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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독자에다 만석꾼의 아들로 남부러울 것 없지만, 아들과 그 어머니는 출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많은 재산을 정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몽땅 나누어 주고 속가에는 그 무엇도 하나 남겨놓지 않고 아들과 어머니는 제 갈 길을 갔다. 아들은 비구의 길로, 어머니는 비구니의 길로 나선 것이다.
대구에서 방직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고 소년은 자신의 인생 또한 행복이라는 단어만이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급성폐렴으로 인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그 많은 재산과 사업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했던 어머니는 힘겨워했다. 그때는 해방직후라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져 참으로 사회가 혼란할 때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룻밤 사이에 지주(地主)가 되어 버린 16살의 소년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급기야는 집을 나와 몸을 피해야만 했다. 할머니의 주선으로 지리산 쌍계사로 갔다. 소년은 지리산 쌍계사에서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느꼈고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평소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세상에 대해 애착이 없으니 같이 출가하자고 뜻을 밝혔다. 이것이 대정 스님의 출가동기이다.
대정 스님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여 동양고전과 유불선(儒佛仙)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으며, 사색하기를 좋아하였다. 급변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독서와 사색이 출가를 결정하는데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하였다.
대정 스님께서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 16살에 출가를 결정하여 불문에 드셨지만, 그러한 선택에 대해 한 번도 후회를 해 본적이 없다면서 부처님의 출현을 두고 ‘인류의 정신혁명’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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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출현으로 인해서 인류에게 올바른 이정표가 지정되었지요. 누구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교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실천과 여법한 수행을 한다면 누구라도 도를 이루어서 부처님이 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인류 모두에게 내리신 가장 값진 선물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양사에 주석하셨던 금타 선사로부터 ‘이뭣고’라는 화두를 받고 본격적인 참선을 시작하였다. 모악산에 들어가 3평짜리 흙집을 지었다. 나무와 흙으로 얼기설기 꾸며 방과 부엌을 만들었다. 그해 겨울은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생식을 하면서 차오르는 눈을 치우고 오롯이 화두만을 잡았다.
“그때 매일 산새가 나타나 밥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가 하면 산이 깊어서인지 매일 밤 호랑이가 나타나 집을 한 바퀴 돌고는 가곤했어요. 발자국만 남기고 가는 호랑이가 두렵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신장노릇을 해 준다고 여겼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몸이 축나거나 쇠약해지지도 않았으며 정신은 거울과 같이 맑아짐을 느꼈다. “화두가 절정에 오르면 잠이 깊어 들어도 화두가 역력하게 이어졌으며, 화두삼매에 빠져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스님은 회상했다.
대정 스님은 모악산이 좋아 3년 넘게 그곳에서 토굴생활을 하였으며 29살에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흙집을 짓고 토굴생활을 했다. 먹는 것이라고 해봐야 쌀과 보리와 솔잎으로 만든 가루가 전부였다. 그때는 산에 들어가면 신성함이 절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산이 오염되어 신성함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토굴생활 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라 했다.
“남전 스님은 평상심이 도(道)라고 했어요.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도라는 것입니다. 도는 우리를 벗어나서 있는 것도 아니고 비켜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 그대로인 셈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니까 중생이고, 바로 알게 되면 그대로 부처가 됩니다. 중생이라는 텃밭이 있기 때문에 성불이 가능한 것이며, 선이라는 좋은 정법인 씨앗이 와서 성불하는 것입니다.”
대정 스님은 대중들과 함께 생활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결제와 해제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오롯이 참선에만 전념할 수가 없어 산중에서 혼자 토굴생활을 하였다. 사형인 성철 스님이 백련암에 계실 때 해인사 선방에서 1년을 지냈고 선암사 등 여러 제방에서 10년 동안 수행한 그 기간을 빼고는, 19살 모악산에서 시작한 토굴생활이 59세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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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토굴에서 수십 년 넘게 수행정진해 오신 대정 스님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싶었다. 달마 스님은 9년 동안 소림사에서 면벽하였고, 중국의 장경 스님은 20년의 세월동안 일곱 개의 좌복에 구멍이 날 정도였고, 임제 스님은 20년 동안 하산하지 않고 수행했다. 대정 스님 또한 수행하다 죽는다면 그것을 큰 복으로 여겼을 만큼 목숨 걸고 수행했다. 오랫동안의 묵언으로 인해 대정 스님은 목소리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심한 허스키한 목소리이다.
대정 스님은 지리산에서 공부할 때 ‘인욕정진퇴백마 용맹무퇴성입지(忍辱精進退白魔 勇猛無退成立志)라, 인욕과 부지런함은 백 가지 악마를 물리치고 용맹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품은 뜻을 크게 이루리라’는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아 공부했다. “수행자가 입고 있는 가사와 장삼은 부처님의 고행과 인내를 철저히 닮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한시도 화두를 놓친 적이 없었으며, 뼈를 깎는 고행을 마다 하지 않았다.
서른일곱 살에 지은 게송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재하처 견문시도(道在何處 見聞是道)
요연즉성 하처갱구(了然卽成 何處更求)
은현동시 여시묘각(隱現同時 如是妙覺)
수인아문 오답일소(誰人我問 吾答一笑)
도는 어느 곳에 있는고
보고 듣는 것이 그대로가 도이더라.
알고 보니 그대로 이미 갖추어져 있더라.
어느 곳에 다시 도를 구할 것인가?
숨음과 나타남이 때가 같아
이것이 바로 묘한 깨침이라
누가 나에게 도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한 번 웃음으로 그 답을 대신 하겠노라.
‘한 번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겠다’는 구절이 좋아 무슨 의미인지를 물었다.
“선은 말과 생각과 뜻으로도 헤아릴 수 없어요. 선은 말과 마음의 길까지도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요. 선은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대중 앞에 말없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격외선지 아닙니까? 한 송이 연꽃을 보고 가섭존자는 이심전심으로 법통을 이어받아잖아요. 선은 부처님께서 최후 마지막에 내어 놓으신 선의 진면목으로 청정여래선입니다. 선과 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선을 이룩하면 도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스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불법을 만났으니 그런 큰 복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였다.
“우리 마음은 절대평등하고 이것은 어떠한 장애와 걸림이 없기 때문에 마음 자체 그대로가 자재무애하고 상주불생입니다. 마음이 마음을 알지 못하면 그대로 미혹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절대평등인데 마음을 모르면 그대로 불평등이 되어 버립니다. 불평등이 되면 이로 인해서 모든 갈등이 생겨나요. 그리고 업에 끄달려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여 사생육도하게 됩니다. 영원불멸의 생명체인 마음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 의심해 나가는 것이 화두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뭣고’를 계속 의심해가면서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참선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의심인데 의심은 의심으로 그 해결이 가능합니다.”
의심을 간절히 해나가다 보면 화두가 익어 번뇌와 망상이 자연히 소멸된단다. 천만 가지 의심이 한 의심으로 의단이 되어 한 의심만 풀리면 천만가지 의심은 한꺼번에 풀려서 일체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 화두참선이란다.
“스스로 화두를 잊지 않으면 계정혜 삼학이 되니 자연 탐진치(貪瞋癡) 삼독이 없어지고 우리의 근본 무명이 타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수행이고 깨달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그동안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업이 너무 중해 화두 참선을 하려고는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하다보면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확철대오하게 됩니다. 남이 받지 못한 복을 받자면 남이 하지 못할 일을 능히 해내야 합니다.”
대정 스님은 60년 넘는 세월동안 화두참선을 하였기에, 그 화두 참선이 너무나 좋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곡히 권하며, 초심자에게는 참선의 방법을 세세하게 일러주신다.
“의심은 탐구심, 정신집중을 말합니다. 의심은 생각도 아니고 뜻도 아니며, 오직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이 탐구심만이 우리의 근본 참모습 본래면목이 나오게 됩니다. 본래면목이란 바로 참마음이요 부처님 성품입니다. 부처님 성품은 큰 도로 인해 나오고 이 도는 선이 아니고는 나올 수 없어요. 부처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 밖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불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불은 우리 중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허물이 전부 소멸되는 것입니다.”
대정 스님께서는 63년간 화두참선을 하셨지만, 교학을 가벼이 여기서는 안됨을 강조하신다.
“교(敎)하는 사람이 선을 알지 못하면 교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한 사람이 교를 알지 못하면 교는 그만두고 선도 알지 못합니다. 선과 교는 원래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선은 선이고 교는 교인 것이지, 선이 교가 될 수 없고 교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은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일체 모든 만물의 근원이요, 일체 모든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근본바탕입니다. 마음 밖에 선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해요. 마음에서만이 마음 문제가 해결되지 마음 밖에서 마음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계속해 들고 나가면 의심이 나고 드디어 나와 의심이 둘이 아니고 통일이 됩니다.”
금정산 범어사에 주석하신지도 20년의 세월이 넘는다. 그 동안 대중들이 두 번이나 범어사 주지 소임을 맡아주기를 간청했지만, 대정 스님은 이미 16살 때 제행무상을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기 때문에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았다.
올해로 꼭 한 해가 빠지는 팔십이신 대정 스님은 오랜 토굴생활의 습도 있지만, 내 심부름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기에 청소와 빨래를 몸소 하신다. 그리고 하루 두 번 대중들과 함께 공양을 하고 점심공양은 스님의 거처인 휴휴정사의 샘에서 솟아나오는 찬물 한 바가지로 채운다. ‘검박하다’ 하는 말조차도 사치가 되어 버리는 대정 스님의 삶에 대해 찬탄을 하였더니 “석가모니 부처님을 닮고 싶어 출가를 했으니 부처님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답하신다. 무욕으로 일관되게 살아오신 대정 스님께 인간의 욕망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탐심은 욕심인데 욕심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욕심이 없다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문제가 되지요.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의 몸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것도 과식하면 음식이 아니라 독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듯이, 모든 것이 지나치면 독이 되어버립니다. 남을 속이고 살생을 하고 남의 것을 훔치고 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심(嗔心)이고 이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이 탐심으로 인해서 진심이 나오고 진심으로 인해서 치심이 나오게 됩니다. 계정혜를 지키면 탐심과 진심과 치심은 절로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스님께 새해에는 어떻게 살면 좋을지 가르침을 구했다.
“과거 ? 현재 ? 미래는 중생의 망념에 불과하며 실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새해니 묵은해니 구분하지 말고 항상 깨끗한 생각과 고요한 마음, 맑은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살려나가세요. 그러면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번뇌와 망상이 차츰 사라져 자신의 고뇌에서 해방이 됩니다. 마음속에 상대성이 사라지면 분별심이 작용하지 않으니 그대로 행복입니다.”
대정 스님처럼 점심 한끼를 때울 요량으로 한 바가지의 물을 마셔보았다. 금정산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차가웠지만 아주 달았다. 감로수와도 같은 대정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산문을 나서니 세상이 왜 그리도 번잡하게만 느껴지는지...
대정 스님은
1946년 대구 경북중학교 재학 중 지리산 쌍계사로 도피. 1950년부터 59년까지 모악산에서 토굴생활을 하면서 장좌불와. 1959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으로부터 비구계 수지. 1960년부터 1967년까지 지리산에서 토굴을 짓고 용맹정진. 1967년부터 70년까지 범어사, 해인사, 마곡사, 선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 1970년부터 79년까지 지리산에서 생식과 일종식으로 수행정진. 1979년 이후부터는 범어사 휴휴정사에서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