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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는 ‘찬 기운에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이건만 한 낮의 태양은 맹렬했다. 매미소리 또한 우렁차서 쉬이 가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처서가 되면 풀들은 성장을 멈추고 다시 대지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나. 길섶의 풀들은 아직 혈기방장하건만, 안으로는 그 푸른 생명력을 거두어들이고 있다니 우주의 기운을 읽어내는 그들의 능력이 신기하기만 하다.
삼각산 문수사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문수사까지 한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산행이 서툴러서인지 두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땀을 식혀주는 솔바람에 의지해 느릿느릿 산길을 걸었다. 한참을 올라가자 예불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반갑던지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으로 보았더니 절벽에 까치집처럼 매달려 있는 대웅전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 때의 탄연(坦然) 국사는 하필이면 저렇게 험난한 곳에 절터를 잡았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문수사에 주석하면서 남긴 시 한수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만 가지 인연이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려 있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은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저 스님 따라/ 고요히 앉아 참 즐거움 배우려나.
한 칸 방에는 산들바람이 머물다 가는가 하면, 구름도 쉬었다 가고, 달빛과 별빛이 숨바꼭질 하듯 숨어들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과 벗하는가 하면 자신과 마주해 고요를 즐겼던 그리고 선정삼매에 빠져들었던 수행자의 진면목이 그대로 그려진다.
혜정 스님이 1985년 대구 동화사 주지를 마치고 문수사를 찾았을 때 문수동굴 앞 작은 법당 한 칸이 전부였다. 혜정 스님의 원력으로 법당, 문수전, 나한전, 삼성각, 공양간, 요사채등 여러 채의 당우를 갖추어서 천년 고찰로 거듭났다.
오고가는 등산객들 틈에서 염주를 돌리고 있던 혜정 스님은 “뭣 하러 볼품없는 이 노인네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타박을 놓았다. 혜정 스님은 곧 법문이 있다면서 가사장삼을 수하시고 법당으로 들어가실 채비를 하셨다. 혜정 스님은 20년 넘게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객들을 상대로 법문을 해주고 있다. 스님의 법문으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면, 한 사람이라도 진리의 문에 들어선다면, 한 사람이라도 기쁨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은사이신 청담 스님은 법당에 한 사람이 앉아있어도 법문을 하실 정도였어요. 법문을 시작하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셨어요. 제자들이 ‘스님 시간이 없어요’라고 쪽지를 보내면 ‘죽은 사람에게도 몇 시간씩 염불해주고 법문해 주는데, 산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어떠냐’면서 되레 우리들을 혼내고 그랬어요.”
스무 평이 조금 넘는 법당에는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스님의 법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기세간은 지진,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재앙이 없으면 테러를 비롯해 서로가 투쟁을 해 살상을 일삼는 등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있어요. 불교에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자비사상으로 남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능엄경>에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법이 나와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찰나 찰나 변해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생명이 있는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할 길이 없어요. 부처님은 인간에게 생로병사만큼 다급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생로병사를 해탈하는 방법론을 가르쳐주셨어요. 불교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해 절대 평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신이 있어서 이상적인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교는 자기의 마음을 깨달으면 자기가 곧 부처인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우주의 자재인(自在人)이 돼 영원한 생명을 실현하는 각자(覺者)가 될 수 있습니다.
생로병사를 깨닫는 방법으로는 참선, 염불, 주력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행에는 좋고 나쁘다는 우열이 없어요.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끊임없이 정진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수행정진을 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원력이 필요합니다. 원력은 ‘바람’이 되겠지요. 자신의 원력이 반드시 사회로 반드시 회향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능엄경>에 보면 참선을 해 부처님의 경지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겁(多劫)으로 지은 업장이 두터워서 마음 공부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이 장애를 없애는 방편으로 ‘능엄주’를 하라고 합니다. 꼭 ‘능엄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주력이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되겠지요.
또 우리나라에서는 관음신앙이 널리 퍼져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염불을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천백억화신을 나투는 보살로,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사바세계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겠다는 원을 세웠어요. 관음신앙은 <묘법연화경>이라는 대승경전에서 비롯됐습니다. <묘법연화경>에 보면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 있는데, 이때 관(觀)이란 소리와 모양을 듣기도 하고 보는 것을 뜻합니다. ‘보문(普門)’은 관세음보살에게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사람에게는 이 문은 환하게 열려 있으며, 그 문에 들어가면 생사해탈을 할 수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관음염불을 하다 보니 환희심이 나서 <관세음보살발원문>을 하나 지었어요.”
혜정스님이 지으신 <관세음보살발원문>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세에 돌아기신 모든 이의 어버이와 무수한 전쟁터에 원혼 돼 가신 이들/ 극락정토 왕생하여 대법열 누리오며/ 천당불찰 태어나서 무량복을 받사이다// 거룩하신 관음보살 당신 앞에 발원함은 중생의 모든 고뇌 건지고자 함이오니 이 세상 모든 사람 한량없는 번뇌 속에 삼독물결 크나큰 죄 다 없애주옵소서.’
스님께서 직접 지으신 <관세음보살발원문>을 통해 이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이 날로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혜정 스님의 원력을 느낄 수 있었다.
“참선을 통해서나 염불을 통해서 깨닫고 보면 일체모든 것이 부처님 법 아닌 것이 없다고 합니다. 분별심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의 소동파 이야기를 세세하게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중국에 ‘소동파’라는 유명한 문장가가 있는데, 시와 그림으로 이름을 날리다 보니 굉장히 오만했다. 하루는 옥천사에 승호 선사를 찾아갔더니 스님이 소동파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오만한 소동파는 스님을 골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칭(秤)가요”라고 답을 했다.
“칭가라, 처음 들어보는데요.”
"나는 선지에 밝다는 종사들을 찾아보고 그 분들의 기량을 달아보는 칭가란 말이요."
칭(秤)이란 한자로 저울이란 뜻인데 소동파는 ‘자신이 선지식들의 법력을 달아보는 저울’이라고 소개를 했다. 승호 선사는 세상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찬 소동파를 혼내주고 싶었다. 승호 선사는 갑자기 “으악”하고 무섭게 일성대갈(一聲大喝)하였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다면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되겠소?”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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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는 능할지 몰라도 도대체 “으악” 소리는 몇 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스님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옥천사를 빠져나온 소동파는 기가 한 풀 꺾였다. 그 후 소동파는 불교의 본지는 학문이나 지식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선사들을 찾아뵈었다. 어느 날 상총스님을 찾아가 설법을 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그대는 왜 무정(無情)설법은 듣지 못하고 유정(有情)설법만 들으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산이나 나무와 같은 무정물이 설법을 한다는 말을 소동파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정설법’을 화두 삼아 말을 타고 깊은 계곡을 끼고 돌아오다 거대한 폭포를 만났다. 폭포소리에 소동파는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렸다. 활연(豁然)히 대오(大悟)한 것이다.
소동파는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한 수 남겼다.
계성변시장광설(溪聲便是長廣舌) 계곡의 물소리 모두가 부처님 설법인데,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산천초목이 어찌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아니겠는가.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하룻밤 사이에 8만4천 법문을 깨달았는데,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 다른 날 이 도리를 어떻게 남에게 일러 주겠는가.
“소동파는 깨닫고 보니 물소리, 새소리,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부처님 법문 아닌 것이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법당에 있는 부처님만이 부처라 생각하지 말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전부 부처라 생각하고 공경하세요. 지금 요란하게 울고 있는 매미소리, 새소리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다 법문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혜정 스님은 법문을 끝내고 요사채에 딸린 공양간으로 향했다. 주말에는 등산객들에게 무료로 점심공양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안고 산을 내려갈 것을 염려해서인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많이 먹을 것을 권했다. 인자한 스님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지니 관세음보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실에 들어서니 터 자체가 좁아서인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수행자는 무소유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였다. 은사인 청담 스님 사진과 서옹 스님의 서예 작품 한 점이 고아한 맛을 풍길 뿐이다. 혜정 스님은 은사 스님 이야기로 이어졌다.
“정화운동이 한창일 때 은사님이 ‘내가 너희하고 같이 갈 때에 혹시 누가 와서 나를 때리더라도 너희는 절대로 그 사람을 때리지 마라. 오히려 나에게 인과(因果)를 믿으라고 말을 해야 한다’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청담스님이 사셨던 세월을 넘기고 나니 이해가 되데요. ‘인과를 알고 믿는 것이 바로 불교의 지고지상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청담 스님은 상좌들의 장삼을 곧잘 다려줄 정도로 하심(下心)이 몸에 익어져 있었다. 하심은 인욕(忍辱)에서 생기는 것이며, 인욕이란 자기를 잊었을 때 자기를 버렸을 때에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란다. 우리네 개념으로 참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참는 것은 이미 인욕이 아니라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형님과 함께 우연히 봉암사에 놀러 간 것이 출가의 계기가 됐다. 그때 장삼을 입은 스님과 처음으로 마주했는데, 그 분이 바로 ‘봉암사결사’를 주도했던 성철스님이다. 성철스님은 “인생무상을 들려주면서 사람들은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쓸데없이 집착을 부린다”면서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학교 공부도 다 소용없는 것”이라 했다. 스님은 성철 스님의 말씀이 매우 솔깃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며칠 만에 다시 봉암사로 돌아와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됐다.
봉암사는 공주규약(共主規約)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기에 행자생활 또한 엄격했다. 그때는 보름마다 포살을 했는데 청담 스님, 성철 스님 할 것 없이 대중 모두가 천배씩의 절을 했다. 그리고 수행의 일환으로 모든 대중이 탁발을 나갔는데, 청담 스님이나 성철 스님도 예외 없이 탁발을 나갔다. 혜정 스님은 어른 스님들 옆에서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할 자신의 덕목으로 삼았다.
“봉암사에서 대중 스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울력을 하고 참선하는 일과 속에서도 청담 스님은 저에게 ‘네 마음자리를 찾아라’고 했어요. 아직도 그 마음자리를 완전히 찾지는 못했지만, 공부에는 엄격하면서도 다른 일에는 자비스러웠던 은사 스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청담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할 때, 혜정 스님은 잠시 해인사 재무국장 소임을 맡았다. 어느 날 태국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대회에 다녀온 청담 스님이 “앞으로 서구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젊은 스님들은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한마디에 영어공부에 열정을 쏟았다. “은사 스님 말씀은 그대로 법이었다”면서 “은사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존경하기에 그대로 따르게 되더라”고 회고했다. 혜정 스님은 도반 서너 명과 함께 영어회화를 배우며 뉴스위크지반까지 다니면서 영어 실력을 연마했다. 국제 포교사로 종단의 통역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수행자는 도를 깨치는 일이 본분사’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뒤로 영어공부를 접었다.
스님은 불자라면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 육바라밀인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수행덕목으로 삼아라고 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아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족한 가운데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보시입니다. 화가 나더라도 참고 참다보면 그것이 인욕바라밀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정진하다보면 지혜가 생기고 지혜를 갖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아요.”
부처의 마음을 깨우치면 천지 우주간 부러움과 두려움이 없단다. 내가 바로 너요, 내가 바로 우주요, 내가 바로 자연인데 부러울 것이 뭐있겠느냐는 것이 스님의 말씀이다. 좀더 높은, 좀 더 많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소유하기 위해 허덕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따끔한 경책이다.
혜정 스님 약력
봉암사에서 청담스님을 은사로 득도. 1958년 해인사 강원 대교과 졸업. 문경 봉암사, 합천 해인사, 마산 성주사에서 수행정진.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동화사 주지, 해인사주지 직무대행, 조계종 종회의원 역임. 지금은 청담문화재단 이사, 도선사 조실, 청담학원 이사이며 삼각산 문수사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