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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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따르지 않는 깨달음은 허깨비 놀음”
[선지식을 찾아서] 종하 스님(서울 관음사 주지)




관악산 관음사 가는 길은 사당동에서 과천으로 이어지는 남태령 초입에서 우측으로 밀집된 주택가 골목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다. 방금 터진 목련꽃의 우윳빛 미소가 담장을 넘어 와 길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산길이 시작됐다. 길가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는 사람들이 건강을 다지고 나무들은 새 움을 틔우느라 뜨거운 숨을 내뿜고 있었다. 무더기무더기 붉은 진달래가 한껏 피어 있는 숲은 방금 주택가를 지나 왔다는 기억을 아득하게 했다. 선지식을 찾아 가는 길은 위치와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그렇게 봄날 아침을 감상하며 관음사를 오르는 동안 ‘사람 사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관음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키가 훤칠한 일주문을 지나 도량에 들어서면서 생각을 고쳤다. ‘도량 가까운 곳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구나’로.

황폐해진 관음사를 40여 년 동안 온갖 공력을 들여 이토록 청정한 도량으로 가꾼 주역은 종하(鍾夏) 스님이다. 절 마당에 이르자 몇 개의 현수막이 눈을 끌어 당겼다. 4월 17일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와 산사음악회’가 열리나 보다. 최근 서울의 봉은사와 조계사 법회에 초청되어 법문을 한 종하 스님은 “보시와 나눔의 삶이야말로 가장 불자다운 생활 방식”이라고 역설했다. 경로잔치와 산사음악회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역민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선물하려는 뜻일 게다.

또 하나의 현수막은 <금강경> 강좌 안내. 지나가는 종무원에게 물으니 매주 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금강경> 강좌에는 100여명의 불자들이 모인다고 했다. 적지 않은 수다.

“주지 스님께서 직적 강의 하시는데 그 정도 모이는 것은 당연하죠.”

종무원의 한 마디에 긴 세월 도량을 가꾸면서 스님과 신도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형성 했는지 짐작됐다. 명부전에 붙은 단정한 요사채에 깔끔한 객방이 있고 그곳에서 종하 스님을 뵈었다.




-요즘 서울의 큰 절에서 연거푸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법회 가 보신 소감이 있으신지요.

“글쎄요. 봉은사나 조계사나 다 청을 하기에 응했을 뿐입니다. 뭐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니 대중들 앞에서 요긴한 얘기를 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느낀 것은 있어요. 법회에 참석한 불자들의 연령이 너무 높다는 것 말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이 없는 법회는 불교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 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어린이나 청소년 법회가 이 절 저 절에서 왕성하게 열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불교가 젊어지지 않으면 어쩌란 겁니까? 포교를 열심히 하지 않은 과보가 무엇인지 다들 알면서...”
종하 스님은 포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약한 것을 가장 안타까운 일로 꼽았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전문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들에게 생활을 보장해 주면서 전문적으로 법회를 활성화 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수직과 전문가 그룹 등을 위한 포교 인프라의 부족도 지적하며 포교 현장의 인적자원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종단 전체가 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며 중앙종무기관의 업무 지향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다선 중앙종회의원이라는 기록(9선, 제4대~12대)을 갖고 계신데, 오늘날의 종단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종단의 난맥상을 보면서 나도 책임을 느낍니다. 정말 절실하게 느껴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지금 혁신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하게 알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큰 겁니다. 지금대로 가면 절망적이란 견해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종단의 중진과 원로들이 대부분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도덕과 청정성이 조계종 승단의 뿌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흔들리거든요. 근자에 승단이 세상을 향해 보여 준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은 어떻게든 부패와 부조리를 청산하려고 하는데, 승단은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합니다.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할 집단이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는 겁니다. 출가의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선거제도에서 기인하는 폐해들이 승단을 추락시키는데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 종하 스님의 지적이다. 대중공사의 전통을 살려 교구본사 주지나 총무원장 등은 추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대제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금의 폐해를 일소시킬 것이니 그게 훨씬 불교다운 제도라는 것이다. 물론 승단 구성원들이 세속적 욕망을 줄이고 출세간의 공심(空心)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종하 스님은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비판하는 스님은 사뭇 진지했다.




-생활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 패턴도 매우 다양해지는데 비해 불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이판과 사판은 둘이 아닙니다. 한 판입니다. 구분 하면 안 됩니다. 그걸 애써 구분하니까 사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얽히게 되고 권력이나 금전의 힘에 의지하게 됩니다. 심하면 출가 목적도 잃어버려요.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을 외면해버리는 경우도 다 그런 분별심에서 생기는 겁니다. 참된 이판 속에 사판이 자재하고, 제대로 된 사판이면 이판을 총섭 합니다. 사사무애(事事無碍)요 이사원융(理事圓融)이 되어야 합니다. 이판이다 사판이다 구별하는 것 자체가 비불교적입니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분별적 사고가 승단의 유연성을 마비시킵니다. ‘사’를 못하는 사람은 ‘이’에도 뒤떨어집니다. ‘이’를 이룬 사람이라고 ‘사’를 무시하고 살 수도 없고요. 이 둘을 둘이 아니게 원융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종단의 일도 그렇고 개인의 수행도 그렇습니다. 10.27 법난 이후 우리가 경험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당시 선방에서 정진하던 스님들이 중앙으로 올라와 종무행정을 맡았는데 대부분 실패 했거든요. 또 행정 사무만 보던 스님이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들어가면 한동안은 무지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한쪽이 안 된다는 것은 다른 한쪽도 안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판과 사판을 두 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궁극에서는 한 판이어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에 확철하면 ‘사’가 따르고 ‘사’에 확철하면 ‘이’가 따르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알면서 속아 주는 경우와 몰라서 속는 경우가 있다. 종하 스님은 알면서 속아 주는 것은 ‘자비’가 될 수 있지만, 모르고 속는 것은 ‘무명’에 갇힌 것이라고 했다. 속는 것은 같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천지현격이다. 이판과 사판도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이사(理事)의 어느 것이든 확철하지 않으면 속아도 속는 줄을 모르는 것이고 어느 것이든 확철하면 자비를 베풀어 속아주는 것이란 것. 그러니 이판과 사판을 둘로 나눌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확철하도록 정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자세야말로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존립하는 목적이고 길이 되어야 한다고 종하 스님은 거듭 강조했다.


-오늘날 승단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산중불교가 도시불교로 변하는 과정에 겪는 시행착오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계율문제는 말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 말 안 할 이유가 따로 있나요? 서로 자신 없으니까 서로 눈치 보면서 말을 안 하는 것이겠지요. 이판과 사판이 원융하고 자재하지 않으니까 계율문제도 날로 심각성을 더해 가는 겁니다. 나는 엄격한 상벌의 잣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니, 잣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잣대를 쓰지 않는 것이지요. 종단이 제대로 유지되고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세간보다 훨씬 엄격한 상벌의 잣대를 종단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세속에서도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 하듯이...”
승풍이 제대로 진작 되기 위해서는 상벌의 규정이 확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종하 스님의 지론. 입만 열면 ‘즉심시불(卽心是佛)’을 말하는 승단이 스스로 마음에서 부처의 종자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제불보살과 역대조사의 가르침은 허황한 구두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종하 스님은 또 종단이 정립(正立)되기 위해서는 자주성을 확고히 지켜야 한다며 기관의 예산 지원에만 눈독을 들이는 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든 지자체든 기관의 예산 지원을 받으면 어느 단체보다 투명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스님이 돈 때문에 공권력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는 일이 허다한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란 말이 있듯 불교의 본래정신도 지극히 자주적인데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 기관에 예속되는 길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살아가는 양태는 한 순간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불교를 보는 시각도 변하고 불교도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갈수록 변화의 템포는 더 빨라지는 듯합니다.

“변화의 수레바퀴는 과거에도 끝없이 굴러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굴러 갈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의 무상을 깨달으시고 그것을 가르치신 겁니다. 우리는 지금, 부처님이 56억만년 뒤에 미륵불이 출현 할 것을 말씀하신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수행도 교화도 달라져야 합니다. 말로 하는 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허깨비 놀음에 불과합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실천을 동반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기 성품을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면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만 있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산다면 그는 불자가 아닙니다. <육조단경>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부처는 자기 성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몸 밖에서 찾지 마라. 자기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 성품이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다. 자비는 관음이요 보시는 대세지라고 부른다’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으로 표현하는 것, 육바라밀의 첫 번째가 보시인 것도 나누고 베푸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깨달음의 모습인 겁니다. 이제 불교는 안으로 도덕성과 청정성을 회복하고 밖으로는 끝없이 베풀고 나누고 도와야 합니다. 모든 불자가 그대로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이 되어서...”


-행자시절 은사이신 고봉 스님에게 뺨을 많이 맞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많이 맞았어요. 허허. 그러나 그게 어디 미워서 때린 겁니까? 세상에서 짊어지고 온 상(相)들을 다 내려놓고 중노릇 잘 하라는 간절한 가르침이었지요. 당시는 동자(童子)들을 많이 길러 스님을 만들었어요. 스무 살이나 먹도록 세상맛을 보다가 들어 온 경우는 드물었고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했어요. 상이 차 있으니까요. 중이 되고 싶어서 은사스님께 두 번 찾아가서 퇴짜를 맞았고 세 번째 찾아가니 받아 주시더군요. 그리고 하심공부를 그렇게 시키신 겁니다. 계를 받던 날 은사스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지금까지 거울로 삼고 있어요. ‘개 오줌 싸고 가듯 하라. 중보고 중질 못한다. 법을 보아라’는 짧은 말씀이었는데, 이것은 곧 집착을 갖지 말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뜻으로 구도일념으로 정진하라는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새길수록 큰 가르침이지요. 해학적이기도 하고...”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찾아오고 그걸 용케 알아차린 나무들은 잔치를 열듯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워낸다. 관음사를 둘러싼 사방의 숲에도 그 정연한 질서로 한바탕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이사의 원융일 것이다.




종하 스님은


1958년 해인사 고봉스님 문하로 출가한 종하 스님은 범어사 강원을 나와 통도사 봉암사 등 선원에서 은사로부터 받은 ‘이뭐꼬’ 화두를 참구했다.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고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부원장, 개혁회의 부의장, 승가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중앙종회 제4대부터 12대까지 종회의원을 역임하며 제9대와 10대에서는 의장을 맡았다. 불교방송 이사장을 거쳐 현재 이사이며 관악산 관음사 주지다.
글=임연태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mian1@hanmail.net
2009-04-06 오전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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