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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님이다"
[선지식을 찾아서] 동국대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도업스님




경북 경주는 천년 고도(古都)이다. 석굴암, 불국사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처처에 널린 곳이 경주다. 지금도 땅을 파면 곳곳에서 문화재가 발굴돼 삽질하기가 두려울 정도라는 지역민의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신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려온 곳이다.

동국대는 조계종립 민족사학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시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에서 보이듯 만해 한용운, 박한영 스님 등 선지식들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켰다. 김법린ㆍ백성욱 박사는 총장으로 동국대의 발전을 이끈 지도자였다. 하지만 오늘의 동국대는?

해답을 구하기 위해 동국대 경주 캠퍼스를 찾았다. 경주와 동국대의 만남.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찾는 길은 이런 사실들만으로도 가슴 가득 설레게 했다.


경주시 석장동에 자리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도착했다. 캠퍼스 곳곳에 넘치는 젊음은 천년 고도의 숨결이 면면이 이어져 끊이지 않고 있음이 느껴졌다.

6월 2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백상관에서는 정각원장 도업 스님(불교학부 교수, 부산 화엄법계사 주지)의 퇴임강연회가 열렸다.

도업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로 스님은 25년간 후학들을 지도했다. 직접 사사받은 제자가 아니어도 화엄학에 관심을 둔 연구자라면 <화엄경사상 연구> 등 화엄과 관련한 스님의 저술과 논문을 접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화엄학 선지식 도업 스님의 퇴임기념 강연 시작을 즈음해 대중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경주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부산 범어사 주지 정여 스님, 서울 삼천사 주지 성운 스님, 동국대 보광 스님을 비롯해 손동진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장, 최규철 동국대 이사 등이 도업 스님의 퇴임강연회를 축하하려고 자리했다. 행사가 열린 백상관 컨벤션홀은 어느새 700여 사부대중으로 가득 찼다.

행사가 시작되고, 내빈의 인사말씀 화환증정 등이 있은 후 도업 스님이 단상에 올랐다. 스님의 첫마디가 궁금했다.

“경주캠퍼스 정각원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예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25년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수차례 정각원장을 역임했던 스님의 첫마디였다. 아마도 자리한 동국 구성원들에게 매주 화요일 예불 참석을 권하는 한마디, 건학이념을 바로 세우고, 불자로서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도업 스님의 일갈이리라.

스님은 “예불을 마칠 무렵 한 기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정년퇴임을 앞둔 소감을 묻더라”라며 말을 이었다.

“시원섭섭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엇이 시원하고 무엇이 섭섭하냐’고 반문하더군요. ‘시원한 것은 25년간 짜여진 교과일정에 따라 수업하고, 소임을 맡아 책임을 다하려 얽매였던 생활에서 벗어난 점이 시원하다. 섭섭한 것은 후학들과 함께 한 강의시간이 가장 즐거웠는데 그 시간이 끝났으니 섭섭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도업 스님의 강의시간은 딱딱하지 않았다. 지루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화엄학 강의나 경전강독 등 다수의 강좌가 있었지만 매 강좌마다 스님과 학생들은 생각난대로 느낀대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도업 스님은 “학교에서 25년, 승가에서 40여 년을 살다보니 운명이 있더라”라고 말했다.

출가 전 스님이 해인사를 찾았을 때 일이다. 용탑에서 해인사로 건너오는 외나무 다리가 있는데 도업 스님은 그곳에서 한 스님을 마주했다.

‘키 작은 스님’으로 기억된 그 스님에게 도업 스님은 “스님, 불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키 작은 스님’은 아무 답이 없었다. 도업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님 저도 출가할 수 있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키 작은 스님’이 답했다. “참 거룩한 말입니다.”


그 한마디에 도업 스님은 출가했다.
스님은 “불법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참 즐거웠다”라며 “학교에서 25년 있었던 것도 불법을 만난 인연 덕분, 절에서 신도님들 만난 것도 불법을 만난 인연 덕분”이라고 말했다.

운명이 있다 했는데 화엄학 대가 도업 스님은 어떤 인연으로 화엄학을 공부하게 됐을까?
1976년 스님이 일본 유학길에 올랐을 때다. 교토 불교대로 유학했는데 학교에서는 스님에게 연구계획서를 요구했다. 400자 원고지 6매 분량이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당시 뚜렷한 전공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떠났던 유학길이었죠.”

그때 도업 스님은 인환 스님(前 동국대 선학과 교수)을 만났다. 인환 스님이 동경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에 건너갈 즈음이었다.
“함께 인환 스님을 만난 무비 스님은 ‘불교사회복지학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전공인데 한발 늦었죠.”
막연했던 스님에게 인환 스님은 “한국 불교는 화엄불교입니다”라고 말했다. 도업 스님은 “화엄을…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고, 인환 스님은 “균여 스님 저술이 꽤 많이 남아있는데요”라고 답했다.

그 후 도업 스님은 균여 스님의 저술을 중심으로 화엄학 연구에 매진했다.
“화엄학을 공부하니 자연히 <화엄경>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화엄을 공부하니 세상이 정말 즐거운 겁니다. 가면 가는대로, 오면 오는 대로,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는 대로 좋았습니다.”
스님은 “선, 정토 등 불교의 여러 분야 가운데 화엄을 만난 것은 굉장한 행운이며 홍복”이라고 찬탄했다.

스님은 <화엄경>의 백미로 여래출현품을 손꼽았다.
“40ㆍ60ㆍ80권 <화엄경> 중에 부처님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텐데, 여래출현품 같습니다.”

도업 스님은 <화엄경> 여래출현품의 ‘널리 일체 중생을 돌아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처님의 지혜덕상을 갖췄건만 다만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但以妄想執着 而不證得)’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공덕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혹시나 마음속에 미운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고 놈’ 하고 벼르는 그런 놈이 있지 않습니까?”

스님은 “부처님은 모든 생명체가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공덕을 구족했지만, 조심할 것이 있다”며 “우리가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은 중생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0권 <화엄경>의 제1장 제1절 제1품이 무엇인고 하니, 세간정안품입니다. 참 재미있어요.
세간을 보는 눈에는 우리 같은 중생의 눈(染眼)과 부처의 눈(淨眼)이 있거든요.”

도업 스님은 “부처님이 진리를 깨닫고 깨달은 눈으로 보니 모든 사람들은 부처와 똑같은 지혜와 공덕이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주위에 골치 아프고 짜증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우리의 잘못된 망상, 업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화엄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면, 좋은 일은 좋고, 안좋은 일도 좋고 세상 처처가 안락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해야 화엄적 세계관을 갖고 마음 편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도업 스님은 “술을 잘 먹는 사람이 곁에 있어 짜증난다면, ‘술을 많이 먹는 것은 저 사람의 업이 그럴 뿐’이라고 여겨라. 저 사람의 본성자리는 부처님과 같이 청정무구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자타(自他)의 본성을 살피는 것을 성철 스님은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고 말했고, 서울 불광사에 계시던 광덕스님은 ‘불성생명’이라 표현했다”라며 “‘자기를 바로 보자’는 것은 부처의 눈으로 보자는 말이다. 부처의 눈으로 본다면 지혜와 공덕이 구족함이 바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도업 스님은 “자기(나)는 잡철이 아니라 순금”이라며 “혹시 화가 나거나 미운 마음이 생긴다면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잡철이 아니라 순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화엄경> 십지품에 ‘육상(六相)이 원융(圓融)하다’라고 했다.
스님은 “육상은 총상(總相)ㆍ별상(別相)과 동상(同相)ㆍ이상(異相), 성상(成相)ㆍ괴상(壞相)이다. 이 여섯 가지가 원융하다는 것은 원만하고 융통스럽다. 아주 조화스럽게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도업 스님은 “<화엄경>에서는 육상이라 했지만 내가 볼때는 만상이 원융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어찌 여섯 가지 모습 뿐이겠습니까? 만가지가 있어 만물이 그대로 조화스럽고 평화스러운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탐심이나 욕심을 일으켜서 자기 분수에 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부조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스님은 동국대를 예로 들었다.
“이름은 동국대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첫째 학생이 있습니다. 학생이 없는 동국대 생각할 수 없죠? 두 번째는 직원이 있습니다. 직원 선생님들이 안계시면 학교 운영이 안됩니다. 교수가 없다면, 학교가 안되겠죠? 또 재단이 있어야겠죠?”

도업 스님은 “동국대 입장에서 보면 학생ㆍ직원ㆍ교수ㆍ재단의 사상(四相)이 원융하다”라며 “이 네 구성원이 자기 직분만,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면 자연의 질서처럼 평화롭고 조화스럽게 굴러간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충실하다’는 것은 ‘~답게’를 말한다”며 “학생은 학생답고, 직원은 직원답고, 교수는 교수답고, 재단은 재단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인 도업 스님의 당부는 계속됐다.
“동국대는 100년 넘는 명문 사학입니다. 내가 동국대 처음 입학하던 40여년 전만해도 3~4대 명문 사학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많이 침체돼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스님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모든 것들은 자기의 분이 있다. 육상이 원융해야 하듯, 동국대는 네가지 구성원들이 원융해야 학교가 발전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도업 스님은 화엄의 ‘법계연기’를 빌어 설명했다.
“좁게 보면 나 혼자 사는 것 같지요? 내가 내 밥 먹고 산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법계연기’에서 보면 (부처님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세상 만물들은 서로서로 연관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10촌만 넘어도 남이라 생각하고, 이북 사람들을 원수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20대를 올라가면 21여 만명이 나와 피를 나눴고, 30대를 올라가면 21억 만명이 한핏줄”이라며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라고 말했다.

도업 스님은 “자기가 자기 삶을 산다는 것은 중생의 눈일 뿐”이라며 “깨달은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다. ‘산하대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한다”라고 당부했다.

“밖에 있는 푸른 나무 한 그루, 꽃 한송이가 모두 나와 한몸으로 관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이 썪으면 풀이 죽습니다. 풀이 죽으면 나무가 죽고, 작은 생명체들이 죽습니다. 결국엔 사람마저 죽습니다.”

스님은 “화엄 법계사상을 온전히 인식하면 환경문제는 물론 남북관계도 수월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체, 사람과 자연, 이념과 이상이 하나될 수 있는 이론은 단연 화엄사상”이라는 도업 스님의 설명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스님은 <화엄경> 사구게를 예로 자각(自覺)과 용심(用心)을 강조했다.
“만약 삼세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이 모두 다만 마음으로 지은 것을 알아야 한다(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스님은 수덕사에 주석하던 덕숭총림 2대방장 벽초 스님의 일화로 법문을 끝냈다.
“벽초 스님은 큰 스님으로 알려졌지만 법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중들이 억지로 법상에 모시면 하시는 말씀이 ‘불법(佛法)이란 심법(心法)인디, 심법이란 용심법(用心法)이여’가 전부였습니다. 부처님 법이 마음법이고, 마음법은 바로 마음 씀씀이에 달렸다는 법문이었지요.”

60권 <화엄경>을 줄줄 읊었던 화엄학자의 법문의 끝은 마음이었다. 25년 교수생활과 40여년 출가생활을 회고한 강연이 끝났다. 스님과 청중들은 강의 주제처럼 ‘산하대지와 한 몸’이 되고, ‘화자와 청자가 한 몸’이 돼있었다.

8월이면 도업 스님은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떠난다. 스님은 떠나도 스님의 가르침을 이을 또 다른 선지식이 출현하리라.






#도업 스님은
1944년 충남 공주 출생. 1969년 완규 선사를 은사로 해인사에 입산했다. 1972년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대 승가학과 1기로 입학했다. 1976년 일본 교토 불교대에 유학해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정각원장, 불교문화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現 화엄법계사 주지, 대각회ㆍ금정학원 이사. 8월말 정년퇴임 예정이다. 저서로는 <화엄경사상 연구> <불교사상의 이해> <산하대지가 내 몸이다> 등이 있으며, <일본 화엄 원류 제고> 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글=조동섭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6-08 오후 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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