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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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마음 알고 법 설해야 깨달아”
선지식 _ 일오 스님(태안사 선원장)


1965년 백운산으로 입산해 월인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40년 넘게 제방선원에서 수행정진하고 전남 부안 월명암 선원장 역임했다 지금은 곡성 태안사 선원장이다.


동리산 태안사로 가는 숲길은 적막하였다. 포장되지 않은 숲길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낮은 물소리는 동리산의 얕은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인 듯 푸른 이끼를 이고 있는 정심교(情心橋), 반야교(般若橋), 해탈교(解脫橋)를 지나면 마음은 알 수 없는 고요함으로 가득 찬다. 세 개의 다리를 건너 능파각(凌波閣)에 다다르면 ‘이 곳을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 버리고 불계에 입문하라’는 글귀와 마주하게 된다. 누각이자 다리인 능파각은 보기 드문 건축 양식이라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능파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기에 그 곳에서 깊은 심호흡을 하게 된다. ‘능파(凌波)’란 미련도 욕심도 없이 가볍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를 뜻한다. 해탈교에서 미처 버리지 못한 탐진치가 있다면 능파각에 내려놓고 가볍게 피안(彼岸)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의미일 듯 싶다.

태안사는 우리나라 선종이 처음 열린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이며, 적인선사 혜철 스님이 창건하였다. 혜철 스님은 당나라로 건너가 서른 해 가량 그곳에서 공부하였고, 혜능 선사의 법을 이은 지장 선사로부터 심인(心印)을 이어 받았다. 신라로 돌아와서는 태안사에 동리산문을 열고 임제 선풍을 일으켰다. 조선 시대를 거쳐 근대까지 혜철 스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법등을 밝혀왔으나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당우가 불타버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청화 큰스님께서 새롭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

1200년 동안 이어져 온 태안사 법등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지켜내고 있는 일오 스님은 40년 넘게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한 선사이면서도 초기경전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분이다. ‘교외별전 불립문자’라 해서 경전 공부를 도외시하는 선가의 풍토에서 어떻게 경을 가까이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출가하여 2년 넘게 화두를 들었어요. 은사 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을 배운 것이 전부였는데, 이것만 알고 수행해 나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화두참선을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참선해서 깨치면 그만이니 글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경전 공부를 게을리 한 탓이지요. 부처님 말씀을 좀더 깊이 알고 싶어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아함경’ 한 질을 구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경전을 읽어나가면서 너무 감동해서 수건을 옆에 두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읽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오롯합니다.”

일오 스님은 내가 없음을 바로 알고 보는 것이 정견이다 청정한 마음쓰기 위해 정진해야한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신 후 ‘내가 증득한 것을 지금 설해야 할 필요가 없다. 탐욕과 성냄에 패배한 자들은 이 법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 탐욕에 물들고 암흑에 덮여 있는 자들은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범천 사항파티는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법을 설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자는 타락하지만 설하면 깨닫는 자도 있을 것이다”라면서 부처님께 권청하였다. 일오 스님은 특히 ‘범권청설’ 대목에서 부처님께서 만약 법문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런 도리를 어찌 알겠는가 싶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무아, 연기만 제대로 이해하면 초기 경전과 대승경전과 선어록이 딱 들어맞음을 알 수 있어요. 초기 경전과 대승 경전 그리고 선어록이 표현만 다를 뿐 그 의미는 같습니다. 조사어록 또한 부처님 가르침의 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초기경전을 꼭 보라고 권합니다.”

일오 스님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성제, 팔정도, 12연기라고 했다.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를 가리키는데, 고(苦)란 생노병사를 비롯하여 세상의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생노병사 속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끝없는 고통 속에 있기에, 부처님은 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출가수행을 하였다. 고의 원인을 말한 것이 집(集)인데, 고의 발생 원인은 갈애(渴愛)로 인한 집착이다. 멸(滅)은 고의 소멸을 말하는데 번뇌의 근원인 집착과 갈애를 여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고를 멸하는 방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하였다. 팔정도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明)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을 말한다. 초기경전에서는 수행의 덕목을 팔정도로 요약했다면 대승경전에서는 육바라밀이라 했다.

“팔정도의 첫째 덕목이 정견인데,‘내’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보는 것이 정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영혼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상주론(常住論)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단멸론(斷滅論)을 모두 부정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존재에 관한 가르침을 펴신 것이 무아연기(無我緣起)입니다. 연기의 근본은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두 극단에서 벗어나야 만이 ‘나’라는 존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무아(無我)라고 했는데 대승경전에서는 진아(眞我) 또는 ‘주인공’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승경전의 ‘진아’란 ‘깨어있는 순수 의식 다시 말하면 분별을 여윈 청정심’을 가리키기에 부처님 당시 인도의 사상가들이 말하는 아트만(?tman 영혼)과는 다른 것이다. 불교가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교리 중 하나는 무아 곧 자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무아인데 무슨 윤회가 있으며 ‘나는 누구인지’ 탐구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아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태어났다고 하지만 조건과 인연에 의해서 잠시 생긴 것입니다. 우리의 출생을 태어난 것으로 보지 않으니 불생(不生)입니다. 물에서 물거품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죽는 것 또한 없으니 불멸입니다. 이처럼 나 자체가 조건 따라 인연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것이니 불생불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나‘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여기에 집착하여 욕망을 성취하는 것을 생의 전부로 알고 있습니다. 욕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가지가지 업을 쌓아서 끝없는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볼때는 봄뿐이요 들을 때는 들음뿐인것이 사띠수행법이라며 <육조단경>의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니 다만 그 마음만 잘 쓰면 곧 성불한다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불가에서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업(業), 업보(業報)라는 말일 것이다. 일오 스님은 “업보라고 하지만 업이 무슨 보물처럼 창고에 쌓여 있는 것도 아니고 업 또한 실체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공한 것인데 업이 어디 있겠는가? 대승에서는 본래 부처라고 하여 중생도 부처도 없다고 하는데 선악을 따질 업은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보란다.

“나도 공하고 업도 공한 것으로 보고 닦아 들어가야 업이 소멸됩니다. 만약 업이 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업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나’라는 것은 끝없이 변해가고 있기에 그야말로 ‘찰나생 찰나멸(刹那生 刹那滅)인 것이다.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부처님은 반복해서 가르쳤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찰나생 찰나멸이란 강물은 찰나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지만, 강물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밤새도록 타고 있는 등불이 있다면 초저녁에 타는 불과 밤중에 타는 불과 새벽에 타는 불은 같은 불인가 아닌가? 앞의 불꽃은 사라지고 뒤의 불꽃이 타고 있으니 똑같은 것이 아니면서 다른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중생의 분별심에 의해서 살고 있기에 있는 그대로 보아내지를 못한다. 먹을 때는 먹기만 하고, 걸을 때는 걷기만 하고 볼 때는 보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분별망상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익힌 습 때문에 분별심을 쉽게 버리지 못하기에 수행이 필요하단다. 일오 스님은 순간순간 마음을 관찰하고 챙기는 사띠(Sati,알아차림)수행을 강조하였다. 용광로에서 금을 뽑아내듯 혹독하게 집중적으로 수행하면 도를 이룰 수 있단다.

일오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들려주셨다.
부처님 당시 ‘바이아’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 조난을 당하여 어느 마을에 이르렀다. 바이아는 그 마을에 자리를 잡고 걸식을 하였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거지라고 생각하였지만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바이아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떠돌았다. 급기야는 바이아를 두고 아라한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진짜 아라한과를 얻은 어느 수행자가 그를 만나러왔다. 수행자는 아라한이 아니면서 아라한 행세를 하고 있는 바이아를 꾸짖었고, 그제서야 바이아는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바이아는 부처님 이야기를 듣고서는 신심이 솟아났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삼일주야(晝夜)를 걸어서 도착하였다. 아침에 대중들과 함께 걸식 나가시는 부처님을 만나 뵙고 간절히 가르침을 구했다.

“바이아, 네가 사물을 볼 때는 보는 것에 집중하라. 소리를 들을 때 듣는 그 마음에 집중하라. 냄새를 맡을 때는 냄새 맡는 그것에만 집중하라. 단지 그것이 마음의 대상임을 알아서 분별하거나 집착하지 마라.”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고 바이아는 그 자리에서 깨쳐 아라한과를 얻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이 언제 그렇게 수행을 하였는지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에 따라서 깨달음은 찰나이다. 깨달음하고 상관없는 백 마디 게송을 듣는 것보다 한 마디 게송을 듣고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일오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볼 때는 봄뿐이요, 들을 때는 들음뿐이요’ 이것이 사띠 수행법”이라면서 육조단경의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니 다만 그 마음만 잘 쓰면 곧 성불한다(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분별심이 붙지 않는 그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닦을 필요도 없단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 그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화두 참선 외에도 방편으로 염불ㆍ주력ㆍ기도 등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 한 가지를 정해서 열심히 하다보면 그 경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집착을 여위게 되겠지요. 마음이란 것도 연기에 의한 것이지 실체가 없습니다. 마음이란 것도 불꽃과 강물처럼 흐름에 지나지 않아요. 전부 다 조건에 의해서 순간순간 이루어진 것이고, 흐름의 과정으로 한 순간에 있습니다.”

40년 넘게 선방에서 화두참선을 하셨기에 어떻게 하면 화두를 잘 참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순수한 의심이라야 올바른 화두참구를 할 수 있어요. 화두에 큰 의심을 일으켜 나아갈 때는 알음알이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언설이 끊어져야 화두입니다. 그래서 ‘이 뭣고’입니다. 그러나 화두를 참구할 때는 알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깨달으려는 마음도 내지 않아야 합니다. 화두를 챙긴다는 것은 따로 찾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버림입니다. 과거ㆍ현재ㆍ미래ㆍ시비ㆍ선악 일체를 화두 하나로 녹여 없애야 합니다. 화두 하나에 몰입되어 모든 상념이 끊어져 없어지고 허공처럼 텅 비어 깨끗하고 고요하면 거기서 명명백백하게 일체를 아는 지혜가 열리는데, 이것을 무심(無心) 혹은 본래청정심(本來淸淨心)이라 합니다.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것은 이 청정한 마음에 들어가서 그 마음을 쓰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일오 스님은 세상사가 복잡하고 힘들고 어려울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배우고 올바르게 수행하여 모든 중생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항상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경계에 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법답게 바로 살고 있는지 순간순간 자신을 점검하고 수행을 챙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수행했으면 한 달 수행한 만큼, 일 년 수행했으면 일 년 수행한 만큼 달라져야 합니다.”

태안사에 어둠이 내리고 어디선가 솔가지 타는 향이 코끝에 와 닿는다. 저마다 각기 다른 화두를 품고 있다는 정심교 반야교 해탈교 능파각을 뒤로 하고, 피안의 세계를 벗어나 다시 차안의 세계로 걸어 나왔다.


일오스님은

1965년 백운산으로 입산. 월인 스님을 만나 출가. 40년 넘게 제방선원에서 수행 정진. 전남 부안 월명암 선원장 역임. 지금은 곡성 태안사 선원장이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 논설위원) |
2009-01-19 오후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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