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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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처 속이지 말고 언행일치 하며 살자”
[선지식을 찾아서]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에 위치한 불갑사(佛甲寺)는 역사서에 기록된 현존 최고(最古)의 사찰이다.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인도의 마라난타(摩羅難陀) 스님이 중국 동진(東晋)을 거쳐 백제 침류왕 1년(385)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처음 창건한 절이다. 모든 불교 사찰의 시원(始源)이요 으뜸(甲)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구랍 22일, 서해안고속도로 상에서 간간히 흩뿌리던 눈발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모악산 골짜기로 들어서자 폭설로 바뀌었다. 1623년 전 ‘마라난타 스님이 서쪽에서 온 뜻(摩羅難陀西來意)’을 화두 삼아 기축년 첫 선지식을 찾아가는 길은 미끄러운 눈길 탓에 정신차리며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조심조심 달려간 불갑사는 모악산이 연출한 눈부신 설경 속에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라난타불교대학 사무소 겸 종무소에 들린 후, 염화실로 가는 길목에 부지런히 눈을 쓸고 있는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께 합장인사를 하니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어난다.

조실방에 들어가 고불총림 방장 수산지종(壽山知宗)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자, 자상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눈 오는데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우선 차 한 잔 들게나.”
큰스님이 직접 제다해 내어놓은 전다(錢茶 잎을 찧어 만든 차)는 노란 빛에 맑은 향기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명차였다. 스님은 1975년부터 불갑사에 주석하면서 백제불교 초전가람지를 복원하는 일에 매진하며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생활선을 선양해 왔다. 기축년을 맞아 미수(米壽ㆍ88)가 되신 큰스님은 8년 연상의 사형 서옹(조계종 종정 역임, 1912~2003) 스님처럼 장수하면서, 언제든 천진한 미소로 선재동자들에게 차별없는 안심(安心)법문을 일러준신다.



-스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정정해 보이시는데, 따로 건강 비결은 없으신지요?
“이젠 늙어서 안 아픈 곳이 없어. 그저 요가 힘으로 살아. 병원 가자고 하면 겁이 나. 돈이 많이 들자나. 나는 저녁 10시면 잠을 자고 2시 40분에 기상하지. 6시 아침공양 전까지 예불하고 요가, 참선 정진을 하면 시간이 빠듯하지. 20년 넘게 꾸준히 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큰 병은 안 생겨.”

-2008년 한 해는 국제적인 금융위기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았고,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의 종표편향으로 불편한 한 해였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불교에서는 정상말(正像末) 삼시(三時)라고 해서 정법, 상법, 말법으로 시대를 나눠. 정법(正法)은 교(敎)와 행(行)과 증(證)이 고루 갖춰진 5백년이요, 상법(像法)은 교와 행은 있으나 증이 없는 1천년이요, 말법(末法)은 교만 있고 행과 증이 없는 1만년을 가리키지. 우리는 말법 시대인 말세에 살고있는데, 스님들은 인과가 있다고 말만 할뿐 스스로는 인과를 지키지 않는 게 가장 큰 병폐야. 부처가 못될지언정 사기꾼이 돼선 안돼. 자기는 인과를 믿지도 않고 정진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잘 살라고 하면 안돼. 자기를 회광반조(回光返照) 해가면서 남도 그렇게 해나가도록 일러줘야 해. 우리가 받은 게 모두 공업소생(共業所生)이야. 정신 못 차리면 또 다시 윤회하며 업을 짓고 말지.”



-종교편향 사건을 계기로 인재양성을 소홀히 하고 청정 수행가풍을 확립하지 못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은 것 같습니다.
“불법을 모르는 이는 훼불을 못해. 고려말 사찰 재정이 국가 보다도 많았던 귀족불교의 폐해를 보고 정도전이 폐불론(佛氏雜辨)을 썼듯이, 불교를 잘 아는 사람들이 훼불을 하지. 지금도 사정이 비슷해. 스님들이 청정하게 살지 못해서 인재를 키우지 못하니까 불교를 핍박해도 큰 소리를 못쳐. 자화자책(自禍自責)이니 그들을 나쁘다고 욕할 것도 없어. 우리 스스로 정화를 해나가야 해.”

-나라가 평안해져서 국민 모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요.
“요즘 한나라당은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미국인이 시키지 않는데도 영어 몰입교육을 해야 한다며 난리야. 일제시대 때 창씨 개명을 하고 조선말을 못 쓰게 한 왜놈 앞잡이만도 못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꾼 것도 이승만 장로 대통령을 선양해 기독교 사상을 널리 펴자는 의도 아니겠어. 기독교사상은 믿지 않으면 마구니로 몰아 공격하고 불법을 전하지 못하게 하니, 종교 갈등이 일어나지. 권력은 사람 잡아먹는 게 아니고 살리는 거잖아. 부처님 법이 살아나야 국민이 편안히 살게 될텐데….
부처님이 정반왕 아들로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은 중생교화를 위한 거야. 그런데 부처님도 사람 몸을 받은지라 무수한 전생부터 익혀온 습기가 있었거든. 4성 계급의 모순과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출가해서 깨닫고 나서 하신 말씀이 ‘마음을 잘 써라’ 하는 거야. 자성(自性)자리를 깨달아 본래마음 그대로 옳은 일을 실천궁행(實踐躬行) 하라는 거야. 그러면 개인도 사회와 나라도 평안해지지.”



-결국 안심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잘 해야 할텐데, 한 말씀 경책을 주십시오.
“자성자리는 형체가 없지만 또한 없는 것도 아니야. 이 자리를 깨달으면 생사도 없고 성주괴공(成住壞空)도 없어. 하지만 한 생각 잘못해서 나쁜 행을 하고 과보를 받으며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니까, 이걸 바로잡아 개미 쳇바퀴 돌듯한 윤회에서 벗어나자는 게 바로 이 공부야.
옛날 공부할 때는 화장실에 자주 안 가려고 먹는 것도 줄일 정도였지. 그만큼 일이 많고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참선시간이 소중했던 거야. 포만감이 있으면 혼침에 빠지니까 건강만 유지할 정도로 소식하며 화두일념에 들곤 했지. 그런데 요즘엔 너무 편하게 대접받으면서 공부하려고 들어. 말해도 듣지 않고 싫어하니까, 경책을 안 하니만 못해.”

-만암 스님을 모시고 공부할 때의 경험담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최초의 총림인 고불총림을 설립(1947년)한 만암(1876~1956) 스님은 조계종의 종조를 태고보우 국사에서 보조지눌 국사로 바꾼 것을 환부역조(換父逆祖)라며 크게 나무라셨어. 보조 선사를 육조(六祖)가 아닌 신수(神秀) 스님 계열로 본 것이지. 내가 행자 때는 경전도 못 보게 하고, 법당에 예불도 못 하게 했어. 일만 시키는 거야. 그때만해도 염불을 배워 환속한 뒤 가짜 중노릇 하는 이가 많았거든. 한번은 예불이 너무 하고 싶어서 법당에 들어갔다가, ‘심부름 안하고 뭐하냐?’며 혼을 내시기도 하셨어. 계를 받고 비로소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면서 출가생활의 소중함을 느꼈지.”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19살에 출가해서 20살에 계를 받았는데, ‘사람이면 다 삶이냐, 사람이 사람 다와야 사람이지’ 하시는 만암 스님 말씀을 그 때는 자세히 해득을 못했어. 나중에야 그것이 바로 ‘참사람(無位眞人, 불성을 상징함)’을 말한 것이로구나 하고 느끼게 됐지.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 참사람이 되는 게 부처님 법이지. 총무원장이나 주지 하려고 중 된 거 아니잖아. 마음 밝혀 생사를 초탈하고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공부야.”



-어떤 화두를 받아서 참구하셨습니까?
“만암 스님으로부터 ‘이뭣고?’ 화두를 받은 후 지금껏 챙기고 있지. 스님은 ‘이뭣고’ 화두를 강조해서 ‘이먹고 노장’이라고 불리셨어. ‘이 무슨 물건인고?’ 하는 ‘이뭣고?화두는 내게 무슨 물건이 있어서 춥고 더운 줄 알고, 짜증 내고 기뻐할 줄 아는지 참구하는 거야. 형체도 없는 놈이 온갖 일을 하는데, 그 놈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의문을 품는 거지. 우리 마음은 마치 전기와 같아서 형체는 없지만 스위치를 켜면 형광등처럼 빛을 발하거나 기계를 돌리는 등 온갖 일을 하지.”

-화두 공부하다 보면 쭈욱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때는 어떡해야 합니까.
“‘이뭣고?’를 자꾸 찾아야지. 어디로 가나 찾아야지. 연속으로 화두를 챙겨야 줄줄 물길이 이어지듯 내려가거든. 공부가 잘 되면 물길도, 나도 끊어지는 절대 경지에서 견성(見性)이 이뤄지는 법이야.”

-일상생활에 바쁜 재가불자들이 지속적으로 화두를 챙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어떤 방편을 택하는 게 좋을까요?
“화두가 쉽지는 않지. 그런 사람들은 염불을 부지런히 하면 돼. 염불이 익어지면 ‘염불하는 놈이 누구냐?’‘어떤 놈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는고?’ 하며 참구하면 돼.”

-참선하면서 경전이나 선어록을 보셨는지요.
“예전에는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가끔 보았지만, 요즘엔 안 보고 살아. 나이도 들었고….”

-기축년도 경제가 어려워 불자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요, 고단한 삶속에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요체를 일러주십시오.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다 보니 이제는 좀도둑들도 사람까지 죽이고 물건을 뺏는 극악한 세상이 되어버렸어. 인간이 편히 살려면 다툼이 없어져야 해. 그러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서로 존중해야지. 마음 편히 살려면 무엇보다 일체 구하는 것을 쉬어(休歇)버려야 해. 일체 욕심을 버리면 돼. 그런데 버리라면 못 버려. 못 버리니까 시끄럽지. 자기를 비울 줄 알면 복이 없어도 힘들지 않은 법이거든.

-비우고 버리기 위해서는 소욕지족(少慾知足)하는 마음자세가 기본이란 말씀이시군요. 큰스님, 마지막으로 새해 덕담 한 마디 해주십시오.
“자기 일생이 족한 줄 알면 큰 복이야. 족한 줄 모르고 불평불만하면 가진 게 많아도 괴로워. 그러니 불량한 마음 쓰지 말고 늘 회광반조하며 자신을 살필 줄 알아야 해. 떡 한 쪽도 같이 나눠먹는 복 짓는 마음으로 살면 편해.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남을 도울 수 있는 것도 다 부모님 은공이야. 내 것만 만들고 살면 사람 도리가 아냐. 무엇인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불자 아니겠어. 그러니 무엇보다 욕심이 없어야 해. 그런 다음 바르게 믿고 법대로 행하면 돼. ‘니가 부처다. 그러니 니 부처를 잘 다스려라’ 이 말이야. 우린 다 부처인데, 부처가 부처를 속이고 있으니 문제지.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게 내 부처를 속이지 않는 것임을 잊지 말고 참된 삶을 사시길 당부하네.”

인터뷰 내내 자기를 속이지 않는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강조한 큰스님은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늘 남에게 감사하고 이웃을 공경하며 살면 힘든 인생살이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거룩하고 고상한 것만을 진리로 알고 ‘이치를 깨치는(理入)’ 데만 관심을 두는 수행자들이 많은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이해하고 ‘깨달은 만큼 여실한 실천행(行入)’의 중요성을 강조한 법문은 새해 아침, 다시 초발심으로 구도행에 나설 불자자들에게 나침반이 되리라 생각된다.
새해에는 저마다 하나의 방편을 정해 날마다, 달마다 깊어지는 자기개혁의 시절이 도래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모악산 서설(瑞雪)을 바라보니, 기축년 한 해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나저나, 마라난타 스님이 인도에서 온 뜻은 과연 무엇일까?


수산지종 스님은

192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수산지종 스님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19세(1940년)에 백양사로 출가했다. 이듬해 법안 스님의 위패상좌가 되어 부전 소임을 보며 강원을 이수하고, 1943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고불총림을 설립한 만암 스님을 오랫동안 시봉하고 전법게를 받았다. 1957년부터 완도 신흥사, 부안 개암사, 백양사 주지, 학교법인 정광학원 8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1975년부터 불갑사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1986년 조계종 원로의원, 2004년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 추대되어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글=김성우, 사진=박재완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08-12-29 오전 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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