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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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깨달아 알때가 곧 '대방광불화엄경'
[선지식을 찾아서] 부산 화엄사 회주 각성 스님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시골 길에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뚜렷하다.

10여분을 승용차로 달렸을까. 4년만에 참배하는 고운사 초입의 도로 변에 못 보던 비석과 연못, 정자와 더불어 도로 반대편에는 비로자나부처님과 인공숲이 보인다. 가만히 기억을 되살려 본지에 게재됐던 뉴스를 되짚어보니 비석은 의상 스님의 법성게(法性偈)의 원문과 해석을 큰 돌에 새긴 ‘법계도비’였고, 숲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도판 그대로 명상의 숲으로 조성한 ‘법계도림’이었다.

세계 최초로 조성되었다는 법계도림에 호기심이 끌려 호젓하게 사진기를 든 채 미로처럼 된 법계도 숲을 따라 걸었다. 다소 서둘러 걷다보니 약 20분이 걸린다는 안내판과 달리 10여분만에 홍단풍 숲길을 다 지나서 비로자나부처님과 마주하게 됐다.


신라시대에 고운사를 창건(681년)한 의상(義湘, 625∼702) 대사가 광대무변한 화엄사상의 요지를 210자 게송으로 압축한 도인(圖印)을 가리키는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는 7언 30구로 구성되는데, 일반 문장과 달리 연속된 글자들을 4개의 ‘回(회)’자 모양을 이루는 모양으로 배열했다. 그것은 게송의 내용과 도형의 모습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게송이 모두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여래(如來)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고, 이 선이 굴곡을 이루는 것은 중생의 욕망이 같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 이 법계도의 모양이 시작과 끝이 없고 ‘回’자의 도형으로 표시된 것은, 여래의 선교방편에는 특정한 방법이 없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돌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 원만하고 걸림 없어 두 모습 없고)’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바퀴를 돌면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 흔들림 없이 본래부터 고요하여)’로 끝나게 되어 있는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법계도의 도장(印)이 상징하는 ‘해인삼매(海印三昧)’란 과연 어떠한 경지일까, 지금 이 자리를 떠나 그런 경지가 따로 있을까 하는 망상을 지어보며 비로자나불과 둘이 아닌 자성불에 삼배하니, 새삼 고향 땅에 모처럼 찾아온 연유가 떠오른다.

‘이곳은 과연 부석사에 버금가는 화엄도량이 아닌가. 그리고 오늘은 우리 시대의 화엄종주인 화엄학회 회주 각성 스님이 3박4일간(9월 7~10일) 일정으로 ‘화엄요해’를 설하는 법석이 펼쳐지는 날이 아닌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법회 준비에 바쁜 고운사 주지 호성 스님께 합장 인사를 드리고 점심공양 후, 객실에서 각성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질문을 드렸다.

“스님께서는 반 백년 동안 출가수행의 길을 걸으셨는데, 한 마디로 불교란 무엇입니까?”
“불교란 무지에서 벗어나 깨닫는 길입니다. 얽히고 설킨 마음의 고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생사해탈하여 성불하는 길입니다. 공자, 노자, 장자, 인도 명상 등 많은 외도가 있지만 불교는 최고 최상의 유일무이한 진리입니다.”

“평생 팔만 장경을 열람하셨는데, 불자들에게는 어떤 경을 우선적으로 권하시겠습니까?”
“화엄, 법화, 열반이 모두 소중한 경이지만 수행자들에게는 능엄경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능엄경을 보면 팔만 장경의 핵심요지와 함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수행법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까요.”

“스님께서 팔만 장경을 꿰뚫어보는 경안(經眼)을 갖기 까지는 이론만이 아닌 실제 수행을 통해 공성(空性)을 체험한 계기가 결정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수행법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18세에 사미계 수지 후 비슬산 도성암에서 공부할 때 은사 도원 스님에게 ‘옴마니반메훔’6자대명왕진언을 항상 수지독송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선원에는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400만 독 하면 견성한다’는 용성 스님의 안내장이 나돌 때였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용맹정진 해서 7만 독 정도 했을 때,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미리 아는 예지능력이 생겼습니다. 아울러 세 살 때까지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정진을 계속해 머릿속에는 옴마니반메훔이 염주처럼 쉬지 않고 돌고 돌았습니다. 6자진언 정진을 한 지 110여 일 지났을 때, 문득 6근이 본래 없다는데 이것도 없애야겠다 싶어 옴마니반메훔 진언까지 내려놓아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순간 주관과 객관이 모두 텅 빈 오온개공(五蘊皆空 오온이 모두 공함)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후 스님은 4.19의거 직후 약관 23세의 나이로 <금강경 3가해>를 비롯한 불교 강의를 시작하는 한편, 강원에서 경 공부를 병행했다. 밤 12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간경수행하는 시간은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옴마니반메훔 수행을 통해 경안이 열려 배우지 않은 경전도 저절로 이해됐다. <능엄경>에 “내적으로 몸과 마음을 벗어나고, 외적으로 세계도 벗어난 것이 마치 새가 새장을 벗어난 것과 같다”고 한 것이나, <대승기신론>에서 “모든 육진 경계가 마음에 의해 생기고, 마음을 떠나면 없다”고 한 공(空)의 도리를 체득해 문리(文理)가 저절로 터져나온 것이다. 한학자 집안에서 여덟 살부터 외운 4서3경 덕택에 스님은 사미, 사집을 월반해 곧바로 <능엄경>을 보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시, 스님께 이론과 실천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간경수행을 하시면서, 그 전날 옴마니반메훔 정근을 통해 체험한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으셨나요?”
“공부도 기반을 잘 닦으면 매(昧)하지 않아요. 마치 1층 탑을 튼튼히 쌓으면 5층, 7층까지 탑을 견고하게 쌓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당시의 수행체험은 너무나 생생해서 경전 공부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지요.”

각성 스님은 당대의 대강백이었던 관응, 탄허, 운허, 고봉 스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큰스님들의 문집을 증의해서 출판하는 소임을 충실히 완수한 것은 물론, 동국역경원 증의위원을 맡아 한글대장경이 완간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학과는 배치되는 질문 같지만, 계속되는 수행법 관련 질문.
“스님께서 해오신 오랜 경전 공부와 실참의 경험으로 볼 때, 요즘 불자들에게는 어떤 수행법을 권하시겠습니까?”
“말세 중생에겐 마음을 비우고 염불수행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구체적인 염불수행법을 하나 하나 일러주신다.
“상근기는 ‘실상염불’을 하는 게 좋습니다. 우주만유가 본래 없고 텅 비어 맑은 빈 자리, 즉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이름, 모양 할 것 없이 모든 것 다 끊어진 자리)의 자리임을 관하는 것입니다. 또 중근기는 ‘관상염불’이 좋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32상80종호와 극락세계를 관하는 염불방법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7일 오후 2시, ‘화엄요해’ 특강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마지막 질문을 드렸다.

“스님의 평생 좌우명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좌우명이라기 보다는 오래전부터 해온 발원이 있습니다. ‘미묘한 음성과 큰 변재(辯才)를 성취하고 모든 신통을 갖추며, 모든 바라밀을 닦아 성불하여지이다’하는 것입니다.”

객실에서 물러나와 지난해 10월 완공한 선체험관(백련암)에 미리 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리니 ‘화엄요해’ 특강 입제식이 진행된다. 해인사 백련암 시절부터의 오랜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는 고운사 회주 혜승 스님의 축사와 화엄법회를 펼친 각성 스님에게 감사를 전하는 주지 호성 스님의 인사말에 지극한 신심이 느껴진다. 이어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법단에 앉은 각성 스님은 고운사와 화엄종의 인연을 상기시키며 2시간의 화엄사상 강의를 펼친다.

“일체 성현중에는 부처님이 가장 으뜸이요, 일체 경교(經敎)에서는 화엄경이 가장 위대합니다. 집에 문이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하게 하듯이 법에도 문이 있어 범성(凡聖)들의 출입을 통하게 하나니 그것이 곧 법문(法門)입니다. 성인은 중생을 교화하려고 진여문(眞如門)에서 나와 생멸문(生滅門)에 드나들며, 중생은 부처를 이루려고 생멸문에서 진여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각성 스님은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있다고 하나 일심(一心)을 떠나서 존재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화엄경의 대의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정ㆍ무정(有情無情)과 물질계, 정신계, 세계, 인과가
모두 일심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일심은 만유의 실체(본체)로서 부동(不動), 주원(周圓 두루 원만함),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변(不變), 수연(隨緣), 공적(空寂), 영지(靈知), 상주(常住), 묘명(妙明), 원융(圓融). 광대(廣大), 무애(無碍), 자재(自在)한 것입니다.”

각성 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7자 법문이 모두 일심(한마음)을 밝힌 것이니, 일심을 깨달아 알 때가 곧 ‘대방광불화엄경’임을 거듭 강조했다.
“화엄법문은 결국 일심을 떠난 것이 아니니 그것이 곧 일심법계(一心法界)이고 나아가서는 사법계(四法界), 심법계(心法界), 십현문(十玄門) 등으로 펼쳐집니다. 화엄경 전부가 범부에서 보살, 보살에서 부처를 이루는 그 과정을 자세하고 광범하게 설명한 법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집약하면 돈오(頓悟), 점수(漸修) 두 가지 문으로서 한 마디로 하면 지행원구(智行圓具)라는 넉자에 불과합니다.”

스님에 따르면, 문수는 지(智)요 보현은 행(行)이며, 문수는 돈오요 보현은 점수이며, 문수는 원융문(圓融門)이요 보현은 행포문(行布門)이 된다. 결국 지혜와 덕행을 쌓는 것이 보살의 수행이며 불타의 증득이다. 즉 문수와 보현이 합일되면 비로자나불이 되니 삼성원융(三聖圓融)이 이뤄지게 된다. 일심에 즉 해서 만행을 밝히고(卽一心而 明萬行), 만행을 닦아 일심을 밝히는 것(修萬行而 明一心)이 곧 화엄사상이란 해석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은 다른 경과 달라서 보현보살의 행문(行文)을 더욱 중요시합니다. 예컨대 도달할 목적지를 눈으로 보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지를 향해 한 발, 두 발 걸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함과 같습니다. 보현의 행원(行願)으로 중생계가 다하고 세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 할 때까지 언제나 상구보리(上求菩堤)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보살행을 닦아서 구경에 성불하는 것입니다.”

각성 스님은 구도자가 발심해서 선지식을 찾아 묻고 배우고 깨달은 후에는 항상 이타행을 전제로 하는 보살행을 닦아 불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을 구하는 보현행원을 닦으면 성불은 그 가운데 있다며, 이것이 화엄경에서 설한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첫 회 2시간 여의 열강을 끝내면서 각성 스님은 화엄법문의 네 가지 핵심(四要)으로 심입부동(心入不動: 마음이 부동삼매(不動三昧)에 드는 것),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잘 쓰는 것), 입대서원(立大誓願: 큰 서원을 세우는 것), 수대행해(修大行海: 큰 수행을 쌓는 것)를 제시했다.

‘한마음을 밝히면 만법을 통괄한다(明一心統萬法)’고 했다. 수행자의 본분사인 깨달음의 성취는 물론이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도 마음 찾는 과정은 절대적인 과제임을 이번 화엄법문은 거듭 깨침을 주었다. 아울러 오늘날 종교, 이념, 국토, 지역으로 분열된 이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 옛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사상적 배경이었던 화엄사상에 대한 참구가 더욱 절실함을 느꼈다. 각성 스님이 평소 ‘통화(通和: 통일 화합)’라는 신조어를 사용해 온 것도 이러한 화엄사상에서 기인한 것임은 물론이다.

의상 대사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인연처인 고운사 숲길을 내려오면서 동시대 화엄의 최고봉이었던 원효 대사가 애송했던 화엄경의 한 게송이 떠올랐다.

“일체 걸림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나고 죽는 생사를 벗어났다(一切無?人 一道出生死).”
원효 대사의 크나 큰 중생제도의 원력과 무애자재한 보살행을 본받아 배우고 실천하는 우리 시대의 일승(一乘)보살들이 깨 쏟아지듯이 출현하기를 발원하면서 다시 한번 ‘대방광불화엄경’을 염해 본다.







각성 스님은

1938년 전남 장성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4서3경을 배웠다. 1954년〈5천년 조선역사>란 책에서 율곡 이이 선생이 절에 들어가 3년간 <능엄경>을 공부했다는 대목을 읽고 백양사를 찾아갔다. 55년 18세에 선사이자 율사인 해인사 백련암 도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세에 비슬산 도성암에서 ‘옴마니반메훔’ 6자진언 수행으로 오온이 공한 체험을 했다. 이후 당시 3대 대강백이라는 관응, 탄허, 운허 스님 문하에서 경학을 연찬한 스님은 50여년간 수많은 스님과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경전을 강의해 왔다. <능가경> <수능엄삼매경> <대도직지> <불조직지심체요절> <유식논강의> 등 20여 저서를 낸 바 있는 스님은 ‘통화총서’ 300권 완간을 목표로 저술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고희를 지난 세수에도 부산 화엄사 회주, 탄허불교문화재단 부설 삼일선원 원장, 화엄학회 회주 등을 맡아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글ㆍ사진=김성우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09-09-15 오후 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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