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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안 스님의 내가만난선지식
미주 포교의 선구자, 삼우 스님
캐나다와 미국 동부지역에서 서양불자들에게 미국식 한국선을 가르치고 있는 삼우 스님은 미주포교의 선구자다. ‘망치를 들고 불자들과 함께 절을 짓는 스님’이란 미국 언론의 소개는 스님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경남 진주출신으로 1941년 범어사 동산 스님께 출가해 설봉 스님에게 선을 배운 삼우 스님은 1966년 일본 임제종 평림사와 광덕선사에서 수학하며 ‘무연대비’(無緣大悲)의 정신으로 세가지 원을 세웠다.

첫째는 바른 생각과 정직한 행동으로 개척불교에 앞장선다.
둘째는 서양불교 개척은 나의 역사적 사명이다.
셋째는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로 대화와 친선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한다.

스님은 이러한 대서원을 갖고 1967년 8월 뉴욕에 도착했다. 맨하탄 42가 방 1개짜리 아파트를 얻은 스님은 UPS배달회사에 들어가 밤에는 일을 하며 낮에는 미국사람들에게 참선을 가르쳤다.

스님이 선방을 먼저 개설한 것은 첫째, 말이 필요 없고 행동중심인 ‘선’이 미국인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었기 때문이며 둘째, 들뜬 생각만 가라앉히면 성적등지(惺寂等持)의 평화세계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님의 맨하탄 선방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마음공부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당시 베트남 전쟁 징병을 피해 해외로 도망치려하는 청년 학생들도 많았다.

스님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차라리 반전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가면 참선운동을 하라”며 “피하지 말고 어려움에 직면해 이겨내라”고 설했다.

이러한 활동도 잠시 스님은 비자가 만료돼 미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스님과 인연이 닿은 프랑스 소르본대 룰만 교수가 콜롬비아대학 게리 제갸드 종교학과 교수와 호레이스 포리스 박사에게 소개해 한국선불교를 알릴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결국 미국을 떠나야만 했다.

스님은 1968년 2월 캐나다 몬트리올로 떠나 멕길대 철학과 교수들과 시민운동을 펼친다. 삼우 스님은 반전 운동과 연계해 시민선방을 만들고 그 곳 학생들이 참선 등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몬트리올 멕길대에서 4년 동안 시민운동에 전념한 스님은 토론토 대학 근처로 다시 거쳐를 옮겼다. 스님은 식당,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뉴욕 소시알리스트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2년간 한국선불교 연구를 진행한다.

스님의 포교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님이 후두결핵으로 인해 요양원에 수용된 73년부터였다. 스님은 그곳에 있는 12명의 환자들에게 말없는 행동으로 ‘자타불이’(自他不二) ‘진속불이’(眞俗不二) ‘생사불이’(生死不二)의 가르침을 전했다.

40여일 만에 요양원에서 돌아온 스님은 선불교를 연구하는 것을 포기한다. 교학적 연구에서 벗어나 살아 숨쉬는 불교를 선양키 위해 3년 결사에 들어갔다.

스님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는 한편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한국교포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스님의 지하 아파트에는 참선을 배우기 위한 사람들이 차차 늘기 시작해 76년에는 제자 수가 15명에 달했다.

스님은 히피 문화 등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미국청년들에게 선문화를 알리기로 결심한다.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토론토 우범지대 헌 집을 사찰로 가꾼다.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매일 아침 5시에 108배를 올리고 참선 올린 뒤 공사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스님에게는 망치가 신심의 도구가 되었고 공사현장은 수행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79년 그렇게 토론토 선련사(禪蓮寺)가 완공됐다.

스님은 토론토 뿐만 아니라 미국 동부지역에 불교를 널리 알렸다. 81년에는 미국 미시건주 앤아버에 자혜불교회(Buddhist Society for Compassionate Wisdom)을 설립했으며 91년에는 시카고에 선원을 설립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에도 선원(Centro Zen Budista)을 설립했다.

스님은 선원 개원 외에도 1986년 시카고 미륵승가대학(Maitreya Buddhist Seminary)을 설립해 법사 양성에 나서는 등 미주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또 스님은 1986년 미주 내 불교 종단의 교류와 협력를 위해 법사 모임인 ‘북미의 선불교(Zen Buddhism in North America)’를 주관했다. 또 87년 8일간 ‘북미 세계 종교회의’를 성료하기도 했다. 스님은 불교수행지 ‘스프링 윈드’(Spring Wind)를 발행하는 등 문자포교에도 적극 나섰다.

미국포교의 기반을 다진 삼우 스님은 한국에 올 때마다 선농일치사상(禪農一致)과 실천불교 정신을 설했다. 스님은 지금도 미주 지역에서 승려 및 법사 양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노인불자들을 위해 공예부락, 장수마을을 찾아다니며 평화교원에 들어갈 때까지 안심입명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있다.

바랑을 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불제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스님의 실천적 민중불교는 재미교포 나눠먹기식 불교운동을 혁파하는데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2010-01-29 오후 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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