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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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생에는 기도로, 내생에는 출가로
화성 용주사 성도재일 철야정진법회 현장
용주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밝혀진 연등 아래서 법회를 보고 있는 불자들.

동장군의 기세가 다시 살아난 1월 21일 저녁 7시. 짙은 어둠이 내린 천년고찰 화성 용주사의 경내는 평소와는 다른 엄숙함으로 가득 찼다. 일주문에서 천보루까지의 무명을 헤치며 도착한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팔각연등이 100여 사부대중을 품고 있었다.

성도재일(음력 12.8)을 하루 앞두고 철야정진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 법복 차림을 한 채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끝ㆍ발끝 신체 어느 부위라 특정 지을 것 없이 그저 춥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위는 고통스러웠으나 대중 모두 부처님 고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참가자들은 삼귀의와 <반야심경> 독송으로 법회의 시작을 알렸다.

“불~! 법~! 승~!” 머리 위에 떠있는 연등에 불이 밝혀졌다. “와~!” 불자들의 고요한 탄성으로 나온 하얀 입김은 천연 드라이아이스로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주지 정호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하나의 불씨가 이어져 또 다른 연등을 밝히고, 온 세상의 불을 밝혀 온 세상이 밝아지듯 내 마음을 밝힘은 내 가정ㆍ이웃ㆍ나라의 마음을 밝히게 됩니다. 부처님은 6년 고행을 마치고 보리수 아래에서 1주일간 선정삼매에 있던 중 샛별을 보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그 날이 바로 음력 12월 8일, 내일입니다.”

대중스님들과 신도들은 용주사 경내를 돌며 석가모니불 정근과 탑돌이를 했다.

거센 바람이 일순간 멈췄다. 불자들의 마음에도 고요가 찾아들었다.

“존재에 대한 모든 인식은 마음에 투영된 상입니다. 희로애락, 옳고 그름 등 모든 것은 내 중심으로 생각한 인식, 상(相)입니다. 부처님 말씀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것, 수행의 방법과 깨달음에 도달하는 단계를 정해 놓는 것도 ‘구속’입니다.”
정호 스님은 부처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연등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불자들이 직접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스님은 “생각을 일으키기 전, 듣고 생각하는 나를 잘 관찰하라”며 “스스로 체험하고 확인하는 참선수행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들어 존재의 실상을 깨닫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님의 법문은 불자들에게 불퇴전의 용기를 북돋기에 충분했다.
정호 스님과 대중스님을 선두로 참가자들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세존사리탑을 돌기 시작했다. “나무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정근기도는 한파로 얼어붙어있던 대지를 깨우고 기세등등하던 동장군을 한발 물러서게 했다.

대중은 본격적인 참선정진을 위해 효행교육원으로 이동했다. 구도의 길이 바쁜 이들에게는 쉬는 시간도 아까운 법. 도반들의 대화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벌써 수행 삼매에 들어간 이들이 보였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주지 정호 스님.

서울 잠실에서 왔다는 부부 참가자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정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부는 “부처님 6년 고행에 비하면 오늘 하루 잠시 철야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수행의지를 밝혔다.

두 자녀의 대학입시기도와 천도재 기도로 본격적인 수행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지혜의 광명을 밝힐 것을 발원했다. 남편 대명 거사는 “부처님의 가피와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일궈 살아오며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금생에는 출가하지 못했으나 내생에는 출가해 큰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로화 보살님은 “회향을 잘 하고 싶어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보현행십대원’을 실천하는 수행자의 삶을 발원하고 있어요”라고 화답하듯 말했다.

참선정진은 본래 중앙선원에서 공부 중인 스님들이 지도하기로 돼 있었다. 저녁 9시가 되자 예정에 없던 정호 스님이 교육원으로 들어왔다. 교육에 앞서 정호 스님은 “아이고~ 금년에는 홍보가 덜 됐나. 신심이 떨어졌나. 왜 이리 적어. 참선 수행법이 가장 수승한 법인데도 믿지 않고 괜히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법문 듣고 한번 잘~해봐요” 라며 걱정과 당부가 섞인 말로 격려했다. 불교 4대 명절인 성도재일은 불자들의 수행에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이에 용주사는 매년 성도재일 특별법회와 철야정진을 성대히 열어 매년 200~300여 신도들의 수행열기로 넘쳐났었다. 그러나 올해는 부쩍 줄었다는 후문이다.

용주사 효행교육원에 자리를 잡은 신도들은 철야정진에 앞서 주지 스님에게 화두참구와 자세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정호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꼼꼼히 설명하며 “‘자세’의 요체는 힘을 빼는데 있으며, ‘생각’은 정미롭게 하되, 의심은 놓지 않아야 한다. 의심을 한다는 것은 힘을 들이는 것 또한 아니니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참선 정진은 성도재일인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허리가 펴지지 않는 70대 노보살님들은 구부정한 자세에 어찌 견디나 싶어 보였다. “보살님, 허리가 불편하지 않으세요?”라는 우문에 “부처님 말씀에 따라 행할 뿐”이라고 대답하는 보살님들 눈빛에서 ‘동트는 새벽 별빛’이 반짝였다. 대웅보전 앞에는 붉은 연등이 화로의 숱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불자들의 마음에 이 열기가 퍼지기를 기대하며 동장군과 함께 동동거리며 길을 나섰다.





글=이상언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01-22 오후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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