사’가 준비 중이다. 이 날은 종교를 초월해 수용자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이다. 또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열리는 봉축행사 준비도 한창이었다.
이 밖에도 여주교도소에는 정기법회, 불교기초교리반, 경전 사경 공부, 합창단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성무 스님은 여주교도소가 이렇게 왕성하게 불교행사를 진행하는 된 것을 두고 “모두 불교담당자인 어윤식 포교사 덕분”이라고 말했다. 어윤식 포교사는 “단지 스님과 다른 봉사자분들이 하시는 일을 옆에서 거들기만 할 뿐”이라고 답했다.
현재 여주교도소는 불교와 더불어 개신교, 천주교 등에서도 종교교정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어 포교사는 “타종교는 종교행사가 있을 때, 외부 봉사자들도 수용자들을 위한 교정교화활동에 적극 참여하는데 비해 불교행사시에는 스님 혼자 법문을 설하시는 경우가 많다”며 “불교도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에 관심을 두고 자비사상을 많이 실천했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성무 스님은 “재소자들이 사회로 나가게 되면 방황과 혼란이라는 고비가 찾아와 더욱 살기 힘들어 합니다. 한 출소자는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처자식과 먹고 살기 힘들어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교도소 생활 당시에 접했던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훔친 물건들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자신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참회했다”며 “자신의 의지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내기는 힘든 법인데 너무 대견하다.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고쳐 바르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겐 가장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어윤식 포교사는 “불교에서는 ‘제해무상(諸行無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자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불교의 이런 가르침을 알고 수용자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항상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부처님의 법을 ‘빚’이라 생각하고 사회에 나가 자비와 지혜로 사람들에게 회향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