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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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편히 쉬면서 ‘알아차림’만 하면 됩니다”
이은정 기자의 김천 법흥사 '심념처' 수행 동참기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모습.

김천 법흥사 가는 길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 덕에 출발부터 그리 유쾌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에는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고 그 속을 내달리는 기분은 웬지 찜찜했다. 산등성이 머리위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마치 짜증나서 열 받아 있는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났다.

김천 법흥사 출장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처음 가는 출장, 처음 가는 김천, 처음 해보게 될 수행 등 모든 것이 나에겐 낯선 상황들이었다. 그렇게 빗길을 얼마동안 달렸을까.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내 귓가를 후벼 팠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고가 난 걸 알 수 있었다. 떠날 때부터 뭔가 꺼림칙하더니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 조수석 옆을 훑고 지나간 사고의 흔적을 보니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 머릿속도 안개처럼 희뿌옇게 변해갔다.


#위빠사나 수행이 대체 뭐 길래


사고는 났고 갈 길은 바빴다. 더군다나 길도 제대로 몰랐다. ‘도대체 위빠사나 수행이 다 뭐라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일렁였다. 사고현장을 대충 수습한 뒤 갈 길을 다시 재촉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입제식 시간은 맞출 수 있었다. 어떻게 법흥사를 찾아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몸은 법흥사에 있었다. 사고 후유증 때문일까.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던 주지 범해 스님께도 어떻게 인사를 드렸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그 곳에 있었을 뿐 이었고,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늦은 저녁.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입제식이 끝나 버렸다. 수행 중에는 오후불식이라 저녁공양 시간이 따로 없었다. 범해 스님은 먼 길 왔는데 배가 고파 어쩌냐며 꿀을 탄 미숫가루 한 대접을 권했다. 미숫가루 한 대접을 마시고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에 뭐하러 온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법흥사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법흥사 인근에서 경행하는 여 수행자.



#‘사띠’하면 ‘사마디(고요함)’ 생겨


이튿날. 무슨 정신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예불로 본격적인 하루 수행이 시작됐다. 위빠사나 수행일정은 비교적 단순했다. 수행과 사사나 스님의 인터뷰가 번갈아 진행될 뿐이었다. 예불이 끝나고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수행에 앞서 사사나 스님은 수행은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좌선을 할 때는 단지 내가 할 일, ‘사띠(마음챙김)’만 하면 됩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다리도 아파오고 여기저기 쑤실 것입니다. 그럼 그냥 그런 현상을 느끼시면 됩니다. 일단 다 받아들이고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꼭 좌선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하셔도 되고, 경행을 하셔도 됩니다.”
스님은 수행은 고행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냥 편히 쉬면서 알아차림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점점 내가 이해하기 힘든 범위의 말들을 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일단 나는 가만히 앉아 내 마음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을 보려고 할수록 내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어제일만 더 생생히 떠올라 괴로울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집착할수록 고요함은 생기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우선은 배가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느낌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귓가에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끈 풀어달라고 낑낑 거리는 소리, 산 여기저기서 새들이 지저대는 소리, 닭 울음소리, 물소리 등이 들려왔다. 계속 들어 보니 한 가지 소리 같아도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서서히 내 마음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사띠’ 알면 지혜로 말하고 행동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좌선을 경행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법당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보살님 한 분이 절 근처에 저수지가 있다며 같이 경행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보살님과 함께 경행을 시작했다. 보살님은 “그냥 걷지 말고 내가 어떻게 걷고 있는가를 느끼면서 걸어보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엔 내 발끝에만 온통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 법흥사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걷힌 법흥사 인근은 고요하고 맑은 곳이었다. 비가 온 탓인지 한껏 물을 머금은 나무와 꽃들은 자신의 색을 뽐내기 바빴다. 냇가에 흐르는 물도 더 힘차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생각 외로 법흥사는 아름다운 절이었다.

문득 지난 밤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대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남 탓만 하기에 급급했던 어제의 일들이 말이다. 하지만 어제의 일 때문에 오늘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걸 느꼈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그것도 시속 100㎞를 달리다 버스와 충돌사고가 났다. 자칫 잘못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자 내 눈에는 꽃도, 나무도, 산도, 물도, 모두 너무 아름답게만 비쳐졌다. 경행을 마치고 절로 돌아가니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치며 나를 반겼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인터뷰 하는 사사나 스님.



#수행은 일상생활에서 지속 하는 것


각자의 수행이 끝나면 사사나 스님과 인터뷰를 한다. 자신의 수행방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스님으로부터 점검을 받는 것이다. 스님은 이 과정이 수행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많은 수행자들은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평소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 고민거리들을 털어놓는다. 그럼 거기서 스님이 ‘사띠’를 바로 일으켜 지혜를 알아차렸는지를 알려 준다.

초보 수행자인 내게 스님은 되레 질문을 했다. “기자님은 밥 먹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드셨습니까?”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밥은 우리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밥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밥을 입에 넣는 것을 알고, 씹는 것을 알고, 넘기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먹어야합니다. 그때 그때 일어나는 마음 상태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항상 ‘사띠’를 생각하면서 지내면 삶이 고요해 질겁니다.”

나는 그제서야 왜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이 수행에 왔는지를 알 것 같았다. 살면서 스스로 복 지으며 살았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이렇게 천운이 따랐던 것은 아마도 이 세상이 들려주는 많은 소리를 다 듣지 못했기에 부처님이 가피를 내려 주셨던 것 같다. 하루 사이에 날씨는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안개는 걷히고 해가 쨍하니 떴다. 나는 다시 아름답게(?) 영광의 상처를 지닌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내 마음의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
(054)430-0619
이은정 기자 | soej84@buddhapia.com
2009-08-18 오전 10:12:00
 
한마디
kimbege sati수행 전문수행처는 '반냐라마' 혹은 'satischool.net'로 검색해보시죠.
(2009-09-17 오후 4:05:30)
85
a민딩이 우와~ 대단합니다.존경스러워요
(2009-08-18 오후 9:48:16)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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