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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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썩듯 마음도 안 닦으면 오염”
선지식을 찾아서-정관 스님(영주암 회주)



정관 스님은 86년 대한불교 어린이지도자연합회장 94년 사단법인 ‘불국토’ 이사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역임 제18회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고 쌍계사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다.


“허공 끝이 어디인가?”
“허공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습니다.”
“서울시는 어디로 누워있나요?”
“서울시도 허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서울시가 춤을 추면 하루 몇 번 춤을 춥니까?”
“내 마음에 따라 춤을 춥니다.”

정관 스님께 법문을 청했더니 대뜸 선문(禪問)을 던지신다. 마음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날아온 물음이기에 떠오르는 대로 답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화두선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직관입니다. 논리적인 것은 고정된 것이며 사구(死句)입니다. 화두는 직관이 답이 되어야 활구(活句)가 됩니다.”



스님이 따라주시는 구기자차를 한잔 마시고 나니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망미동 배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영주암은 정관 스님께서 혼자 힘으로 일구어 온 사찰이다. 배산 자락을 깎고 주춧돌을 놓고 기와를 이기고 그렇게 한 가지씩 이루어 온 것이기에 눈가는데 마다 세월의 더께보다는 열정과 정성이 배어 있다. 정관 스님은 참선공부를 원하는 불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30년 전 부터 시민선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선원을 거쳐 간 사람은 200여명이 되고 지금은 사십여 명 정도가 토요일마다 화두참선을 하고 있다. 정관 스님은 <선문촬요> <육조단경>등 옛 선사들이 참선 공부의 지침으로 삼았던 글들을 강의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독거유희락(獨居遊戱樂) 누리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스님의 처소에 ‘본래지당(本來知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요?”



“우리 마음은 본래지(本來知) ? 습성지(習性知) 두 가지입니다. 본래지의 마음은 대자연의 마음이요 천연의 마음이라면, 습성지의 마음은 세세생생 본인의 습관이 쌓여서 만들어진 마음입니다. 본래지는 천지(天地)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시방법계 두두물물 산하대지 어디에도 꽉 차 있는 신령한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은 다겁생으로 익혀 온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탐진치, 거짓말, 양설(兩舌), 악구(惡口), 시기질투, 어리석음, 명예욕이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인연 이전 본래지는 식(識)도 아니고 습(習)도 아니며 업(業)도 아니며 텅빈 적적(寂寂)인 것이며, 이를 가리켜 청정법신이라 한단다. 본래지가 차가운 연을 만나면 차갑다는 반응을 하고, 따듯한 연을 만나면 따듯하다는 반응을 하게 된다. 이처럼 본래지가 연(緣)을 만나 반응하게 되면 식(識)이 되고 식이 모이면 습(習)이 되고 습이 쌓이고 쌓이면 중업(重業)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지에서 출발해서 본래지로 돌아와야 합니다. 습성지의 마음을 벗어나고자하면 분발하고 대발심하여 수행해야 합니다. 자기 수행과 성찰은 자기 제도입니다. 샘의 물이 아무리 좋다 해도 늘 퍼 쓰는 데에서 다음의 좋은 물이 생산되는 것이지 퍼 쓰지 않고 고인 물 그대로 두면 좋은 새물이 될 수 없어요.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닦지 않으면 오염되고 노쇠해지고 탐진치에만 빠져드는 병든 마음이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자기의 마음을 퍼 쓸 수 있는 수련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참선이고 염불이지요.”

정관 스님은 마음공부 하는 데는 화두선(話頭禪)과 송화두(誦話頭) 이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스님은 염불을 송화두라고 칭한다.

“자기 인식 밖의 의문을 밖으로 던져 놓은 것을 화두라 하잖아요. 낚시하는 사람이 낚싯대를 강에 던져 놓으면 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려들듯이 화두 공부하는 사람들은 화두의문을 밖으로 던져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지식과 인식의 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선(禪)의 참뜻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지어놓은 알음알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범부들의 삶이지요. 화두공부는 화두의문에 착(着)이 되어야 하고, 화두의심이 깨달아진다면 대자유를 얻는 것이지요. 간화선이 잘 안되는 사람은 우선 송화두로서 발심해야 합니다. 송화두라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지극한 신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송화두 공덕이 결국은 간화화두(看話話頭), 의정화두(疑情話頭)로 익어지고 발전이 있어요. 의정 없는 화두보다 오히려 처음부터 송화두로 신심을 다하는 것이 자기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나도 처음에는 송화두로 시작하여 자연히 의정화두로 발전했지. 화두선이든 송화두선이든 간절해야 하고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정관 스님은 출가사문은 출가하는 그 시간 그날부터 뼈에 사무치는 간절한 신심이 자기 집이고 자기 절이라 했다. 구도자는 물러서지 않는 지극한 신심이 중요한 것이지, 깨달음은 그 다음의 일이란다.

정관 스님은 졸음을 쫓기 위해 서서 관세음보살 주력을 일심으로 했다. 염주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주력을 하다 보니 염주 줄이 자꾸 끊어져 나중엔 철사로 바꾸었지만 그것마저 끊어질 정도였다. 범어사 원효암에서 일주일 단식기도를 하며 주력을 하던 어느 순간 ‘관세음보살 하는 이 놈이 무언가’하는 의심이 올라왔고 스님은 동산 스님께 달려가 여쭈었다. “그대로 하면 돼.” 은사스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공부 힘을 얻었다.

“송화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자기의 내면성이 항상 밝고 깨어있지 않겠느냐”면서 활짝 웃으신다.

정관 스님은 세수 팔십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하루에 9시간씩 목탁 치면서 ‘관세음보살’ 송화두를 하신다. 주력으로 하루를 열고 주력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과를 수십 년 넘게 이어온 것이다. 젊은 스님들도 사분 정근이 힘들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하여 여쭈었다.

“수행은 마음 에너지로 하는 것이지 육신 에너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음 생까지 이어지는 불퇴보리심이 결국 도(道)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믿는 마음은 한계가 없어요.”

계곡에 그저 흘러가는 냇물을 그대로 둔다면
억만 겁이 가도 저수지가 될 수 없듯이
우리들 마음 에너지도 육신 요구대로
생각 없이 쾌락 쪽으로 흘려보낸다면
남는 것은 늙음의 슬픔과 허무뿐

하지만 마음 에너지도 모으면 무형의 금싸라기가 된다네
염파(念波)도 금싸라기라네.



“화두 공부의 낙을 법열(法悅)이라고도 하잖아요. 법열은 어떤 물질을 바탕으로 하여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분발하여 정진한 자기제도의 결과입니다. 법열의 즐거움은 조건부도 시한부도 아닌 것이며 다음 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낙(樂)이지. 그런데 우리의 육신이 잠깐이듯이 세속의 낙은 조건부이고 시한부입니다. 좀 깊이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들 앞에 백 년 전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앞으로 백 년 후가 되면 현재 우리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만나볼 수 없을 것이니,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육신은 뜬 구름 같고 아침이슬 같고 꿈과 같이 허망하고 그림자같이 잠깐입니다.”

정관 스님 처소에는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요즈음 어느 때보다 하소연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부귀를 한 몸에 누리는 사람도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그날 벌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힘들다고 하소연하니 행복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단다.
“사람들 육신의 골절은 3백60골이나 되는데, 3백60 마디마다 근심 걱정이 사무치지 않은 골절이 없을 것이며, 번뇌 망상이 사무치지 않은 골절이 없을 것입니다. 3백60골절 마다 사무쳐 있는 근심과 번뇌망상을 깨끗이 씻어내는 약은 수행정진 밖에 없어요. 자기 수행이 결국은 자신을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지요.”

정관 스님께서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 수행이다. 스님은 평생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살아오셨기에, 또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해 무량한 법열을 느껴보았기에 수행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정관 스님은 송화두 외에도 철저한 자기 관리를 위한 스님만의 방편이 하나 더 있다. 매일 불(佛)자를 열 번 쓰는 것이다. 벌써 30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일과다. 그만큼 스님은 깨어있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정관 스님은 남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또 명예를 한 번 높여보겠다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속된 것이라 여긴다. 어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대로 진실 된 공부자가 되겠다’는 신심으로 시작하여 공부를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현재 하고 있는 것이 진실로 자기 것이지, 노력 끝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진실로 수행 정진하여 내면이 항상 밝고 깨어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정관 스님은 스물한 살 때 범어사로 출가하여 동산 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은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시심마화두를 놓지 않고 지금까지 하루 9시간 넘게 정진하고 있다. 정관 스님의 정진수행은 송화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현보살의 행원품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정관 스님은 어린이 포교 조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대한불교 어린이지도자연합회’를 창설하여 2세 교육과 포교에 열정을 쏟았다. 또 복지 재단 ‘불국토’를 설립하여 개금복지관, 두송복지관, 몰운대복지관 등을 운영하며 사회복지사업에도 헌신했다. 영주암의 상락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무의탁 노인 백여 명을 모시고 있다. “우리는 몸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베풀어야 합니다. 베푸는 공덕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작복(作福) 없이 복을 바래서는 안되요. 자기 제도를 위한 공부도 작복이 먼저입니다.” 씨는 뿌리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라는 경책이다. 정관 스님은 중생들이 겪는 고난과 슬픔에 대해 진실로 마음 아파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염불공덕이 사회로 중생에게로 회향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

“요즈음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죽하면 그랬으랴 싶어 연민의 마음 가득합니다, 하지만 자살행위는 생각이 어리석어서 그래요. 내가 이 세상에 있음으로 해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지요. 마음은 내가 있기 전부터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있으므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살하겠지만 육신은 죽었지만 결코 마음은 죽지 않아요. 마음은 죽고 싶다고 해서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끝없는 윤회입니다. 고통의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절대로 자살하지 않아야지. 자살 한다고 해서 고통이 끝날 것 같지만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야. ‘나’라는 주인공은 역시 마음이지 다른 법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국민소득 4만불을 약속하지만 외형적으로 커진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지만 결코 물질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서, 지금 국민소득 2만불이나 되는데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느냐고 물으신다. 외적인 복지가 충족되었다면 내면세계의 복지도 돌아보아야 한단다.

“인생에 실패는 없어요. 설령 실패했다고 해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요즈음 실업자는 많아도 3D업종에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직분에 대한 자긍심이 너무 없어요.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하여 선진국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직분에 대한 긍지가 있어요. 생각이 선진국이 되어야지 물질적으로 선진국이 된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 아니야.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마들은 자식이 판검사, 의사, 장군이 되기를 바래요. 그러니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이 듭니까? 구두닦이를 하더라도 직분에 긍지만 있으면 기죽을 이유가 없어요. 자신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기가 죽어요? 남이 무시하더라도 자신스스로가 무시하지 않으면 무시당하지 않아요. 불교는 당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족 속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맛으로 사는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과시적인 삶에 불과한 것, 진정성이 없다고 한다. 정관 스님은 “마음이 건강하면 못할 것이 없고 안 될 것이 없고 겁날 것이 없다”면서 세세생생 이 말을 전할 것이라 했다.

본래지당을 나서는데 스님의 한 말씀에 코뚜레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야생마도 길들이는데 자기 마음 자기가 왜 잡지 못하는가?”


약력
1954년 범어사로 출가하여 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57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 수지.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수료. 범어사 선원에서 14안거 성만했고 이때 깨달음을 얻었다. 86년 대한불교 어린이지도자연합회장, 94년 사단법인 ‘불국토’ 이사장 역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역임. 제 18회(2006년) 조계종 포교대상 수상. 쌍계사, 범어사 주지 역임. 지금은 영주암에 주석. 저서로는 <죽음이 없는 선의 길> <인도성지참배> <하늘같은 자유> <간화선의 길> 외 다수.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 논설위원) |
2009-02-23 오전 11:10:00
 
한마디
그러네요 그러네요...본래지 따로 있고 습성지 따로 있는 게 아닌 데...
(2009-02-25 오후 8: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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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지....? 본래지와 습성지는 따로 있는게 아니고 습성지가 본래질르 잃으면 따로 있는 것같다. 만약에 습성지가 따로 인ㅆ다고하면 우리는 닥을 수가없을 것이다. 습성지는 본래지를 만나지 마자 사라져버린다.습성지는 본래있는 것이아니다. 중생이 헛것을 붙들고있는데서 생긴다. 본래지와 습성질르 있는 것처럼 나누는 것은 본래지의 성질을 잘 모르는 이론이라 하겠다.그러나 스님의 원력앞에 공경의 예를 표합니다.
(2009-02-25 오전 8: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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