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나른한 오후의 정적을 가르는 죽비 소리에 수마(睡魔)를 견디지 못하던 사부대중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쉴 새 없이 지저귀던 참새도, 대숲 스치는 바람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까지 묵언 중인 해운정사는 지금 참선 대용맹정진의 열기로 뜨겁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종교편향과 한반도를 강타한 미국발 경제 위기까지 혼란스러운 이때, 불심의 도시 부산 불교가 수행불교로 거듭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참선도량 해운정사(조실 진제)는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 4일간 참선철야 용맹정진을 열었다. 남녀 재가불자 500명과 비구, 비구니 스님 100명까지 총 600여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마주보고 앉아 참선 정진을 가졌다. 스님과 재가불자가 함께 정진하는 것이 대단히 이례적인데 부처님 앞에서는 ‘함께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는’ 다 같은 중생이란 설명이다 .
첫날 입재식에서 조실 진제 스님은 대용맹정진에 참여한 대중에게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 던고?”라고 화두를 내렸다. 이어 “참가한 모든 대중은 과거 전생의 수승한 인연으로 견성의 분을 십분 갖추었으니 신심을 내어 화두가 3박 4일간 순일이 돼 대장부의 활개를 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앞으로 이들은 3박 4일간 잠들지 않고 하루 20시간씩 참선을 하게 된다. 매 시간 진제 스님이 직접 죽비로 경책하고, 오후 1시부터 3시간여 동안은 조실스님 방의 문을 활짝 열고 진제 스님이 수행자들의 공부도 점검해주었다.
해운정사는 1971년 산문을 연 이후 40여 년 넘게 ‘참 나’를 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해운정사를 찾고있다. 이번 법회에 부부가 동반 참가한 김상배, 김길자 부부는 진제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용맹정진을 결심했다. 또 어머니를 따라 왔다는 임종국(26) 학생은 한숨도 자지 않고 3박 4일간 참선을 해야 한다는 데에 걱정이 들지만 수계를 받기 위해 묵묵히 정진하기로 다짐했다.
45분의 참선과 15분간 포행. 선방을 한바퀴 돈다. 두 손을 배 밑에 포개 대고 굳은 어깨를 추스렸다. 하지만 화두는 끝끝내 놓지 않는다. ‘참 나는 어떤 것인가’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리고 또다시 참선이 끝없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마가 졸음과 피로로 참가자들의 눈꺼풀과 어깨를 짓누른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길라 치면 여지없이 죽비가 어깨를 내려친다. “탁!”하는 소리에 옆 사람까지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조실 진제 스님은 3박 4일간 600여 사부대중과 함께 철야 정진을 하며 직접 죽비를 들고 경책했다.
조실 진제 스님은 백양사 1차, 2차 무차선법회에 법주로 참석해 한국 대중에게 선법을 열어 보이고, 2002년 해운정사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무차선대법회를 통해 현대인에게 생활 속 참선과 화두 수행으로 ‘참 나’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준 선지식으로 정평이 나있다.
스님은 “근래 인류가 직면한 격변과 재앙이 안타깝다. 세상이 어렵고 혼란할수록 자신의 내면을 갈무리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하기 때문”이라며 “참선은 모든 중생심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으로 이번 용맹정진을 통해 모두가 자기를 성찰하고 큰 지혜를 밝혀 화합과 상생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날인 16일 오전 11시 원통보전에서 회향 및 재가 오계수계식이 열렸다. 이번 용맹정진에 참가한 600여 사부대중을 포함한 2,000여 명의 재가불자가 조실 진제 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음으로서 3박 4일간의 용맹정진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한편 해운정사는 음력 9월 15일부터 18일까지를 참선철야용맹정진 기간으로 지정하고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