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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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염불하면 번뇌 가득한 윤회의 삶은 없습니다”
생활속의 염불수행 - 정목 스님
[특별기획] 불황ㆍ한파 마음공부로 ‘희망’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경제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역시 치명타를 입었다. 높은 실업률과 구조조정 등 장기불황의 기나긴 터널에 진입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고용불안과 경제난 등으로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이 안심(安心)을 얻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물론, 깨달음의 길까지 제시하는 생활속 수행방편(助道法)을 통해 자유와 행복을 경험해 보자.


양산 정토원 주지 정목 스님.



1. 생활속의 염불
염불은 불안한 시대 희망의 수행법


우리는 지금 어느 나라 어떤 사람도 편안하지 않은 그야말로 자연과 생명 일체가 어둠에 싸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불안한 모든 현상들은 숙명도 우연도 신(神)의 조화도 아니고 인과(因果)와 연기(緣起)의 산물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고 편 가르며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도 인과와 연기법을 벗어나게 되면 곧 지옥에 떨어지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질서를 한 손에 넣고 좌지우지 하려는 저 강대국의 소행들도 불교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면 모래성 쌓는 어린애들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불법 안에서 팔자 신세타령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부처님은 여전히 미소만 짓고 계십니다.
불교는 자연과 생명 일체의 존재방식을 인과와 연기법으로 해설하니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정치ㆍ경제ㆍ문화현상, 그 어떤 종교마저도 불법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불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불법은 믿지 않더라도 교리를 긍정하고 과학이 스스로 증명하는 참으로 무상심심미묘법입니다. 불법이 이와 같이 위대한 까닭에 깨달은 선지식은 인류의 스승이 되고, 불안한 시대의 민중은 온전한 귀의처로 삼아 안심을 얻고 난국을 극복한 역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중생의 복과 지혜가 증장하는 불가사의한 법

지금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에는 불법에 의거하여 자연과 생명의 역사를 알고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견하여 희망으로 인도할 선지식이 기다려지지만, 현실은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연을 저버리지 못하고 안심과 희망을 얻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한 길만을 걸어온 체험을 전하고자 합니다. 불법에는 많은 수행문이 열려 있지만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핵심으로 전개되는 정토문 염불수행에 대하여 전합니다. 이 염불은 흔히 죽은 후에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수행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 차원을 넘어 불교의 근본교리를 바탕으로 넓고 깊은 세계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생사해탈이라는 믿음으로 안심을 얻는 법이요, 생업을 위해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민중이 복과 지혜가 증장하는 불가사의한 법이며, 수행이 깊은 염불인은 깨달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행입니다.


자신이 무량광명 가운데 존재한다는 인식 가져야

염불수행에 있어서 긴요한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명호에 대한 인식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의 나무(南無, namo)는 귀명(歸命)이니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는 종교심입니다. 아미타(阿彌陀, Amita)는 무량수 무량광이니 만덕(萬德)을 머금은 진언이며 생각하고 부르고 관찰할 법(法)입니다. 불(佛, Buddha)은 무량수 무량광을 성취한 아미타 부처님이며 수행으로써 나아갈 지향점입니다.
둘째, 칭명염불입니다. 칭명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입으로 소리내서 부르는 것입니다. 명호의 핵심은 ‘아미타’이니 명호를 부르면서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신이 무량광명 가운데 존재한다는 인식을 깊이 하면서 불러야 수행의 차원을 높여 정진할 수 있습니다. 무량광명에 대한 믿음이 성취되면 끝내는 광명에 섭수되어 윤회 없음을 확신하고 안심을 얻습니다. 염불은 반드시 소리를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는 육근으로 감수하여 심층심리에 각인되는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정목 스님.



일체 경계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관하라

셋째, 관상염불입니다. 무량광명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마주하는 모든 대상 경계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관하는 수행을 익힙니다. 대개 염불수행에 대하여 의혹을 가지는 사람들은 ‘왜 버려야 할 상(相)을 세우는가?’ 하지만, 염불 수행의 바탕은 진여를 중심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생멸하는 현상을 중심으로 닦습니다. 상을 세우되 연기와 공의 도리를 섭수하여 현상을 관하는 까닭에 깨달음에 지장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생멸하는 현상계는 범부의 업으로 바라보는 탁한 경계가 있고, 또 깨달음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여래의 공덕상이 있는데 일체를 화신으로 관하는 것은 바로 깨달음의 경계라는 것입니다.
화신은 실체가 공할 뿐 아니라 근기와 상황에 따라 육도중생의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공덕을 쌓고 지혜를 얻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체를 화신으로 관하는 여기에 불교의 모든 수행법이 담겨 있습니다.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하는 이것이 정토의 세계관입니다. 이 도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선 진실한 믿음으로 그와 같이 관하고 점차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히 알려지게 됩니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행

넷째, 실천행입니다. 염불수행은 입으로 명호를 부르고, 마음으로 무량광명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하고, 육근으로 화신을 관하는 수행과 더불어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곧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행입니다.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임을 깊이 인식하면 자연히 감사와 보은행을 일으켜야 하지만 다시 구체적으로 열거하니 귀담아 듣기 바랍니다. 첫째 의복, 음식, 주택, 의약 이 네 가지가 갖추어지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세세생생 생명으로 이어오다가 이 땅에 태어나고 불법을 만나게 해 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생사해탈과 삶의 철학을 전해주는 삼보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들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다섯째 삶의 터전이 되는 자연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실천행 깊어지면 의식ㆍ삶 불가사의한 변화

이 다섯 가지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행이 깊어지면 지혜와 복덕이 날로 증장합니다. 의식과 삶에 불가사의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불교의 근본 교리는 연기법이니 염불수행에서 요구하는 감사와 보은행도 역시 연기법의 실천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알기 쉽게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느 시절보다 도처에 고뇌가 질펀합니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세계적 금융위기가 삶의 구석구석을 다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깨달음을 위해 정진한다는 것은 참으로 공허한 노릇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 세끼, 앞날이 불안하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합니다. 본인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큰 깨달음을 지금 당장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도 않고 누구에게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수행의 조건과 체계를 깊이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수행의 조건이란 삶의 바탕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의식주와 의약입니다. 지금 생존이 위협받고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고자 찾은 불자들에게 깨달음으로 극복하기를 요하는 법문은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기본생활이 보장되어도 수행환경, 시대와 근기에 상응하는 정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선근공덕 깊은 도반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아쉽게도 현실에서 보기 드문 일입니다. 수행체계란 ‘생사와 열반, 예토와 정토가 본래 일심’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는 데는 공덕을 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달음만 추구하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관찰하면서 염불수행을 더욱 권합니다.

다음카페 아미타파를 운영하는 정목 스님.



번뇌가 남아있는 상태로 생사해탈

염불은 인간의 원초적 불안인 죽음과 윤회로부터 안심을 얻는데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진실한 믿음을 성취하면 번뇌가 남아 있는 상태로도 생사해탈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대가 지금 번뇌 가득한 범부이지만 이제 윤회의 삶은 없다.”
이것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뇌가 끝없는 우리들에게 더없는 희망입니다. 염불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경계를 보여줌으로써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체계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모두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삼만 겁이 걸린다고 했으니, 우선 진실한 믿음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오탁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종교적 신념의 위력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체험하여 불성을 확인하고 불법의 위대함과 부처님의 은혜를 온몸으로 감득할 수 있는 법은 오직 염불입니다. 불법과 염불의 위대함을 체득하기 위해 우선 위에서 전하는 수행법을 실천으로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는 순간마다 무아(無我)가 실현되고, 일체를 아미타불 화신으로 관하는 순간마다 지혜와 복덕이 증장되는 정토가 다가옵니다. 염불은 범부와 현성(賢聖), 누구든지 체험하는 마음의 과학입니다. 염불은 말법시대를 향한 최후의 법문입니다.

정목 스님(양산 정토원 주지)
다음카페 아미타파(cafe.daum.net/amitapa)






최상의 일상 수행법으로 자성미타 깨닫자


영명연수 선사는“참선과 염불을 함께 닦는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라 했다. 서산 대사는 “참선이 곧 염불이요, 염불이 곧 참선이다” 라고 했고, 태고보우 스님과 보조 선사를 비롯한 역대 선사들도 자성염불의 공덕을 강조했다. 근대 중국의 허운 대사는 ‘염불하는 자가 이 누구인가(念佛者是誰)?’ 하는 공안이 가장 보편적인 화두라고까지 했다.

이와 같이 염불수행은 주로 기도위주의 타력(他力)수행으로 시작하지만, 수행이 깊어지면 마침내 자성미타(自性彌陀)를 깨닫는 자력(自力)수행으로 전환된다. 염불은 ‘무거운 죄업을 싣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자, 일상 생활인이 닦을 수 있는 최상의 선행(善行)’인 동시에 ‘지관(止觀: 사마타와 위빠사나)을 일으켜 깨달음을 성취하는 선(禪)’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 불교의 새벽을 연 원효 성사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방방곡곡에서 깨달음을 전했듯이 염불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이다. 부처님께서 말법시대 중생들을 위해 베푼 수승한 수행방편인 염불을 통해 안심을 얻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자.


◇ 주요 염불 도량


전국염불만일회 (02)732-1215
서울 정토사 (02)396-3405
서울 보국사 (02)914-4069
서울 서원사 (02)988-7484
서울 정중선원 (02)3288-3386
혜인정사 염불선원 (051)517-9008
부산 원효학당 (051)611-3808
양산 백련정사 (055)382-7084
양산 정토원 (055)375-5844
청원 혜은사 (043)297-5115
음성 용운사 043)878-3366
성남 정토사 (031)723-9797
영월 망경산사 (033)374-8007
연천 오봉사 (031)834-7072
화순 불지사 (061)372-5521
경주 미타사 (054)745-6506
경주 송계사 (054)773-0854

김성우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08-12-03 오후 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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