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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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받고 싶은가? 먼저 남을 공경하라
[선지식을 찾아서]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 철우 스님




파계사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가파른 길일수록 숨을 고르면서 느린 걸음으로 가야 하는 법. 느리게 걷다 보니 아카시아 나무며 이끼 낀 참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좀 더 걸음을 늦추니 낮게 엎드린 보랏빛 달개비 꽃이며 주홍빛 나리꽃이 보인다. 좀 더 귀를 기울여 보면 나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꽃잎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계절마다 들려주는 산의 울림은 다르다. 칠월의 산이 들려주는 소리엔 생명력이 가득하다.

동화사의 말사인 파계사(把溪寺)는 신라 애장왕 때 심지왕사가 창건했다, 파계사 인근에 아홉 갈래나 되는 물이 흘러내려가 땅의 지기(地氣)가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절 아래 연못을 파고 물줄기를 모았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계곡을 잡는다는 뜻이 담겨있건만 어떤 이는 계(戒)를 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사명(寺名)이 참으로 파격적이라 한다나. 하지만 파계사는 영산율원을 두고 있어 ‘계율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영산율원은 총림이 아닌 단위사찰로서는 조계종 최초의 율원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율사인 철우 스님과 마주 하니 무엇부터 여쭈어야 할지 갑자기 앞이 탁 막히는 느낌이다. 먼저 계율의 의미부터 여쭈었다.

“계율이란 행위, 습관, 도덕, 행동과 언어에 악을 짓지 않고 방지하는 계(戒)와 부처님들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과 여러 가지 잘못과 악을 억제하는 율(律)을 합한 말입니다. 부처님은 ‘살생하지 않아 자비심을 길러야 하고, 훔치지 않아 베품을 배워야 하고, 사음을 하지 않아 정결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진실해야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깨끗한 행으로 살아야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말씀했어요. 그리고 계율은 대중을 화합시키므로 꼭 지켜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철우 스님은 ‘계율을 지니면 성품이 강직해져서 융화가 되지 않고 편벽된 사람이 된다’는 시각이 없지 않아 있다면서 그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계를 가지는 것은 사람으로 해금 뉘우치는 잘못이 없게 하는데 뜻이 있고, 뉘우치는 잘못이 없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해금 즐거워하게 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지혜는 계에 의해 청정해지고 계는 지혜에 의해 청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철우 스님의 거처는 한글대장경을 비롯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른 책에 비해 두 배 정도 큰 책이 있기에 궁금해 여쭈었더니, <사분율장>이라 했다. <사분율장>은 계를 받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책으로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금서(禁書)라고 했다. 스님께서 몇 년에 걸쳐 <사분율장> 한글 현토번역본을 완역했는데, 이것은 전국의 율원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사분율장>을 번역한 것은 철우 스님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했다. 율원에서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학인들과 함께 <사분율장>을 간경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쿠시나라가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을 앞두고 아난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남을 등불로 삼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철우 스님은 이렇게 해석했다.


“유언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대한 진리에만 따르라는 마지막 계목이라 할 수 있어요. 계율의 폭은 넓어서 성품까지도 조복할 것을 요구하며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을 금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위가 일어날 때마다 부처님과 장로들이 그러한 것을 금지시키는 규정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발전해 대단위 계율이 된 것이란다. 철우스님은 ‘모든 계법 가운데 5계가 가장 기본이며 그 가운데서도 불살생을 계의 근본으로 삼는다’고 했다.

동진 출가한 동기를 여쭈었더니 “그 시절엔 내 뜻이 따로 있나요. 어른들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라고 답한다. 향봉 스님을 은사로 동진 출가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행자생활을 했다’면서 율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순전히 강원 도반인 성우 스님 덕분이라 했다.

“강원을 마치고 성우 스님이 해인율원으로 간다기에 나도 율원으로 간 것이지, 큰 뜻이 있어 간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철우 스님은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계율의 폭은 넓어서 성품까지도 조복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또 비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청정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철우 스님은 통도사 강원에서 공부할 때 산중의 어른이신 벽안 스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고 했다.

“벽안 스님은 학인들이 무서워하리만큼 엄격하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먼 길을 다녀오시면 빈손으로 그냥 넘기지 않는 ‘어른 사랑’을 보여주시곤 했어요. 한 번은 스님께서 학인들에게 연필 한 자루씩을 선물했는데, 연필에 ‘정신 차려, 벽안’이라고 새겨져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무섭기만 했던 분이었는데, 자상한 배려에 한편은 놀라고 한편은 가슴 뭉클했던 기억입니다. 스님은 사랑받고 공경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사랑하고 공경하라는 의미의 가르침을 연필에 새겨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공경하지 아니하면 박복해지고 공경 받지 못하면 마음에 그늘만 드리울 뿐이라고 말미에 덧붙였다.
성우 스님과 철우 스님은 제방선원에서 평생 동안 참선 수행하는 수좌들처럼 평생 동안 계율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율원을 만들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파계사에 영산율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계율공부를 위해서는 율원을 강원처럼 4년 과정으로 늘여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던 철우스님은 2005년에 대학원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계율연구원 ‘비니원’을 개원했다. “비니원(毘尼院)이란 율원이라는 뜻인데, 뜬금없이 영산율원에 비구니율원이 생겼다고 한때 소문이 돌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만큼 계율에는 등한시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했다. 계율에 관한 장서를 모아놓은 도서관 ‘비니장’을 만들어서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했다. 영산율원을 통해 해인사 전 율원장 혜능 스님, 통도사 율원장 덕문 스님, 송광사 도일스님 등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스님은 5계에 대해서는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면서 “불살생은 생명의 존엄성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우리가 보다 큰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 했다. 부처님은 살생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고 하셨다. 한 생명이 상하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이 상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할 터이다. 재가불자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은 가장 기본적으로 받는 계율이면서 이것처럼 지켜지지 않는 계율도 없다고 했다.

“술은 무려 36가지 잘못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혹독한 망신살이 항상 숨어 있어요. 술은 지혜와 좋은 뿌리를 없애고 법의 보배를 모두 없애니 큰 도끼와 같고 모든 잘못의 시초이며 모든 악의 근본이라 했어요. 제 정신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반야탕이니 곡차니 하는 별명으로 마시기도 하고, 신통이 자재한 고승의 흉내를 내어 무애행으로 여겨 불음주계를 지키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한다면서 부처님 앞에서 지키겠다고 한 맹세를 깨뜨리는 파계는 결코 자랑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계율은 부처님의 교육관입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정한 것이 계율인데,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꾸지람을 듣기 싫어하는 후손이 잘되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수행자의 위의에 맞지 않게 옷을 입거나 행동한다면 타인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겠지요? 계율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도 있을 수 없어요.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정법(正法)이 빨리 없어짐을 부처님은 염려하셨습니다. 원래 도(道)라고 하는 것은 ‘눈 위에 찍힌 사슴의 발자국’을 뜻한다고 해요. 사냥꾼이 발자국을 따라 사슴을 포획하듯이 구도자는 스승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해탈문에 들어서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닮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철우 스님은 ‘법은 바로 부처님의 유산’이라 했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가 열두 살 되던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와 “저에게 물려줄 유산을 주십시오”라고 요구를 했다.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라훌라의 손목을 이끌고 제자인 사리불에게 가셔서는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고 이르셨다. 부처님의 유산은 바로 ‘법’이었던 것이다. 이 법은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물려준 유산이란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불법(佛法)을 스스로 망치는 것이라면서 과연 유산대로 잘 살고 있는지 모두 반성해 볼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부처님은 ‘지혜, 계율, 도덕에 대해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지계(持戒) 제일’인 우바리 존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바리는 궁중에서 머리를 깎는 이발사였다. 이발사라는 직업은 인도의 사(四)계급 중 가장 천한 계급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고향에 돌아오시어 법을 설하자 석가족의 왕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출가했다. 왕궁에서 왕자들의 머리를 깎아주던 우바리는 천한 몸으로는 출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은 출가를 허락했다. 우바리가 출가한지 17일째 되는 날, 난타왕자는 정식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은 늘 하던 대로 출가한 순서대로 절을 받게 하시었다. 난타는 차례로 절을 하다가 맨 끝에 앉은 우바리 앞에 이르러서는 절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법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고 정진해 덕을 닦아 교만한 마음을 항복 받는 수행의 결과가 제일이다. 출가한 순서로 정해지나니 형으로 삼아서 존경하고 대접하도록 하라.”

그러나 난타는 선뜻 우바리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시 간곡하신 말씀으로 일렀다.

“온갖 더럽고 냄새나는 수백 수천의 냇물들도 마침내 바다로 모이며 일단 바다에 이르면 모두 한 맛인 짭짤한 바닷물이 되듯 누구나 교단에 들어오면 똑같은 사문일 뿐이다.”

난타는 이윽고 우바리에게 공손하게 절을 했다.
“부처님은 많은 귀족들의 반감을 샀지만 교단 안에서의 일체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출신에 관계없이 교단에서는 평등했고, 부처님 자신도 평등한 일원으로서 일체의 특권을 거부했습니다.”

철우 스님은 ‘계는 지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벌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참회(懺悔)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에 대해 용서와 관용으로 감싸주는 너그러움이 있다. 우선 참회라는 말의 뜻을 나누어 보면 스스로 범한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비는 것을 참(懺)이라 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처님, 보살님 어른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사과하는 일을 회(悔)라 한다. 철우 스님은 ‘잘못과 실수를 저질렀으나 그 수습하는 태도에 따라 크게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백 년 동안 때 묻은 옷이라도 하루 동안에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백 천겁동안에 지은 모든 악한 일도 불법의 힘으로 잘 수순해서 닦으면 일시에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스님께 행복의 법칙을 여쭈었더니 ‘경전에 행복의 법칙이 다 나와 있다’고 답했다.
“행복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쓸데없이 큰 욕망을 부리는 것을 경계하셨어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소욕지족(所欲知足)을 누리라는 것이지요. 방이 수십 개라도 내가 누워 잘 곳은 한 칸이요, 땅이 아무리 많아도 죽어 묻힐 곳은 반 평이면 됩니다. 내가 과연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란 불자로서 오계를 잘 지키고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느 시인은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영혼은 비로소 쉬게 되는데, 그때 행복이 찾아온다고 했다. 행복을 누릴 만큼 성숙해 있을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철우 스님은 한 마디라도 허투루이 내뱉지 않는다. 부처님의 육성을 바탕으로 해서 법문하고 경책하는 것이다. 오늘 스님의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육성을 오롯이 들을 수 있었어 좋았다.



철우 스님 약력

1959년 경북 청도 적천사에서 향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의정부 망월사에서 향봉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수지. 합천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부산 범어사승가대학(2회) 졸업. 해인총림 율원 졸업. 호경 강백으로부터 전강, 자운 율사로부터 전계. 조계종 행자교육원 습의도감, 계단위원회 위원, 단일계단 구족계 존중아사리, 법계위원회 시행위원, 파계사 영산 율원 율주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천천히 가는 것을 겁내지 마라> <욕심을 버리는 방법> 등이 있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 논설위원) |
2009-07-13 오전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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