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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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얻은 것이 어떻게 자기 것인가?”
[선지식을 찾아서] 혜거 스님(금강선원장)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스님은 불교공부를 하려면 한문은 필수라고 말하며 지금도 매일 새벽 2시간씩 중국어를 공부하신다.

여름 해는 길었다. 텅 빈 골목 한 켠에 쪼그리고 앉은 소년은 스쳐가듯 배운 오언율시와 칠언율시를 가락에 맞추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읊조려 보았다. 서당에 간 친구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형편이 어려워 서당을 줄곧 다닐 수 없었던 소년은 서당에 가는 날 보다 쉬는 날이 훨씬 많았다.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소년은 친구들로부터 글 동냥을 하다시피 해서 <소학>부터 해서 <논어>, <맹자>를 익혀나갔다. 굶주림으로 인한 허기보다는 배움에 대한 허기가 소년을 슬프게 했다.

어느 날 잿빛 승복을 입은 삼촌이 왔는데 참으로 멋져보였다. 그리고 삼촌은 학식이 높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린 소년의 눈에는 승복을 입으면 삼촌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것만 같았다. 배움의 열망으로 가득 찬 소년의 마음을 감지한 삼촌 김지견 박사는 소년을 탄허 스님에게 보냈다. 김지견 박사가 써준 추천장을 들고 속초 영은사로 찾아 간 열 다섯 살의 소년은 절에 발을 디딘 순간 환희심에 젖어버렸다. 이방 저 방에서 흘러나오는 글 읽는 소리에 ‘여기가 바로 내가 살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와락 들었던 것이다.

스님은 공부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사람은 방해가 되지만 배운것을 버리면 버린 자체만으로도 참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탄허 스님은 소년에게 점심공양하면서 천수경을 외라고 주었는데, 그날 저녁공양 전에 천수경을 다 외워 바쳤다. 소년의 뛰어난 한문 실력과 영특함을 한 눈에 알아 본 탄허 스님은 금방 온 신참을 ‘화엄경 3년 결사’에 동참할 것을 명했다. 당대 최고의 학자인 탄허 스님을 만난 소년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그 소년이 바로 지금의 혜거 스님이시다. 3년 동안의 행자 시절에 탄허 스님을 모시고 사교와 사집을 다 배웠고, 출가자가 익혀야 할 공부의 반을 해마쳤다. 행자 때 나무하고 채마밭 가꾸고 농사를 짓다보니 항상 시간이 부족하여 차분히 앉아 경전 외울 시간이 없었다. 돌아다니면서 경전을 외우다 보니 ‘수보리 행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혜거 스님은 “나는 스승복이 많은 사람”이라 한다. 스승과 제자의 연도 억겁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 혜거 스님은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을 질색하지만 입 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강백으로 꼽고 있다.

혜거 스님의 처소에 들어서자 묵향이 먼저 반긴다. 책상 위에 벼루와 붓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수행 삼아 금강경 열 폭 병풍을 800벌이나 써보았지만, 당신의 글씨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아 지금도 계속 연습중이라 한다.

알고보면 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이지 스스로 얻은 것은 없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을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움켜쥐고 있으면 스스로 손해다

혜거 스님께서 이곳 개포동에 금강선원을 개원한지도 이십년이 넘었다. 매년 만오천명 정도가 수강하고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사람이 27만 명이 된다고 하니, 강남 일대에 불교와 공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풍문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금강 선원에서는 한문원전으로 경전을 공부하는데 보통 칠백 명에서 팔백 명은 족히 모인다. 금강 선원에는 한자능력시험 2~3급 합격자는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한자 공부를 적극 장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부들입니다. 신앙생활이 사치성과 오락성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능을 한 가지씩 가지라 했지. 가령 일본어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고, 발전시킬 기능이 없는 사람들은 한문을 공부하라고 했어요. 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할머니나 엄마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자식과 손자들이 존경을 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경전을 원문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머리에 남지 않을뿐더러 깊은 맛을 몰라요. 더구나 우리는 한자문화권이기에 한문을 공부해 두면 여러 가지로 유용해요”

한문 실력을 갖춘 사람과 갖추지 않은 사람을 가르쳐 보면 이해의 폭이 넓고 좁은 것이 확연히 차이가 남을 알 수가 있단다. 한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에 그러다 보면 불교의 핵심이 파묻힐 때도 왕왕 있기에 불교공부를 하려면 한문은 필수란다.

스님은 남에게만 배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또한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역경을 하다보면 한자의 어조사 쓰임이 분명하지 않아 중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2004년에는 중국 하얼빈으로 반년동안 중국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지금도 매일 새벽 2시간씩 학원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신다. 중국어를 읽고 쓰는 데는 별문제가 없지만 사람마다 다른 억양과 발음을 듣는데 어려움을 느끼기에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단다.

“저는 대충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아요. 단 한 가지를 하더라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금강선원에 오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 취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지.”

혜거 스님은 금강선원에서 매주 일, 월, 수, 금요일마다 경전강의와 참선지도를 하고 있으며, 불교TV와 서울불교전문강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혜거 스님의 강의가 인기 있는 것은 경전을 일반인도 알아들을 정도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참선을 하되 경전과 같이 하며 경전공부로 기초를 다진 연후에 참선문에 들라고 당부하신다.

혜거 스님은 교학을 공부하여 경전공부가 깊어진 후에 64년 김제 흥복사 선방에서 처음으로 결제를 했다. 화두를 들면 번뇌망상이 치성했지만 선공부 또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했다. 금강선원에서는 선과 교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고 있다. 선을 하는 사람이 교를 배우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여쭈었다.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부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사람은 방해가 되지만 배운 것을 버리면 버린 자체가 참선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경전을 통해서 공부한 개념, 관념, 지식 등을 진짜 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공부이지요. 가부좌 틀고 앉아서 뭐 하려고... 사람들은 조사선을 중국선이라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을 보면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문답을 나누는데 그것이 바로 조사선의 가풍입니다. 선재가 찾아가 묻고 답하는 것이 바로 선문답이며, <화엄경>의 입법계품 자체가 선의 진면목입니다.”

머리에 각인된 것을 어떻게 버리느냐고 했더니, 부처님 가르침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저절로 버려진다고 한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이자 왕족 출신이었기에 참으로 오만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비관을 통하여 그 오만함을 버릴 수 있었다. 오만함을 버리고 탁발을 나갔더니 누구보다도 탁발이 쉬웠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다. 내가 없으면 버릴 것조차도 없다고 한다.

“요즈음 지적소유권이니 해서 자신의 지식을 철저히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이지 자기 것이 아녀.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을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움켜쥐고 있으면 그것은 자신이 손해여. 그것을 빨리빨리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만이 자신에게 발전을 가져와요.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꾸 나, 내 것을 앞세워서는 안되지.”

혜거 스님이 운전을 한지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스님이 남의 차를 들이받아 본 일은 없는데 다른 차가 와서 스님의 차를 들이받은 일이 3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혜거 스님은 ‘내 차가 당신 차 앞에 있어서 사고가 났으니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스님의 차를 들이받은 그 차의 수리비를 다 지불해주었다. 스님은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무아를 실천하시는 것이다. 자비보살로 통하는 전설 같은 지월 스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지월 스님의 뺨을 때리자 그 사람의 손을 감싸면서 얼마나 아팠겠냐고 위로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참선은 이 세상에서 지식으로도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풀어야 할 사무친 의문을 어느 곳에서도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란다. 세상에서 배울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참선을 통해서 배우고 해결하려 하겠는가고 반문하신다. 참선은 실제로 부딪쳤을 때 아상(我相) 없이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그때 공부가 깊어지는 것이다.

“원망심을 품은 사람이 아무리 원망을 하지 않으려 해도 원망은 자꾸 가지를 치고 끊임없이 나와요. 상대에 대한 원망심이 스스로 없어졌을 때 그 생각이 다시 안 일어나게 되요.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상대에 의해 미움과 원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부 내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참선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내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히 솟구쳐야 해요. 간절한 마음이 솟구쳤을 때는 참선 방법을 따로 누구 에게 물을 것이 없고 스스로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참선을 하되 반드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워야 해요.”

스님은 경전공부로 기초를 다진 연후에 참선문에 들라고 당부하신다.
“어렸을 때 먹어야 할 게 있고 어른이 먹어야 할 게 있습니다. 초심자가 참선문부터 들어가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녹용을 먹이는 것 같은 우를 범할 수도 있지요. 경전 말씀을 통해 발심을 견고하게 하고나서 참선 수행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전을 하나도 공부하지 않고 참선만 하면 진전이 없단다. 참선을 해서 한 경지를 얻었을 때 그 경지에서 나온 말이 부처님 말씀과 똑같아야지, 부처님 경지는 얻었지만 그 말이 부처님 말씀과 다르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란다. 그리고 참선을 하되 경전과 같이 할 것을 당부했다.

“탄허 스님의 지도방침이 공양주든 행자든 공부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양주가 화엄경 공부를 하는 바람에 탄허 스님을 비롯한 전 대중이 3년간 점심공양은 찬밥을 먹어야 했지요. 나중에는 부목까지도 공부를 하는 바람에 영은사 주지 스님이 나무하고 등짐 나르고 다했어요. 알고 보면 그때 주지 스님도 보살인거여. 탄허 스님은 저녁 9시만 되면 방문객이 있든 없든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서는 새벽1시든 2시든 늘 첫잠이 깨면 일어나서 정진하셨어요. 공부를 하려면 먼저 몸을 조복받아야 해요. 몸을 조복받는다는 것은 오욕을 다스린다는 것인데, 이것 절대 쉽지 않아요.”

중생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몸이 해서 안 될 일을 마음이 하고자 하며, 마음으로는 하지 않아야 함을 알지만 또 몸이 자제되지 않으면 이성과 감성의 갈등이 일어나게 된단다. 만약에 사람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한결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일관된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 또한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혜거 스님은 지금 우리나라는 지식이 포화상태이기에 지식에 지식을 더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지식을 하나씩 버려 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제는 지식을 인격화해야 할 때입니다. 인격화의 첫걸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다 없애는 것입니다. 경전 하나하나를 인격화하는 것이지요. 지식을 인격화하는데 불교가 또 불자들이가 앞장서야 합니다.”
혜거 스님은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면서 우선적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우리의 전통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살려내야 하는데 불교가 앞장서야 합니다. 둘째는 각 기업체마다 불자회를 만들어서 활성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불자회가 잘 되어 있는 곳은 노사분쟁이 일어나지도 않아요. 불교 신도는 종자가 달라서 양보를 진짜 잘 합니다. 육십 년대 서울 세검정에 수십 채의 절이 기독교인에 의해 불태워졌을 때도 불자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보복을 하지 않았어요. 이것만 보아도 불교 단체가 얼마나 나라에 안정을 주고 있는지 국가가 알아야 해요. 셋째는 참선을 전 국민에게 보급해야 합니다. 참선은 세상 살아가는 사람의 양식이기에 사람이면 무조건 참선을 시켜야 합니다. 자꾸 도(道) 통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몸과 마음을 극복하는 순간 도(道)는 열리게 돼있어요. 도란 사람이 가는 길이여. 내가 나를 극복하고 나면 그 길이 저절로 보이는데 자꾸 허깨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답답해요.”

혜거 스님은 대만의 ‘자광사’라는 절은 병원을 열어 극빈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는가하면 세계 60개국에 학교를 세워주는 등 국경을 초월하여 복지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이 대만이 유엔에서 쫓겨났지만 세계에서 고립되지 않는 그 이유라 한다. 우리 불자들도 “자신의 향상된 기운을 나라에 쏟아야만 나라가 발전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후손들이 잘 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소아(小我)로 살지 말고 대아(大我)로 살라는 말씀 참으로 귀하고도 귀하다. 곧은 것을 휘어서 다시 구부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소아(小我)로 살지 말고 대아(大我)로 살라는 말씀 참으로 귀하고도 귀하다. 곧은 것을 휘어서 다시 구부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혜거 스님은 앞으로 불교 전통 관혼상제부흥 불자회 활성화와 참선의 대중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혜거스님 약력

1959년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1년 월정사에서 범룡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 1963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 탄허 스님 회상에서 사교와 사집을 수료하였으며, 영은사에서 <화엄경> 3년 결사에 동참. 78년~82년 탄허 스님의 역경을 보조. 1992년 한암대종사문집편찬위원장을 역임. 1988년 금강선원을 개원하여 경전강의와 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참나>, <혜거 스님의 금강경 강의>, <15분 공부 집중법>, <가시가 꽃이 되다> 등 다수 있다.
문윤정(수필가ㆍ본지 논설위원) |
2009-03-20 오후 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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