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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중허리쯤에 위치한 천자암에 들어서면 마주보고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정 서넛 명이 손을 맞잡고 에워싸야 할 정도로 굵은 나무줄기에는 용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듯하다. 오랜 세월동안 풍상을 겪으면서 용틀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용들은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처럼 하늘을 향해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마주보고 선 나무들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죽어서도 서로를 못 잊어하는 남녀가 나무로 환생한 것은 아닌지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쌍향수(雙香水)에 대한 안내표지판을 읽고 나면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이 부끄러워진다. 고려 시대에 보조 국사와 보조 국사의 제자인 담당국사가 중국에 유학을 갔다. 특히 담당국사는 왕손(王孫)인데도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출가를 하여 보조 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중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 천자암에 나란히 꽂아두었다. 향나무 지팡이는 햇빛과 비의 자양분을 받아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고, 그렇게 서로를 지켜 주면서 자란 세월이 800년이 넘는다. 두 그루의 향나무는 마치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해 사람들은 예의 바른 스승과 제자로서 아직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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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암에는 천연기념물인 쌍향수와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 선승 활안 스님이 있다. 활안 스님은 공부인이 오면 그 사람에 맞는 법거량을 펼쳐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선문답을 즐기는 것이다. 활안 스님은 선문답을 즐기는 것이 되겠지만, 당하는 쪽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서른셋에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상원사, 청량선원, 칠불암, 범어사, 용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방부를 들이며 40안거를 성만했다. 활안 스님은 60여년을 오직 선방과 토굴에서 치열하게 수행정진 했으며, 경허 선사-만공 선사 -보월 선사 -금오 선사 -월산 선사의 법맥을 잇고 있다. 한번 어떤 목표를 정하면 목숨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정진한다는 활안 스님은 서른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활안 스님은 광양의 백운산 토굴에서 죽기살기로 공부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년 동안 백운산에서 ‘나고 죽는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父母未生前 是甚磨)’를 화두로 삼아 참선 수행을 했다. 토굴에 가려면 마을에서 세 시간이나 걸어가야 할 만큼 깊은 산중이었다. 이곳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 따로 시간을 내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그것이 바로 수행이기도 했다.
“일을 하다 보면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할 때가 있어. 겨울에 월동하려면 불살개가 있어야 하니 소나무 뿌리가 있길래 그것을 낫으로 자르다가 손까지 베고 말았어. 어두운 게 얼마나 깊이 벤지도 몰랐어. 방에 들어와 상처에 다이징을 바르고 나서 촛불을 켜고 보니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어. 누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피는 덜 흘렸을 건데, 가난에도 암가난 숫가난이 있다던데, 살수록 어찌 이리 외롭다냐! 손을 동여매고 부엌에 들어가 된장국을 끊이고 해서 허기를 채웠지. 피를 흘리면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 쓸쓸하고 외롭데. 밥 한술 떠먹고 죽비 세 번 치고 참선에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 지금 사는 것도 꿈속이지만, 비몽사몽간에 9척이나 되는 여래가 나타나 당신의 오른팔로 베개를 삼아서 나를 뉘이고는 말씀하시대. ‘너만 외롭냐? 과거의 제불(諸佛)성현도 이 고비를 넘을 때면 피골이 상접해 뼈가 살이 되고 살이 뼈가 되는 그런 과정을 다 거쳤어. 오늘의 제불들이 모두 너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고, 미래의 제불도 너와 똑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니라.’ 이 말씀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어. 하지만 여래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게 남은지라 유리곽에 모셔진 부처님께 삼배하고 이렇게 기도했어.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가진 물심(物心)을 탁 털어서 나에게 다 주시오. 내 배가 부르면 다 주지, 안 줄 것이 없지요. 내 말 안 들으면 뭣 하러 거기 앉았어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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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그날부터 밥 먹을 때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이 부처님이라면 말없이 들으시오. 내가 과거 세상에는 끝없이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상황을 바꾸어야겠소. 끝없이 많은 상대를 모두 빛이 나게 하고, 상대방이 다 보람을 느끼도록 하고 나를 의지하려는 곳에 기쁨을 주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앞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고통에서 구해주겠다는 발원이다.
활안 스님은 팔십이 넘은 노구인데도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백장청규 정신에 따라 여전히 밭일을 한다. 감자, 호박, 깻잎, 버섯, 고추, 고구마 등 평상시 먹는 것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해결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어디 밥 먹는 일은 쉽다냐?”라고 답하신다.
“나무 한 그루를 딱 심어 놓으면 누가 키워 주는 것이 아니고 나무 자체의 힘으로, 땅의 힘으로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나잖아. 그러니 내가 키우는 것이 아녀. 생명의 기본은 사계절의 원리와 맞물려 있어. 생명의 본체는 무생(無生)이야. 천지자연 생명계를 다 동원해도 생명의 근원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야. 남음도 모자람도 없이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생명이지. 생멸은 공하다, 이것은 생과 멸은 한 생각 설계를 잘 해서 고놈 다 쓰고 내가 정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 마음에 복이 한결 좋았든 나빴든 간에 다 쓰고 고놈을 또 뒤처리해서 도로 천지의 본원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생명이야.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생명이라면 무한(無限)이란 두 글자로 연결이 되어 있어. 고놈을 쓸 줄 알면 그 사람은 지혜의 판단력이 생산된 사람이여. 천지 생명이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가 먼저라면 천지생명이 순서대로 가서 ‘나는 당신의 몸이 되어 주겠다’고 그래요. 생명들마다 그와 같은 본래 원인이 이리저리 걸림 없이 다 엮어져 있거든. 그래서 생명의 본체는 참으로 금강(金剛)의 불가사의라.”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먹는 것 이전에 생명 이전에 우린 불가사의한 금강과도 같은 생명을 지니고 있는 귀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스님은 갑자기 객을 유심히 보시더니 웃으면서 한 마디 하신다.
“내가 화장품 가게에 가서 눈에 바르는 시커먼 거 하나 사 줄까?”
눈에 바른 푸른색 아이세도우가 스님의 눈을 불편하게 했나보다. 조금은 민망스러워서 “예”라고 답했다.
“아야, 그런데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는 순간 그 안에 있는 것은 전부 네 꺼야.”
“그 안에 있을 때는 전부 내 것이라도 가게를 나오고 나면 내 손엔 아무 것도 없잖아요.”
“아니지. 가게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그 안에 있는 것을 전부 다 쓰고 나왔지.”
스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마음자리가 정해지지 않으면 내 것도 다 남의 것이여.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어.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되어 행복하려면 우선 밝아야 해. 어두우면 괜히 헛짓하는 거여. 마음이 어두우면 죽도록 일해 놓고 끝에 가서는 한바탕 얻어맞고 나오게 되지. 그러면 ‘내 팔자야’ 하고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지. 자기 어두운 것은 모르고. 마음이 밝아 놓으면 그 밝은 내용으로 설계를 하고 또 노력을 하고 뒤처리를 다 해도 그 밝은 지혜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어. 이 도리를 알겠는가?”
활안 스님은 70년대 초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에서 수행할 때 수행정진력과 공부의 깊이에 감복한 선방수좌들이 조실로 추대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떨쳐 버리고 천자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 채의 오두막집에 불과했던 천자암을 법당과 선원, 법왕루, 종각, 나한전 등 격을 갖춘 사찰로 바꾸어 놓았다. 천자암에서 일념정진을 거듭하던 어느 날 환하게 밝아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천지간에 내놓은 오도송은 천자암 법당의 주련이 되어 눈 밝은 참배객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스님의 오도송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용이 새겨진 벼루에 먹을 갈아 붓글씨로 써 주었다.
通玄一喝萬機伏(통현일할만기복)
言前大機傳法輪(언전대기전법륜)
法界長月一掌明(법계장월일장명)
萬古光明長不滅(만고광명장불멸)
진리를 통하여 한 번의 할로 온갖 번뇌망상 굴복시키니/ 말 이전의 한 소식이 법륜을 전하도다./ 법계의 달빛이 한 손바닥 안에서 밝았으니/ 만고의 광명은 다함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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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축구시합 하는 것을 보면 실력 있는 선수들이 하나도 없더라고. 발이 공을 따라 갈라하니까 실패지. 공이 발을 따라오도록 만들어야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이성계는 한밤중에 활을 쏘는데 백발백중이었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시간과 공간은 심성에서 나온 거여. 심성이 그처럼 준비를 하면 불가능은 없는 거여. 심성이 통달되면 다 해결되는 것이여. 천지(天地)가 지혜와 복을 주는 게 아니고 각자 타고난 생명이 자기를 밝히는 것이여. 그러니 상대방한테는 속아도 자신한테는 속지 말아야지. 내가 밝으면 혼자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중생이 전부 그 혜택을 받게 돼.”
스님은 ‘노 대통령 49재’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다면서 걱정을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은 멋있어야 하고, 담대해야 하고, 태양같이 밝아야 하고, 소나무 대나무와도 같이 정확히 실천할 줄 알아야 해. 대통령을 잘못 뽑아놓으면 온 국민이 우왕좌왕하고 고생이 많지.”
어떻게 하면 세속의 사람들도 산중의 스님들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여쭈었다.
“일체 중생이 바라는 것이 행복인데, 사람들은 행복과는 반대로 살아가. 마음으로 바란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녀. 행복하려면 밝아야 해. 마음도 밝아야 하고, 보고 듣는 것도 밝아져야 혀. 세상에 가능, 불가능은 내 한 생각이 열쇠를 가지고 있어. 내가 평생 동안 본 것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자기 분야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는 거야.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은 특출한 것이지만 수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여. 나를 버리면 본래 성품이 드러나고 내가 본래 불성을 가진 부처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야. 깨달은 사람이 많으면 사회에서나 중생사이에서 갖가지 시비가 생겨나지 않지.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녀. 단지 자신의 근본자리인 마음이 확실하지 않고 무명과 번뇌에 쌓여 있기 때문이지. 마음이 정해지고 노력이 뒤따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울 것이 없어. 속가에서도 원(願)을 세워 놓으면 꼭 그대로 되더라고. 비록 늦을 지라도 말이요.”
부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정하면 얼마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정하고 머무르지 않고 실천한다면 그 안에 도(道)가 들어있단다.
활안 스님은 새벽 2시면 일어나 도량석을 하고 새벽 6시까지 기도정진을 한다. 안거 때마다 7일 동안 용맹정진을 펴고 있으며, 매년 100일 동안 문 밖 출입을 일체 하지 않는 폐관정진(閉關精進)을 계속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활안 스님의 정진수행 일화는 수없이 많다.
요즈음도 100일 동안 폐관정진을 하시는지 궁금하여 여쭈었다.
“나는 100일 같은 건 상관없고, 내 한 철은 숨이 떨어져야 한 철이야. 내 결재는 그런 거야. 모두가 한때거든.”
“넌 몇 때를 가지고 있냐?”
“스님 말씀대로 할 것 같으면 저도 한 철이 아직 끝이 안 났어요.”
“내 뒤만 따라다니면 넌 언제 부처가 될래?”
‘스님 말씀대로 할 것 같으면...’이라고 단서를 붙인 것이 못마땅하신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임제 선사의 서슬이 푸른 기상을 천자암의 활안 스님에게서 볼 수 있었다.
“넌 여기를 안 와야 될 건데, 괜히 여기 와서 살아나가지도 못하고 이 일을 어쩌면 좋냐!”
“너를 불쌍히 여겨 이제 마지막으로 막을 지어서 한 마디만 묻겠다. 너, 가지 말고 여기에서 내 마누라 노릇을 해라. 그러면 부처가 될 것 아닌가. 계산이 맞냐 안 맞냐? 계산이 맞냐 안 맞냐?”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당황스러웠고, 어서 답하라고 다그치는데 정신이 아찔했다. “계산이 안 맞는데요.”라고 답했다.
“넌 끝도 갓도 없어. 안 맞는다는데 노예가 되어뿌렸어. 넌 언제 부처될래?”
활안 스님은 ‘넌 언제 부처가 될래?’라는 물음을 두 번이나 던졌다. 활안 스님은 세상 사람들이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지도 절박하지도 않기 때문임을 일깨워주었다.
‘스님, 마음이 아픕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어요? 스님 어떻게 하면 원을 이룰 수 있어요?’라고 활안 스님 앞에 수없이 던지는 중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다.
“나라는 생각을 버려라. 아(我)가 공(空)해야 바른 공부를 할 수 있지. 나를 버리면 장사를 하든지 도를 닦든지 염불을 하든지 제불성현과 똑같이 밝은 지혜를 열 수 있어.”
궂은 날씨 탓인지 저녁이 되자 짙은 안개가 천자암을 감싸고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운다. 풍경소리에는 ‘오는 이 마다 한 마디씩 일러주건만 진실로 수행하는 자 몇이나 될 것이며, 깨달은 자 몇이나 될 런지’이런 물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활안 스님 약력
1945년 순창 순평사로 출가. 1953년 월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8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상원사, 청량선원, 칠불암, 범어사, 용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40안거 성만.
1977년부터 천자암 조실로 있으면서 동안거 하안거 때마다 용맹정진을 하고, 매년 백일동안 폐관정진 하는 등 선객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99년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으로 선출. 지금은 천자암에 주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