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여래의 사자를 만나다 3
일시: 11 월 10일
장소: 광주 동구 KT정보문화센터
강사: 명진 스님(서울 봉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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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광주에 내려오면서 이런 저런 감회가 좀 많았습니다. 광주는 제가 강진 만덕사나 송광사 선방에 살 때 지나쳐 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초청 받아서 오기는 처음입니다. 그리고 또 광주 그러면 뭔가 저에게는 빚 같은 걸 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으로 항상 살아왔습니다. 어느 때 부턴가 광주를 ‘빛고을’이라고 부르더군요. 빛고을 광주(光州). 참 이름 너무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광주를 품에 안고 있는 산 이름도 무등산(無等山)이어서, 참 형이상학적인 이름이란 생각이 들어요. 무등산, ‘평등’도 아니고 ‘무등’입니다. 계급이 없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뜻합니다. 또 무각사를 스쳐 지나가는 강 이름이 극락강(極樂江) 이잖아요. 빛고을 광주에는 우리가 바라는 끝없는 정토 세계의 좋은 이름이 다 여기 와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를 ‘예향’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도시는 그렇게 부르는 곳이 없습니다. 요즘같이 경제 제일주의에 빠져서 먹고 사는 것, 돈 많이 버는 것을 최고로 치는 세상, 물질적 가치에 중심을 두는 세상에서 광주는 오래전부터 돈이나 물질, 이런 것들보다 예술을 중히 여겼습니다. 우리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표를 주는 그런 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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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흐름들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이루어냈고, 또 그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광주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집권하고 있을 때는 비판도 했고, 비난도 많이 했지만, 그러나 돌이켜 보니까 그만한 대통령이 없었던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제일 먼저 깃발을 들고 지역적 차별을 넘어서서 경상도가 고향인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데 제일 앞장섰던 곳이 또한 이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광주에 초청을 해주신 광주 불자님들께 머리숙여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는 뭡니까?” 또 어떤 경우에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런 물음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불교만 이야기하기 보다는 다른 종교와 비교를 하는 것도 이해가 빠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복과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 내생의 천국을 약속 받는 종교인 것입니다. 반면, 불교는 끝없는 자기 물음을 통해서 각성 즉 깨달음으로 가는 종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불교는 성찰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요, 불교는 물음의 종교라고 저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우리 부처님 법에도 기도와 발원과 염불, 그런 것을 통해서 다음 생에 극락을 갈 수 있고, 또 이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물음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제일 첫 번째로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생각에 도달하면 불교가 이제 어려워지고 가장 난해해집니다. 무턱대고 맡겨놓고 빌어서는 불교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얼음 같이 차가운 이성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야 되는 종교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렵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경전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강원에서 글을 많이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 경험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이 굉장히 불행했습니다. 어릴 적 모친께서 두 살 난 제 동생과 여섯 살 난 저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때 부산에 있는 당감동 화장터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섯 살 때인데 화장터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이른 봄, 찬바람 막 몰아치는 그 추운 날, 삼베옷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거기에 서있었던 철 없던 그 시절이 쭉 그렇게 생각이 오랫동안 저를 지배해왔습니다.
집도 가세가 기울어지고 그래서 초등학교 전학만 여섯 번이나 다녔습니다. 또 내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맨날 쌈박질에 사고를 아주 많이 쳤습니다. 근데 돌아가신 어머니 댁에서 제가 사춘기를 보냈는데, 그 심사가 얼마나 편치 않았겠어요. 그 때 마침 수덕사의 김일엽 비구니 스님이 쓴 <청춘을 불사르고> 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아~ 이거 불교라는 것이 참 묘한 종교구나’라고 느꼈고, 그러면서도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해서 3학년 때 저를 아는 분이 무주 설천면에 관음사라는 절에 저를 공부하라고 보냅니다. 비구니 스님 절에서 대입공부 해서 합격하면 대학 보내줄테니 가서 공부하고 오라 해서 그 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 ‘사람이라는 것이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인연이 때로는 내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하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절에서 지내면서도 불교에 대해서 고리타분하게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해인사 스님이 한 분이 오셨습니다. 방이 마땅치 않아 제 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이 절에 들어오시는 모습부터 뭔가 다르더라고요. 정갈하게 광목 두루마기를 입고 걸망을 메고 밀짚모자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도량에 들어오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맑고 깨끗했습니다. 스님이 공양하신 모습이나 신고 온 양말을 빠는 모습이나 이런 모습에서 스님의 위의(威儀)를 느꼈습니다. 그 때 그 스님이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 당시 저는 19살이었지만 스님의 위의에 기가 눌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그 스님께서는 방 한 쪽을 쳐다보고 숨소리 하나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생전 처음 봤죠. 제가 속으로 ‘아니, 저 인간이 뭐하고 앉아 있는 거야. 사람 갑갑해 죽겄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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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종을 치니까 부스스 일어나더니, 마당가에 묵은 벚나무가 있었는데 달빛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와 또 방석에 앉아서 참선을 합니다. 아 그리고 꼼짝을 안 하네. ‘야, 저 인간이 뭐하는 인간일까? 참 이상하다’하고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에 “스님 뭣 좀 여쭤보겠습니다.” 이러니 “남한테 뭐 물을게 뭐 있겠소. 지 할 일 잘 하면 되지.” 이렇게 말을 하십시다.그 것 참 ‘이걸 한 대 패야 되나’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아주 건방지고, 도도하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기가 눌려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그게 아니고요. 뭣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그러니까 딱,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뭐가 그렇게 궁금하요?” 하는 거예요. 대체적으로 스님들한테 속인들이 뭘 물어봅니까? “스님은 왜 중이 됐습니까?” 그거 많이 물어봅니다.
그래 그 스님이 물었습니다.
“학생은 여기 뭐 하러 와 있나?”
“예, 저는 대학교 준비할려고 와 있습니다.”
“그래, 대학은 가서 뭐할낀데?”
“아니 대학 가서 좋은데 취직도 하고 그러죠.”
“취직 하면 또 뭐하는고?”
“취직해서 이제 장가가고 그렇게 사는 거죠.”
“그렇게 살면 또 뭐하는데?”
“아니, 살다 사람이 죽는 거지. 뭘 자꾸 그렇게 물어요.”
“그러면 여기서 공부하는 게 그렇게 살다가 죽으려고 공부 하는 거 아닌가.”
그럽니다. 굉장히 괘변 같죠? 괘변 같은데 사실은 그거 말고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스님은 어째서 스님이 되어가지고 출가하시고 뭘 하십니까?”
“부처님 법은 내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 내가 뭔가를 깨닫는 그 공부를 하는 것이 불교야. 내가 나를 아는 거야. 너는 니가 왜 사는지도 모르고, 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면서 니가 뭘 대학 가고 한다는 게, 그게 전부 허황된 저녁노을 같은 거 아니야?”
제가 지금도 생각해 보면 참 대단히 수행이 깊었던 스님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 스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18년 동안 괴로워하고, 아파했던 부분이 다 사라지고 제가 부처님 법,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위해서 그 오랜 세월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공양을 하시고 스님이 가시는데, 제가 걸망을 지고 버스 정거장까지 따라갔습니다. 그 스님이 손을 꼭 잡으면서 “출가해서 스님 하시면 아주 공부 열심히 하는 그런 훌륭한 수좌 스님이 될 것 같으니까, 같이 만나서 공부합니다.”그러고 가셨습니다. 6개월 후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그 후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출가를 해서 이렇게 중노릇을 하다가 30살 되던 해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만났습니다. 저는 신문만 봐서 시민들이 폭도들이고 간첩이 선동을 해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나는 나를 깨닫기 위해 출가를 했으니까, 세상사는 다 나와 상관이 없어, 나는 공부만 해야지. 이뭣고 화두를 해서 깨달아가지고 정말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지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1984년도에 해인사에서 광주항쟁 비디오 들어온 것을 스님들과 몰래 보게 됩니다. 그거 보면서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데, 같은 땅에서 저렇게 사람들이 죽고 피를 흘리고 하는데, 과연 그럼 나는 무얼 하는가? 이 생각이 항상 마음속에 빚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부터 생각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85년도에 스님들을 모아 세상의 잘못된 것을 꾸짖고 하는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86년 ‘9.7 해인사 승려대회’를 열게 됩니다. 해방이후에 최초로 한국불교가 반정부 시위를 한 겁니다. 10.27법난규탄대회위원장도 맡아서 일을 하다가 구치소 생활도 했습니다. 그 후 개운사 주지를 잠깐 하게 되고 선방에 다니다가, 또 오고 가고 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94단 종단개혁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세월을 지내다가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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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봉은사는 강남입니다. 강남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동네이고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제가 거기를 들어가서 삼 년을 살게 됩니다. 봉은사는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던 절입니다. 돈 많은 절이고, 부자 절이고 또 이런 이유로 여러 가지 분규가 있었던 절이고 해서, 참 문제를 많이 안고 들어간 겁니다.
제가 그래서 ‘아, 내가 한 생 죽었다고 생각하고, 1000일 기도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이제 1000일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1000일을 시작하니까, 신도들은 ‘저, 새로운 것들은 얼마나 돈을 해먹고 나갈라고 저러는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쳐다보면 인사도 안 합니다. 그러다가 100일만 하면 밥 산다고 서로 내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 신도들의 기대, 바램. ‘어, 정말 하시네.’ 그러면서 점점 바뀌는 거. 신도들이 스님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존경심과 또 정말 잘 하신다, 그런 기대. 그것들이 저로 하여금 1000일 동안 게으르지 않게,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할 수 있게 한 힘이 된 겁니다.
그래서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고, 300일이 지나고, 400일이 지나고, 500일째 되는 날 기념법회를 할 때, 법상에서 내려와서 저희 신도님들한테 제가 삼배를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신도님들이 호법신장 같이 나를 지켜주고, 바라보고, 항상 눈빛을 보내주는데, 어떻게 내가 빼먹을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내가 게으를 수가 있는가? 제가 1000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한 번도 법당에 가는 시간을 늦어본 적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다고, 사시에 한 번 빼먹은 거 말고는, 빠진 적도 없고, 늦게 가본 적이 없습니다. 2999번을 딱, 시간 5분전에 들어가서 그렇게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 가르침만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선(禪)을 해서 무엇을 하고 깨달음을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야기 할 때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과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것은 무명으로부터 벗어나서 지혜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지혜란 것은 뭔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흔히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워라. 방하착(放下着) 해라. 놓아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참으로 비워진 자리에 지혜가 솟아나게 되어있습니다. 허공은 그대로 텅 비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무수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허공과 같다. 실제로 우리 마음은 허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뭘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분 있으면 누가 한 번 손 들어 보십시오. ‘난 뭘까?’ 모른다 이겁니다. 지금 여기가 어딘가? 무슨 뭐,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어디 어디. 더 넓게. 세계. 더 넓게. 태양계, 은하계. 더 넓게. 그 다음에는 주소를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광대무변하고 끝없는 우주 공간 속에 지구는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점에 붙어사는 나라는 거, 뭔가 이거? 언제인지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확한 대답을 못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간다 이 말입니다. 나는 여기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짐승과 조금도 다를 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번뇌고, 아는 것으로부터 분별심이 나왔고, 아는 것으로부터 간택심이 나왔기 때문에 이 아는 것을 전부 버리는 겁니다. 요즘에 제방에서 간화선이 잘 되니, 잘못 되니 하면서 자꾸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나오는데, 간화(看話)가 별거 아닙니다.
‘나는 뭘까?’ 뭐, 그게 잘 안 되는 분들은 ‘주지스님이 왜? 무(無)라고 했을까?’ 그걸 물어도 됩니다.삼라만상 전체에 대해 우리는 다 알 수가 없어요. 꽃은 왜 붉은지, 버들은 왜 푸른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계약된 것, 앎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서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불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사상적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화두 하나, ‘이 뭣고?’ 하고 묻는 그 간절함이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로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속에 빠져야 합니다. 마음속에 빠지기 위해서는 힘이 빠져야 합니다. 모든 앎을 다 내려놓은 상태로 가는 것입니다. 힘이 완전히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들이 운동 하실 때 보면 힘이 완전히 빠져야지 스윙이 부드럽습니다. 우리 몸에서 힘 빼듯이 우리 마음속에서도 힘을 빼야만 올바른 판단력과 올바른 세상을 보는 안목이 열립니다. 그 안목을 가지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보살행을 합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죠. 자비는 지혜가 없으면 실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지혜로움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정진하고 수행하고, 나를 향해 끝없이 묻는 성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세상에 잘못된 것이 있을 때는 꾸짖어야 하고, 비굴하지 않게 거기에 대해서 손을 대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빛고을 광주에 온 국민들이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광주, 무등의 품속에서 환한 빛이 되어 이 세상을 밝혀나가야 합니다. 차별이 없고, 또 가진 자가 없는 자를 함부로 하고, 많이 배웠다 해서 남을 함부로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정말 평화로운 이 땅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깃발을, 또 그러한 횃불을 광주가 선봉에 들고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오랜 시간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