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신행 > 법문·교리 > 선지식
원명스님 "초심을 다져 생사의 적과 용맹하게 맞서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이 결제법어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


불기 2552년 11월 12일(음력 10월 15일) 동안거 결제(結制)를 맞아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이 결제법어를 발표했다.
원명 스님은 “서로가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를 무너트리려 하는 작금의 현실”이라며“결제를 통해서 각자의 초심을 다져 수행자의 본분을 다하고 생사의 적과 용맹하게 맞서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결제 법어 전문.


庭前栢樹地中生 不假牛犁嶺上耕(정전백수지수생 불가우려영상경)
正示西來千種路 鬱密稠林是眼睛(정시서래천종로 울밀조림시안정)
뜰 앞에 잣나무가 땅속에서 자라났는데 쟁기와 언덕을 갈아 심은 것이 아니네.

바로 서래의 천 가지 길을 보여주나니 빽빽한 잎 새마다 조사의 안목이로다.

오늘이 구순(九旬) 동안거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각자가 품고 있는 화두를 간절하게 들고 생사를 판가름하겠다는 각오를 지녀야 합니다. 읊은 게송은 분양선소선사의 말씀입니다. 화두를 드는데 있어서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뜻을 헤아려 곱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따라만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뜰 앞에 잣나무>라는 화두를 예를 들었습니다. 태고 적부터 변하지 않는 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화두가 있지만 모두가 그 변하지 않는 근본도리를 밝혀내고자 하는 최상승의 방편입니다. 그 방편을 통해 근본도리에 눈 뜨기만 하면 분별의 경계인 현상이 모두 실체를 보여주는 선지식의 안목임을 알게 된다 이 말입니다. 순간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입니다. 망설이고 늑장부릴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고인의 말씀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용맹정진해서 당장 도를 깨우친다 해도 본분사에 비추어 볼 것 같으면 늦다고 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난조상(難遭想)을 품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이번 생에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발원을 세워야 합니다.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수행자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대중들은 잘 알 것입니다.수행자가 행할 도리를 하지 못할 때 불법은 쇠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정진하는 길 뿐입니다.그래야 중생의 가장 큰 고통인 삶과 죽음의 실체를 밝혀 길을 일러주시기 위해 고행하신 뜻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은 너무나 정체되어 있습니다. 이제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다 잡아 정법의 깃발이 다시 휘날리게 해야 합니다.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서로서로가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를 무너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 도달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름 아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수행자들이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마구니가 법의 깃발을 꺾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허덕이던 번뇌 망상을 조복 받아서 세운 것인데 어찌 외세로 쇠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출가 할 때의 초심을 굳게 하여 다시 용맹심을 내어야 합니다. 불법이 쇠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잊어서는 안 될 본연의 초심이 쇠한 것입니다.
자아~ 모두들 스스로 통한을 삼킬 때도 되었습니다. 서로 맞서서 주장하고 다툰다 해서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법답게 본분에 입각해 정진하는 것만이 해답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제를 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득불 행하는 모임일 뿐입니다. 결제가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이 결제를 통해서 각자의 초심을 다져 생사의 적과 용맹하게 맞설 때 비로소 소임을 다했다 할 것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곧바로 조고각하(照顧脚下) 해야 합니다. 그저 다리 밑을 비추어 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최상의 자리라는 것을 바로 알라는 말입니다.

飢來喫飯困卽眠(기래끽반곤즉면)
只此修行玄更玄(지차수행현갱현)
設與世人渾不識(설여세인혼불식)
却從身外覓金仙(각종신외멱금선)

주리면 밥 먹고 곤하면 잠을 자네
다만 이것이 최상의 현묘한 수행 일세.
세인들에게 이 도리를 설해 주어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밖으로 부처를 찾아 헤매는 구나.

일거수일투족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수행을 고행이라고 들먹거립니다. 그러나 수행은 잠자고 일어나 밥 먹고 일하는 일상에 있다고 선지식들은 이야기했습니다. 배고플 때 배고픈 줄 아는 것, 졸릴 때 졸리는 줄 아는 그 놈이 누구입니까? 그런 줄 아는 그것을 본래면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용가운데 행주좌와하는 일체처 일체시(一切處 一切時)확인을 해야지요. 오늘이 바로 그날이니 여실하게 수행해 나아가기 바랍니다.

白雲爲蓋 流泉作琴 (백운위개 유천작금)
一曲兩曲無人會(일곡양곡무인회)
雨過夜塘秋水心(우과야당추수심)

백운으로 지붕을 삼고 흐르는 샘물로 거문고를 삼았네.
한곡 두곡 연주하지만 아무도 아는 이 없건만
비온 뒤 밤 연못에 가을 물이 깊구나.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08-11-12 오전 10:36: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