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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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아내도 일하는 남편도 수행자입니다.”
서명원 신부의 '내가 본 성철과 한국불교'는?


법복이 잘어울리는 서명원 신부

강사: 서명원 신부(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주제: 내가 본 성철과 한국불교
일시: 2008년 12월 18일
장소: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 국제회의장
주최: 조계종 중앙신도회 불교인재개발원


눈 푸른 가톨릭 신부가 불교를 가르쳐 눈길을 끈다. 서강대에서 종교학 강좌를 통해 불교를 가르치는 서명원 교수(53, 예수회, 본명 Bernard Senecal)는 프랑스인 신부다. 서 신부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예수회 초청으로 방한해 서울 근교의 한 사찰에서 한국불교를 만나 깊이 매료됐다. 1990년 사제품을 받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가 파리7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공부했다. 성철 스님을 접한 것은 1993년 프랑스에서 석사과정 중 송광사 구산 스님의 제자였던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쓴 〈눈 푸른 납자(The Zen Monastic Experience)〉를 읽고 나서였다.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접하자마자 ‘바로 이것이다’라는 확신을 하게 된 그는 성철사상을 주제로 한 ‘퇴옹 성철의 생애 및 전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400페이지에 걸쳐 성철사상을 조명한 서 교수의 논문은 프랑스 최초이고, 한국불교로서는 두 번째 박사 논문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불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와 한문이 공존하는 그의 언어세계 만큼 가톨릭과 불교가 공존하는 그의 일심(一心)은 독특하다.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자.


참가한 청중들이 서명원 신부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저는 여러분과 인연을 맺으려 합니다. 일단 성철 스님에 대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곤란함을 느낍니다. 여러분 중에는 성철 스님의 체취를 느낀 분들이 있는 반면 저는 성철 스님을 만나 뵐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를 보는 여러 가지 시선이 있었습니다. 성철 스님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 타종교인의 접근에 대한 학계의 시선, 서양인이 불교를 얼마나 알까하는 선입견 등입니다.

하지만 제가 불교사상, 특히 성철 스님의 사상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프랑스 사람이 한국말을 배울 수도 여러분이 외국어를 배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도 문명에서 불교가 탄생해 중국문명으로 스며들어 퍼지듯, 현재 불교가 서양문명으로 조금씩 스며들 듯, 불교와 성철 사상도 제 안에 조금씩 들어왔습니다.

깊은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조금 어려웠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깨달음의 세계로, 겸손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고차원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그 가르침에 대해 이해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항상 의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해 이해한다고, 또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은 경상도 사투리에다 내용도 어려워 저에게는 한국어가 아닌 또 다른 나라 말로 들렸습니다. 석사논문을 준비하며 접한 송광사 구산 스님의 <석사자(石獅子)>도 불어로 옮길 때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연구를 거듭하면서 저는 넓고 넓은 바다에 빠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양 출신으로 선사를 통해 불교 안으로 들어 갈 때 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없다는 경험을 자주 겪었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은 전체를 알아가는 실마리를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 학자로서 성철 스님과 <백일법문>을 접했습니다. 긴 수행의 정수가 담긴 <백일법문>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불교를 알아 가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백일법문>을 통해 복잡다단한 분류가 종합적으로 정리되고 체계가 잡히면서 12연기법과 중도사상이 다가왔습니다. 중도를 말하신 성철 스님의 사상.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고정관념도 없이 사는 것. 늘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저를 이끌었습니다. 성철 스님을 통해 저는 불교안으로 들어왔으며, 선수행을 접했고, 한국불교 전체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불교는 성철스님을 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스님이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비판해 일으킨 돈점논쟁은 한국불교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논쟁이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깨닫고 나서부터 부처의 수행을 실천하는 오후수행불행(悟後修行佛行)은 너무 높은 경지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그것을 오히려 높게 삽니다.

20세기 한국불교의 중요한 개혁자로서도 성철 스님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와 일제강점기의 여러 문제, 이승만 정권당시 정화운동으로 분열된 불교종단과 그에 따른 상처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개혁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성철 스님이 큰 사명감을 갖고 나신 것은 현재도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한국불교 역사상 원효 스님에 비견됩니다.

저는 성철스님을 알고, 1993년부터 선 수행을 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부처님 없이 못살겠습니다. 제 종교인 기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 수행을 하고, 불교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뼈저리게 제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가톨릭 사제로 서강대에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대학원 등 공부로 불교를 알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 200여명이 신부님의 강의를 듣기위해 모였다

다음은 청중과의 1문1답


-가톨릭의 천지창조, 천당, 예수님의 부활 등 중심사상이 불교사상과 내면적 어떻게 양립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제 안에는 모국어인 불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있고 한국어도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듯이 종교와 종교의 만남을 지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한국말을 구사하되 모국어체계를 통해서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똑같이 불교를 얘기하지만 기독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일단 저는 우월의식을 버렸습니다. 어느 종교가 우위에 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불교, 이슬람, 가톨릭으로 나누어 무엇이 우위다, 옳다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색(色)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한국불교를 학문차원에서 믿음으로서 어떻게 접근하게 됐습니까.

“전 학자로서 불교를 접하면서도 불교를 단지 학문의 대상으로서 볼 수 없었습니다. 불교 안에 들어가야 불교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불교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수행을 하라고 강요 할 수 없지만 원문경전으로 읽으면서 교학(敎學)을 통해 수행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불교의 깨달음과 수행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큰 사명을 갖고 출가하는 수행도 있지만 주부가 남편을 위해 밥을 하고, 남편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꼭 선원에서 참선해야 더 깨달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출가자를 낮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재가자의 생활에 있어서 수행입니다. 저에게는 대학이 저의 선원으로 매시간 저를 일깨워 주는 수행터입니다.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의견을 서로 나누며 참신한 생각을 접할 때마다 제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깨달음은 지혜와 함께 헌신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에게서 발현된다고 봅니다. 남을 위해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 이기심을 완전히 버린 사람이지요. 부처님, 예수님 등 깨달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존중받습니다.”

-신부 신분으로 타종교를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보완해야 할 점은.

“저는 종교학과이기 때문에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에 비해 자유롭습니다. 이슬람교에 심취해 가톨릭 신자이면서 이슬람교를 가르치는 분도 있습니다. 종교학은 여러 종교를 알고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해야 합니다.
한국은 불교와 기독교가 활발히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찾기보다는 공통점을 찾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종조를 지키면서도 서로를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불교에서 가톨릭사제로 불교를 가르치듯 재가자나, 출가자 중 한 분이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불교대학 등에서 기독교를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종교 간 화해의 실마리는 서로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평가보다, 학문적, 수행적으로 서로를 깊이 알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한국 종교화합의 숙제입니다.
불교는 타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참여에 박차를 가하고, 기독교는 단순한 선교차원을 떠나 불교의 보살심, 자비심으로 활동을 가져야 하겠지요.”


노덕현 기자 | Dhavala@buddhapia.com
2008-12-19 오후 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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